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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02. 2019

샤프펜슬 두 개로 나라를 구할 뻔

너의 샤프가 꺼낸 나의 이야기

빠른 것이 좋은 것일까? 우리는 속도가 빠른 사람이 유리  세상에 살고 있다. 브런치는 오히려 반대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느리고 멍 때리기를 자주 하면 게으르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습관이 나에게도 있다. 사회 전체가 모두를 급하게 달리라고 채근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아침 아이의 샤프를 만지작거리다 뭐든 빨리 하려던 어린 내가 생각났다. 당시 나를 이끌던 튀는 사람, 빠른 사람에 대한 야망과 몹쓸 실패에 대한 기억 한 꼭지를 꺼내본다. 


작은 아이가 짜증을 내며 안내문을 가방에서 꺼냈다. 바쁜 엄마 탓에 싸인 받아 내기일을 넘긴 탓이다. 저도 나에게 말하지 않아 염치가 있는지 툴툴거리지는 않았다. 싸인을 잘해보겠다고 좋은 펜을 찾느라 큰아이 필통을 열었다. (아이의 필통은 신박한 아이템으로 가득한 만물상임) 아이의 공부에 입을 다문지 오래라 필통을 오랜만에 열어보았다. 지퍼를 여니 처음 보는 필기구가 있었다. 손으로 움키는 부분에 누름장치가 있는 샤프펜슬. 중2인 큰 아이의 필통에서 건진 필기구를 사용하다 30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줌마, 이거 뭐예요?"

"새로 들어온 건데 중간에 누르면 되니 뒤통수를 누르지 않아도 돼"

"그거 하나 주세요."

"학생이 맞수야. 방금 들어왔는데 처음 사는 거야"

"오예~"

나는 늘 아주머니에게 잘 낚였다. 처음 사는 학생이라는 말만 들으면 나는 무조건 구매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흔들면 심이 나오는 샤프, 엄지 검지 사이 누르면 심이 나오는 샤프를 샀다. 두 가지는 당시 샤프의 두배 가격이었다. 처음 본 물건이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사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것을 사고 며칠을 걸어 다녔다.

이런 충동적 구매에 두 가지 마음이 숨어있었다. 튀고 싶은 마음과 공부 속도가 빨라질 기대감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튀고 싶었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다시는 그 옷을 꺼내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튀고 싶지만 학생 용돈에 맞춰 실현할 곳은 문구점이었다. 친구들에게 없는 것을 소유한 나. 생각만 해도 어깨가 으쓱거리는 기분이었다. 용돈으로 과한 돈을 주고 샤프 두 개를 사고야 말았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나 보다.


흔들이 샤프는 심이 닳으면 손목 스냅을 줘 흔들면 심이 한 칸 나오고 마음도 경쾌해진다. 게다가 친구에게 불만이 생길 때 마구 흔들면 스트레스 해소도 되는 기막힌 것이었다. 친구를 생각하며 찰캉찰캉거리면 길게 나온 심이 툭 하고 떨어질 때 친구에게 난 화도 사그라들어 서로 쳐다보고 웃곤 했다.


가운데를 누르는 샤프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입 다물고 필기만 하라는 교실의 중압감을 또각거리는 행위로 잘라냈다. 나만 아는 분위기 전환법이다. 답답하면 또각거리고 열심히 쓴다. 반항인 줄 모르는 선생님은 학생의 필기 행위를 오해하지 않는다. 더 답답하면 가운데 누름을 여러 번 눌러 심을 툭하고 부러트렸다. 속이 시원했었다. 샤프는 소심한 반항의 매개체가 되기에 충분했다.

 

얼리어답터로 친구들 사이에 책상머리 유행을 주도하던 내게 또 하나의 무기를 장착한 셈이었다. 친구들은 샤프에 대해 물어왔고 나는 친절한 리뷰로 구매를 촉구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열 띄었고 먼저 경험한 자의 여유와 자랑스러움이 좋아 으쓱거렸다. 당시 내가 구축한 자존감의 기반이 얼마나 부실한지 그때는 몰랐다.



