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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Sep 17. 2019

서울 사람이 코 베어 가더냐?

엄마는 옛날 사람?

아이와 싸웠다. 십 대의 아이가 혼자 서울을 가겠다고 우기는 통에 밤잠을 설쳤다. 자기가 원하는 전시회를 가겠다는 고집과 한강을 투어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아이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남편의 서울행에 얹혀 더부살이할 수 있게 되었다. 걱정이 태산인 나와 달리 남편은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둘은 구석에서 소곤소곤거리더니 의기투합한 모양이다. 경비를 도와달라는 소리도 일절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이 돈을 대주던 말던 관심 없다. 그저 어떻게 말릴까 머리를 회전시켜야 했다.


출발하기 직전까지 안 간다는 소리를 기다렸다. 불혹이 지나서도 나에게 서울행은 어렵다. 몇 날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서울의 복잡하고 많은 인구에 숨이 막힐 것 같아 짐을 최소한 하며 준비해야 겨울 출발하던 당일치기 행보였었다.


아이는 거대한 보조배터리를 샀다. 서울에 올인을 한 건지 필요한 물품 몇 개가 택배로 도착했다. 아이가 의지하는 것은 네이버 지도. 많은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들이다. 치밀하지 않은 아이 성격인데 2주를 서울여행 동선을 짜는 통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아이가 지레 포기하라고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야, 서울은 지방 사람 올라가면 코 베어간다"

"야, 사람들이 말 걸면 절대로 대답하지 마라. 사투리 듣고 여행경비 다 빼앗길라"

"한강을 왜 가려고 하니. 거기 범죄현장이란다. 절대로 한강에는 가지 말거라. 살인사건도 많다더라"

"청계천에 물이 얼마나 더러운 줄 아냐?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간데"

(아이의 조속한 포기를 위한 발언이므로 허위 과장 날조된 사실임을 이해 부탁드립니다.)


특히 나의 한강 레퍼토리에 아이는 토하는 액션을 취했다. 엄마의 옛날 사람 코스프레에 아이는 지쳤고 고개를 젓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 아이는 계속 여행경로를 말하고 나는 여행지의 위험성을 말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오늘 새벽 아이는 아빠와 출발했다. 며칠 동안 꼼꼼히 준비한 지갑을 두고 말이다. 푸하하.

아직은 지갑이 없는 줄 모르지?

아이가 울며 전화했다. 너무 속상해서이다. 엄마의 무수한 반대에도 꿋꿋했는데 매일 돌아다닐 여행경로, 동선 파악, 필요한 돈을 꼼꼼히 적고 나누어 넣어둔 지갑을 두고 갔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 혼자 드넓은 서울을 돌아다니는 게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잘되었다 생각하고 망언을 날렸다.


"나 보고 어쩌라고, 하늘의 뜻이구만. 기차 타고 다시 내려와. 아빠가 너 따라다니지도 못하는데 돈도 없고 어쩌니"

상화이 악화되었다. 아이가 듣고 싶었던 것은 위로와 공감일 뿐. 결연한 아이의 의지를 확인하고 말을 바꾸었다. 이미 도착하는 발걸음에 대못을 박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여행이 더 행복하라고 위로하고 지지해주자고 마음먹었다.

"도착할 때 가다 되었는데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많이 놀라고 속상했겠구나." 간사해 보일 나의 말에 아이는 정색했다.

"엄마, 늦었어. 뒤늦게 말바꾸지마. 정말 싫어"

"정말, 미안해. 아빠랑 의논해서 잘 놀다 오렴. 엄마의 망언은 잊어주라. 숙소 경비 반을 내줄게"

"엄마, 고마워"

갈등의 해결이 아주 쉬운데 있었다.

전시회를 가고야 말았다
마라탕은 서울에서 먹어야 제맛
코 베어 갈 한강 뷰

끝까지 서울에 당도하지 못하게 하려는 나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아이는 지금 서울을 혼자 누비고 있다. 혼밥 문화를 혼자 누리며 활보 중인 결연한 눈매의 중2를 만나시면 댓글 부탁합니다. 서울에 눌러 살 수도 있을까 봐 걱정되네요. 엄마의 마음을 아실랑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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