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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14. 2018

이런 엄마, 어때서!!

초보 시인의 생활 에세이

미안한데 미안하지 않다. 못난 엄마다. 누구한테냐고?


큰애가 며칠 전부터 혓바닥이 아프다고 했다.

혓바늘이 돋으려고 그런다고 무심하고 무정하게 말했다.

혓바늘 정도야 뭐라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못난 마음이지만

나도 혓바늘에 도사며, 나만큼 그렇겠냐고 우습게 생각했다.


아이는 며칠 동안 자기 방에서 자주 짜증을 냈다.

혓바늘의 통증이 혀 전체를 관통하고 머리까지 쩡쩡거리는

불쾌를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런데도 "그래, 많이 불편하지?"라고

아이방 문을 열지도 않은 채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 역시 무정했다.


어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혀를 내밀었다. 나보다 훌쩍 커서 혀의 아랫부분이 보였다.

"어디?"

아이는 무릎을 내려 엉거주춤했다. 사실 육안으로는 혀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의료적 행위를 집에서 하면 불법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까지 장난스레 생각했다.

아이는 기어코 자신의 혀를 만져보라고 했다.

혀를 날름날름 내미는데 나를 골려주는 것 같았다.

"조금 빨갛네, 혓바늘이 보이지 않지만, 많이 불편해?"라며 조금 정을 담아 말했다.

더 이상 혀에 관한 주제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긴 목소리였다.


아이는 오늘 기어코 자기 방에 오라고 하고선, 손거울을 보면서 내게

고통의 근원을 증명한 통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혓바늘 났잖아" 내가 어쩌다 이렇게 둔한 엄마의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일까?

잠시 멍해졌다. 아이의 혀에는 하얗게 색이 바뀐 돌기들이 족히 20개도 넘어 보였다.

나라면 병원에 실려가고도 남을 만큼의 증상이었다.

(혓바늘 3~4개만 나도 온 동네 다 알정도였던 나를 비추어 볼 때)


어린 시절 하루도 밋밋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늘 입꼬리 가장자리가 헐어있었고, 혓바늘을 상시 장착한 아이였다.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는 남형제 사이에 낀 딸내미라 그러려니 하시며

그칠 줄 모르는 나의 짜증을 받아 주셨다.

늘 입천정에 닿으면 느껴지던 돌기를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우거지 상이었던 유년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아이 앞에서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미안해, 나는 진짜 이만큼 심한 줄 몰랐어. 그냥 낫겠거니 생각한 게 실수였어.

많이 힘들다고 왜 말을 안 해?"

"엄마, 며칠째 말했잖아. 그리고 밥도 잘 못 먹었다고"

풉~이라고 현실 웃음이 터질 뻔했다

(잘 못 먹던 밥이 그 정도일 수 없다고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증상이 심해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혼자 아팠을 시간을 생각하니 안쓰러워졌다.

"내일 꼭 혀에 바르는 약 사 올게.

오늘 사려다가 이 정도로 네가 불편한 줄 몰랐고,

강의하고 글 쓴다고 바쁘기도 해서 잊어버렸어. 정말 미안해"


아이가 많이 자랐다고 방심했나? 감기 걸리면 맑은 콧물에도

의사조차 권하지 않는 입원을 하려고 기를 쓰던 나의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많이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안 미안했다. 

솔까말~~ 하자면 미 안(않)했다. 통증에 대한 둔한 반응으로

아이의 불쾌함이 지속된 것은 미안하지만,

나의 목표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미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졌다.


내가 당당하니 사과도 담백하게 변명 없이 나왔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해의 말을 쏟아부으니 아이는 갑자기 누그러졌다.

사과하고 숙이면 더 비난받을까 두려운 게 사람인데, 생각과 달랐다.

아이는 싸가지가 있었다. 인의예지 덕목이 장착되어 있었다.

"엄마, 괜찮아진 거야. 혀 전체가 따가웠는데 앞쪽으로 모여

요만큼만 돌기가 올라온 거야. 나아지고 있어."


추신)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혓바늘이 난 거야?"

"그걸 이제 물어봐? 며칠 전 홍차 태워서 뜨거운 온도 그대로

굵은 빨대로 빨아먹어서 입안이 온통 그랬어"

"앗뿔싸, 다행이다. 빨대로 그렇게 먹으면 화상 안 입은 게 기적이다"

"그래? 내일 꼭 약 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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