친구들보다 빠르고 싶었다.

수업시간 선생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다 적고 싶었다. 친구들이 나보다 더 빠르거나 잘하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연습장에 영어단어를 많이 채우면 암기가 더 잘 될까 봐 어깨에 힘을 줬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목표를 정해 연습장을 채우려 했다. 심이 부러지거나 닳았을 때 꼭지를 딸깍 누르기 위해 멈추는 찰나도 아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를 악물면 세상이 나를 한번 더 봐줄 줄 알았다. 쉬는 시간에 마음이 더 급했다. 화장실도 가는 게 아까울 때가 있었다. 더 빠르게 적고 채우면 좋은 성적이 보장된다고 믿어 유난히 샤프를 흔들어댔다. 샤프가 나의 열망을 응원하는 듯해 힘을 더 냈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친구들은 지겨운 시간에 작은 웃음을 준다고 좋아했고, 나를 따라 샤프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샤프를 흔드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점차 선생님이 눈치채게 되어 금지 물건으로 오를 뻔도 했었다.


나의 야망은 금세 벽에 부딪혔다.

가운데 누르는 샤프는 버튼을 눌러 심이 길게 나오면 위쪽 꼭지를 다시 눌러서 조절해야 했다. 결국 이중으로 손이 가는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설상가상 흔들이 샤프는 고장이 잦았다. 결국 빨리, 많이 필기할 수 없는 환경에 스스로 처하게 되었다. 짱돌을 돌려 일이 더 복잡해졌다.



샤프에 문제가 생기면 고치느라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영어단어 빡빡이(연습장에 가득 채워 쓰는 암기법)양을 채우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수록 더 짜증이 났지만 유행을 선도한 자로써 그것을 버릴 수도 없었다. 나의 튐과 빠름을 향한 야망은 오래가지 못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친구들 몰래.


더 빨리 나아가라고 누가 부추겼을까?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선생님 눈을 피해 쪽지를 주고받으며 반항도 해 볼 법한 나이에 뭐가 그리 급했을까. 누가 '이기라고, 지지 말라'라고 채근한 것처럼 겉은 웃었지만 속은 물컹한 늪에 빠진 것 같이 불쾌했다. 야망의 샤프는 나를 구해주지 못했다.


"너는 왜 이런 샤프를 샀어?"

"편리해서. 그림 그릴 때 쓰려고 샀는데 가성비가 좋아서"

"혹시, 사용할 때 시간을 조금 아끼려는 거국적 의도는 없냐?"

"무슨 소리? 엄마 이거 2400원밖에 안 하는데 질이 엄청 좋아. 그래서 샀는데 시간을 아끼는 건 뭔 소리? 가운데 누른다고 시간을 얼마나 아끼겠어"

"아냐, 엄마 옛날 생각이 나서, 엄마도 이런 비슷한 샤프가 나오자마자 바로 샀었거든."

"하하, 엄마 나랑 똑같네"


아이는 나와 똑같다 했지만 똑같지 않았다. 30여 년 전 나와 지금 큰아이는 완전 반대편에 서있다. 아이의 구매의 목표는 아주 표준을 달렸고 건강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를 닮지 않은 아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아이 편에 서있다. 이제 남들과 비교해 으쓱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보이겠지.  아이는 경쟁이라는 동기로 발을 구르지 않는다. 항상 그게 답답했지만, 이제 내가 달라졌다. 나는 아이와 같은 편이다.


지금 큰애는 남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그 길이 절대로 느리지 않다는 것. 세상이 만든 프레임에서 아이를 보면 뒤에 서 있고 느리고 멍 때리는 것 같지만 아이는 자기 길을 걷고 있다는 것. 내가 오래 걸려 알게 된 것을 아이는 벌써 알고 있다.


느려도 괜찮아.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더 빠른 것이라고.

그런데 하나만 묻잖아, 너는 누굴 닮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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