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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08. 2020

고학년 학부모와 눈이 마주칠 때.

왈칵하는 마음으로 약속해요.

오전 햇살이 꽃샘추위로 서늘한 공방 내부를 데워준다. 깜빡깜빡 졸던 눈 비비고 도시락을 언제 먹을까 고민하는데 문이 살며시 열린다. 마스크를 낀 단발머리의 그녀가 장바구니를 들고 쑥 들어온다. 3번 정도 만나니 눈에 익은 얼굴이다. 아이들이 공방에 올 시간이 아닌데 그녀 혼자 왔다. 장바구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낸다.


꺼내던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고,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볼이 붉게 타오른다. 당황한 목소리를 더듬으며 "아이고, 얘가 왜 이렇게 됐지?"라며 멋쩍게 웃는다.

"어머니, 이렇게 일찍, 그리고 이건 또 뭐예요?" 5일장에서 오래된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그녀가 달아나듯 가버린 후 탁자에 짜부라져 있는 봉지를 열었다. 불투명한 봉지 안에는 누렇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들어 있었다. 어르신의 얼굴을 닮은 식빵이다. '이게 왜 이러지, 이게 아닌데'라고 말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뜨거워서 일그러졌지만 참 맛난 빵이랍니다.




공방에서 조금 떨어진 상가에 빵집이 하나 있다. 하루에 몇 가지의 빵(식사를 대체할 빵이 주로 있으며 간식을 위한 토핑 가득 빵은 없다.)정해진 양만 굽기 때문에 늦으면 살래야 살 빵이 없는 집이다. 식사 대체용 빵이라식빵이 주로인데, 가격이 착하지 않지만  갓 구웠다는 신선함과 속살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가게다.

짜부러졌지만 맛은 쵝오!!




그녀는 오전이 다 가기 전, 빵이 나올 시간에 일부러 들러 몇 가지 장을 보며 내 것 하나를 집었을 것이다. 김이 솔솔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장바구니에 넣고 몇 분을 걸어 공방까지 왔다. 문을 열 때까지 두근거렸을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무게, 사춘기 큰아이에게 뭐라도 시키고 싶은데 안 되는 괴로움. 한 달 동안 아이들의 태도가 바뀌어 집중력도 사뭇 나아다는 피드백에 힘을 많이 얻은 게 틀림없다.






내가 아이 둘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공간을 내주고, 집중할 수 있도록 그냥 둔 것. 주입하지 않고 호기심을 느끼게 몇 가지 던져준 것. 아이의 독서 수준에 맞춰 책을 골라준 것. 어느 수준까지 쓸지, 쓰는 게 지금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 정도가 다였다. 처음 상담할 때 사춘기인 큰아이가 꿈쩍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지금 안 간다고 말하지 않으니 세상을 다 얻었다 느끼지 않았을까? '책이란 필시 종이에 검은 글씨가 있는 것이겠지'라며 강 건너 불구경이던 작은아이가 읽은 책 내용을 엄마 앞에서 말하는 모습이 경이로웠을 것이다.


갓 나온 열기에 쪼글쪼글해진 빵을 꺼내보고 눈물이 왈칵 났다. 며칠 전 수강료를 보내며 아이들의 변화에 감사하는 문자가 생각났다. 그녀의 마음을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참 애가 탔구나, 그동안 부족한 엄마라고 많이 자책했구나, 이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힘이 나는구나.


대한민국의 학부모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이가 뒤쳐질까 두렵다. 억지로 당기는 게 아닌 줄 알지만 다른 방법을 몰라 울상이다. 모두 다 시키는데 나만 안 시키는 게 바보 같기만 하다. 우리나라 교육은 결국 결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말에 조바심이 난다.


불안과 조바심과 걱정 염려가 이 땅의 학부모의 내면이다. 여기까지면 또 어떨까. 더한 게 발목을 잡으니, 끝도 없이 추락하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그것이다. 모두 매일 두렵고 괴롭다.


죄책감을 조금 더 살펴보면 이렇다.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하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다. 다 부모탓인 것 같다. 정보력, 경제력을 갖지 못한 서민으로 달리 방법도 없다. 안다고 해도 빚을 져서라도 시켜야 하니 난감하다.


쫄깃한 빵의 속살을 뜯어 입에 머금고 속으로 그녀에게 약속한다.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낼 국어실력을 키워주겠다 확답을 주못하지만, 스스로 책을 좋아하도록 도와볼게요. 입시를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이끌어 볼게요. 아니, 제가 이끄는 게 아니라 아이가 가는 길 옆 돌부리 정도 치워줄게요. 아이가 발견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어주실 거죠? 저는 믿거든요. 아이들은 몸과 눈으로 말하니까요. 아이들 할 수 있어요. 자기의 길을 발견하고 찾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랍니다.


빵을 뜯어  씹는다. 입을 열어 공중에 숨을 쉬니 뜨끈한 김이 숨과 함께 공중에 흩어진다. 참 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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