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Feb 25. 2020

쿄호 젤리는 자기 효능감이다.

집에서 젤리를 만든다면 믿으실까? 난 못믿었지.

커버 이미지 출처:itempage3.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B717830135&frm3=V2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고 완성된 후 먹느라 바빠 또 사진이 없는 점 이해해주세요. 정신을 차리니 남은 게 없을 정도로 젤리스럽다니까요>

쿄효젤리가 생소하신 분, 끝까지 읽으시면 집에서 만들어볼까 결심할지도 몰라요. 이 글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젤리한번 만드시고 성공경험 쌓으세요.


아이가 작년부터 젤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장난치지 말라고 말렸었다. 그런데 최근 병이 다시 도졌다. 요즘 유튜브가 대세 아닌가. 시판되는 모든 것을 실물과 똑같거나 혹은 그 이상의 퀄리티로 제작하는 이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숨기지 않는다. 모두에게 공유하여 90만 120만 300만의 구독자를 보유하는 것이다. 아이들 일상에 잘 정리된 그들의 지식과 노하우가 아주 가깝다는 사실에 새삼 더 놀랐다. 아이의 도전은 먼저 도전한 이들의 영상을 통해 동기 부여된 것이다.


"엄마, 진짜 쉬워. 나 젤리 만들고 싶어"

어차피 코로 19로 외출은 상상불가니 집에서 뭐라도 하라고 시켜야 하는데 새 학기 예습, 온라인 영어학습 외에 더 시키면 갈등이 커진다. 그래서 체험학습을 시킨다 생각하고 만들기를 허락했고 재료를 골랐다. 한천가루나 곤약가루, 젤라틴가루 중 고민을 많이 했다. 가루마다 결과물의 식감이 다르다고 하니 '어느 것을 고를까요 하나님한테 물어봅시다'로 정했다. 가루가 도착하기까지 아이는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듯 헤벌쭉거렸다.


젤라틴가루가 도착하기 전 거룩한 환영식을 준비했다. 외출이 위험하지만 다이소에서 쿄호 젤리를 만들 비주얼의 핵심인 손가락 고무 골무와 케이블 타이 소형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포도주스를 샀다. 다행은 일전에 스콘에 빠져 계량저울과 계량컵 등이 있었어 다른 준비물은 필요 없었다.


택배도착이 늦어졌지만 아이는 울상 짓지 않았다. 크리에이터들이 하듯 모든 것을 정렬해두고 경건하게 소파에 앉아 다양한 쿄호 젤리 만드는 법 영상을 시청했다. 누가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는 레시피. 비율이 중요했다. 가루는 도착했고 작전을 시작했다. 포도주스 600미리에 젤라틴 10그람, 그리고 설탕 32그람(내가 넣지 않아 어렴풋하다)으로 끓이고 거품이 나자 불을 끄고 식혔다. 작은 아이손으로 완성하기가 목표였으나 마지막 고무 골무에 식힌 포도주스 조합 액체를 넣는 일은 어려웠다. 풍선처럼 부풀려 큰 거봉 알맹이처럼 만들고 케이타이로 묶는 것은 내가 도와주었다. 모양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길쭉하게 나와 별로였지만 완성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못생겨서 일차 실망, 하지만)

출처는 커버 이미지 주소와 같습니다.

쿄호 젤리는 거봉 모양 젤리다. 동그랗고 커다란 젤리 알맹이가 비닐에 들어있는데 터트리면 비닐만 '퐈작'하고 뜯어져 탱글탱글한 자태가 드러난다. 비주얼도 먹음직스럽고 먹는 방법이 새로워 아이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값이 비싸다는 것 외엔 매력적이다. 식감도 좋다는데 우리가 완성한 쿄호 젤리는 1차는 망작으로 끝났다. 아이는 하늘이 무너지듯 실망했고 사방은 포도주스가 튄 자국으로 전쟁터와 흡사했다. 만들던 도구 모두 끈적했고 젤리는 말캉거리지 않고 풀어졌다. 나는 외출을 해야겠기에 전쟁터를 치운 후 2차 실험을 전적으로 맡겼다. 인덕션이 화기가 없어 많이 걱정되진 않았다. 맡길 수 있을 만큼 자랐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엄마, 내 생각에 젤라틴이 적은 거 같아. 다시 안 굳은 액체를 다시 넣어 가루를 더해볼까?" 아이는 또 어질러질까 봐 눈치를 보며 전화했다.

"다음 주까지 개학도 연기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젤리 전문가가 되어버려" 기껏 실패해도 청소를 더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래라저래라 지령을 주지 않았다. 아이 스스로 노트를 꺼내 계산을 하며 실험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요리체험이었지만 비율의 문제가 발생하니 과학실험으로 변한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성공 소식을 알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높은 '미'음역대로 돌고래 소리를 냈다. 아이의 실험은 그에 멈추지 않았다. 이미 엄마의 허락을 받았으니 대놓고 여러 가지 도전을 했다.

"엄마, 내가 이걸 해내다니. 엄마 내가 해냈다고, 어때? 믿기지 않아"

"엄마, 나 자판기 우유 스틱 그거 태워서도 만들었는데 우유맛이 많이 나서 고소하고 완전 푸딩 같아"

나도 얼른 달려가 먹어보고 싶었다.


냉장고 문 한 칸을 젤리 칸으로 세팅하고 설거지도 다해둔 딸은 신발도 안 벗은 나에게 젤리를 보여주었다. 얼른 시식을 했다. 놀라운 맛이었다. 너무 소중하고 귀여워서 하나만 먹겠다 말하고서  여러 개를 순삭 해버렸다. "이제 다 컸네. 엄마도 딸이 만들어준 쿄호 젤리를 먹다니 자랑하고 싶네."

언니에게도 나눠주고 아빠 몫도 따로 준비해둔 아이가 대견했다. 바닥 여기저기가 끈적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준수했다. ㄴ

딸아이 폰에서 건진 사진 하나. 쿄호와 모양새는 다르지만 맛은 동일하다는 사실.

"엄마, 나 소원이 더 있는데 이번 주에는 계란 푸딩을 만들어보고 싶고 다음 주에는 우유 떡이란 걸 만들고 싶어"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젤리를 자기 손으로 만들고 나니 뭐든 다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만든 것을 가족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했다.


자기 효능감은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라는 심리학자가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아이는 스스로 작은일 하나씩 정복하면서 자기를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믿어주게 된다면 나중에 '무엇이든 해보자'라고 결심하기 쉬울 것이다. 누적된 성공경험으로 자기 효능감이 높아져 어떤 도전도 쉬워지지 않을까? 전국대회 입상이나 영어 말하기 대회 수상과 과학발명 전국대회 순위권에 드는 거창한 성공은 아니지만 일상 가운데 소소한 성공 또한 아이를 세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래, 다른 것도 만들어봐. 재료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 어제든 환영이다. 다만 네 용돈으로 재료를 사렴"

아이는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해 용돈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내친김에 한마디만 더 했다.

"뒷정리도 하는 거 알지?"

매거진의 이전글 냉동실 탈탈 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