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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07. 2019

지우개똥가루로 부자 되기

아이라면, 흔적도 예쁘지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매일 수업하고 싶어요"

"하루 종일 공방에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젤로 좋아요"

아이들의 공수표를 빠짐없이 받아 마음에 저축한다. 말할 때 마음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누가 그런 말을 했었는지 놀랄 정도로 냉정하게 간다. 아무리 즐거워도 수업은 수업인가 보다. 피교육자는 잠이 온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아이들이 드나드는 것 만으로 매일 선물을 받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나가고 앉았던 자리에 까만 점 같은 지우개 가루가 소복하다. 매번 반복되다 보니 확신할 수 없지만 지우개 가루 발생에 규칙이 있는 것 같다. 남겨진 지우개 가루의 양은 매번 다르다. 쾌청한 날, 수요일, 재량휴업 전날 지우개 가루는 거의 없다.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운지 수업이 척척 진행된다. 날씨가 우중충한 날에 가루가 많다. 기분이 울적해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일까. 습도가 높은 날은 지우개 가루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손을 놀려 쓰기도 불쾌하기 때문일까? 늦은 시간 수업 후 가루가 유독 많다. 두세 개의 학원을 옮겨 다녀 허기져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얼른 집에 가고 싶거나, 마쳐도 다음 학원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겠지. 키 낮아진 볕이 잠시 후 사라질 어스름한 오후라서.


수업이 마칠 때 자리를 뜨는 아이들에게 가루를  치우고 나가라면 소스라친다.  더러운 것을 본 불쾌함이  담긴 반응이다. 소복하게 남겨진 가루에 묻은 것이라고는 흑연가루일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떠난 후 소복한 지우개 똥 가루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슨 이상한 쾌감이란 말인가. 미소가 절로 나오는 나를 다그친다. 지우개 가루에 느껴서는 안 될 감정이라고. 하지만 어쩔 수없다. 지우개 가루를 쓸어내기 아까워하는 몇 가지 생각 때문에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이기 때문이다.



지우개똥 가루는 아이들의 열정이다. 글씨가 반듯한 아이는 타고난 기질에 충실하게 꼼꼼히 기록하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자를 지운다. 너무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슨한 기준을 말해도 자신이 마음에 들 때까지 지우고 지운다.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는 타고난 성향 탓이기도 하다. 반듯하게 남겨진 것을 확인해야만 속 시원한 것을 말리지 못한다.


 글씨가 반듯하지 않은 아이는 그런대로 삐뚤빼뚤 열심이다. 알아보게 쓰라는 말에 자기는 알아본다니 할 말이 없다. 발표를 시켜보면 글씨를 수정한다. 자신은 알아본다는 글씨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려 읽을 수 없어봐야 고쳐 쓴다. 스스로 무안해서 빡빡 문지른다.  경험이 교정하니  잔소리가 필요없다.


열정이 없는 아이는 아예 쓰지를 않는다. 그림으로 표현하라 해도 도무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심하다. 문장으로 써보자면 낱말 하나만 적는다. 그것도 괜찮다. 외적 동기부여에 꿈쩍하지 않는 아이도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수업 진행으로 흥미를 끌고 발표를 하게 되면 짧게라도 흔적을 남긴다.  아이 나름의 최선이리라.


모든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지우개 똥 가루는 아이들의 생각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완성되지 않았다. 얼핏 떠오른 생각이 친구들과 질문 토론을 거쳐 단단해진다. 쓰다가 고치면서 명료해진다. 완벽하게 완성된 생각을 종이에 남기는 것이 어른들도 어려운 일인 것과 같다. 처음부터 창의적이며 발상의 전환을 하는 아이는 드물다.


저학년이라도 이미 굳어진 고정관념이 있다. 질문을 하면 의례적 대답을 한다. 영특한 아이는 어른들의 대답과 결이 비슷한 답안을 적어 내려 간다. 늘 어떤 질문에도 정답으로 반응할 태도라 더 안타깝다. 이른 나이부터 학습지 정답 찾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그렇다.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생각을 자기 것인 양 꺼낸다. 미리 예습해 올 수 없는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또 다른 생각을 해보라고 격려한다. "정답은 없어. 틀린 생각도 없어. 다른 생각일 뿐. 서로의 다른 생각을 들어보려고 이렇게 모여 수업하는데, 뻔한 답은 출입금지란다."


정답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 표정이다. 아이들은 얼음 위를 걷든 엉거주춤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그러다 보니 여러 번 지워야 한다. 누구나 꺼낼 수 있는 답안은 지운다. 남과 다른 생각을 꺼낼 때까지 지우개똥 가루는 계속 나온다. 아이들의 성장이 고스란히 담기는 흔적이 소복하다 못해 수북한 날일수록 기분이 좋다.


지우개 가루를 만지면 푸슬푸슬하다. 어쩔 땐 아이들의 분신 같아 털어버리지 못한다. 정사각 색종이로 학을 접어 유리병에 넣듯 지우개 가루를 모아 넣고 싶은 심정이지만 참는다. 누가 보면 경악할 장면 아닌가. 유리병에 고이 모아둔 잿빛 지우개똥 가루들. 더러워 보일 테지만 아이들의 목소리가 묻어있는 조각들인 것을 나만 알고 있다. 지금까지 책상 위 널브러진 가루를 억척스레 모았다면 가루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수업이 마치면 나는 항상 부자가 된 기분인데 기분으로 끝날 수 없다. 유리병에 지우개똥 가루를 모을 계획, 언젠가 실천해볼 것이다. 벌써 거부가 된 기분이다.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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