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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14. 2019

당신의 무기력은 안녕하십니까?

몸이 아프거나, 좌절하는 마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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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이라는 낱말이 낯설지 않을 당신을 칭찬합니다. 모든 무기력은 열정의 반대말이기도 하니까요. 열정을 소유한 당신의 내면을 미리 공감하며, 무기력의 출처에 대해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무기력은 가끔 소심하게 찾아와 잠깐 웅크리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웅크린 아이에게 무슨 말하겠어요. 당신의 무기력의 이유를 집요하게 파셨다면 잠시라도 그냥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저의 무기력에게 잠시 인사해 보려 이 글을 씁니다. 무기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열정이라는 것으로 변하더라고요.


8개월 공방 창업,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니면서 줄기차게 달렸습니다. 쉬는 날을 반납했죠. 돈도 벌면서 글도 쓰려니 보통 아니게 바쁘더라고요. 작은 아이가 볼멘소리를 참 많이도 했네요. 20대들의 창의와 열정, 30대들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온라인 작가들 사이에 40대가 따라가기 버거워 없는 시간도 끌어모아 살았더랬죠.


과한 의욕은 방전을 가져오더라고요. 방전은 나의 의지를 거스릅니다. 마음은 하늘을 찌르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무기력에게 잠시 길을 양보하고 있어요. 일주일 이상 시쳇말로 탱자탱자 쨌습니다. 주방 살림도 중단했고요(물론 큰아이의 실력으로 달그락 소리는 이어지더라고요, 대견하죠) 그리고 읽기를 그치고 브런치 글도 쓰지 않았습니다. 거의 매일 쓰다가 안 쓰니 이상했어요. 그리고 수업 외의 말하기도 멈췄답니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일이 없는 날 만이라도 입을 다물어야겠더라고요.

목이 많이 아팠습니다. 한 달을 가래기침으로 고생했습니다. 이런 기침 평생 처음이었죠. 약을 며칠 먹었어요. 그러고 나을 거라 믿었다니까요. 기침이 그치는데 약 한 달이 걸렸는데 잦아드려니 다른 감기 바이러스가 찾아왔나 봐요. 목도 붓고 귀가 부었답니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버텼습니다. 더 나빠지더라고요. 아프다는 것은 쉬라는 신호인데 과한 의욕이 오히려 몸을 혹사시켰어요. 더 나빠진 이유가 나에게 있었네요. 반성합니다.


비단 몸이 아픈 것 만으로 무기력이 찾아오진 않아요. 8개월 동안 쓴 글을 읽었더랬죠. 처음 썼던 글들을 다 지우고 싶었습니다. 쓸모없는 글을 생산했던 것 아닌지 덜컥 겁이 나고 주저앉는 마음이더라고요. 좌절감이 무기력을 초청한 것이었네요. 좌절감! 내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지나간 시간이 어떠했는지 평가하는 마음, 비교하기 시작하니 엉키는 그물에 갇힌 것 같습니다. 몸도 아픈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죠. 어쩌겠어요.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려는 걸 멈췄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 증명한다는 말도 하기 싫었네요. 일단 건강을 회복하고 할 소리인 것 같아서요.


식욕도 없어졌지만 꾸역꾸역 밥을 먹습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밀어 넣습니다. 뭐든 술술 넘어갈 때도 있지만 억지로 밀어 넣을 때도 있는 것 같네요. 먹어야 낫고 나아야 다시 필드로 나가 뛸 수 있으니까요


잠을 많이 잡니다. 일단 약기운 때문이겠죠. 자야 일어나죠. 너무 오래 자서 허리가 아플 때까지 잡니다. 그러고 하루 이틀 나을 줄 알았는데 회복이 빨리 오진 않네요. 나이 탓도 해봅니다. 

성급하게 무기력을 보내려고 애쓰지 않아요. 귀가 먹먹하니 세상이 저만치 떨어져 있는 거 같아 행동이 느려집니다. 천천히 물건을 옮기고 세수를 하고 집을 치웁니다. 평소 속도의 5배 이상 느려지는 것 같고 멍텅구리가 된 기분인데 그게 은근히 좋더라고요. 내가 느릴 수도 있다고 감탄을 해봅니다. 느린 사람들은 행동하는데 시간이 배나 걸리지만 생각은 깊더라고요. 느리고 진지한 사람들의 행동에 공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느리고 생산성이 없고 쳐지고 주저앉아 있으면서 쉼을 생각하고 나의 한계를 맞닥드리는게 좋아졌습니다. 스프링의 탄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나요? 그런 기분입니다.


바쁘고 급하면서 양으로 따지려는 생각을 멈추고 느림보처럼 한참을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떠날 무기력인지 모르지만 일단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랜 감기와 귀 속이 부은 증상이 나아지면 나의 무기력에게 물어볼 겁니다. 언제 돌아갈 계획인지요. 그래도 가지 않으면 처음부터 느린 사람인 것처럼  그적 거리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의 무기력은 아직은 쌩쌩하네요. 당신의 무기력 은 안녕하신가요?


*아프다고 아무 말이나 합니다. 나중에 이 글을 읽고 이불 킥하더라도, 무기력을 누리고 있는 저와 당신을 위로하기 위한 마음에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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