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Apr 14. 2020

엄마가 아이에게 떼를 쓰는 이유.

느리게 가면 행복한 이유

(어떤 떼를 쓸까요? 어떤 이유로 떼를 쓸까요? 이 글은 자녀교육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기록했어요. 조심하세요. 다 읽으면 "느림"이라는 태도에 반해서 아이를 의도적으로 방치하게 될지도 몰라요.


나의 취미는 베이킹. 두 달 만에 머랭 쿠키, 일반 쿠키, 머핀, 스콘, 마카롱(매일 실패지만 도전 중), 모닝빵, 식빵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최근 과몰입한 탓에 잠시 한숨 돌리고 있다. 매일 돌리던 빵공장을 느슨하게 운영하는데 엄마가 자꾸 떼를 써서 난감하다.

 

"빵 구워줄 수 있겠니?"

"계란과자 만들어 줘"

"노 버터, 밀가루는 반만, 코코넛가루 반을 더해서"

"오븐 말고 에어 프라이기나 프라이팬으로 구울 수 있어?"

"이스트를 넣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발효가 더 잘되는 방법도 찾아봐 줘"


떼쓰는 엄마는 요구도 많고, 시간도 우후죽순이다. 모닝빵이 먹고 싶다며 취침시간인데 나를 부른다.


한번 거절했지만 엄마의 질긴 '떼'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엄마는 미안했던지 시간을 줄이겠다고 준비물을 세팅해 두었다. 행복해하는 엄마 때문에 싫은 티를 내지 못 내고 잠이 오는데 반죽을 한다. 엄마는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신데렐라처럼 나를 부려먹는다. 엄마는 보조, 나는 메인 베이커.


"엄마가 하면 안 돼?"


"절대로 못해. 네가 어릴 때 진짜 많이 도전했는데, 모든 과정이 복잡하게만 보이고 굽는 것마다 실패니 절대로 혼자는 못해. 그래서 네가 너무 필요해"

정녕, 초딩의 작품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뚝딱 만들어 놓고 기다립니다.

내가 떼를 쓰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나의 실패를 극복하고 있는 아이 덕분에 묘한 승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승리감 혹은 대리 성취감 때문에 '떼를 쓰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취미 백만러다. 몰라서 못한 취미는 있어도 알면 다 도전했다. 단 낚시나 민간인 야구, 농구 이런 것은 제외다. 취미에 젠더 구분은 없겠지만 나는 여자 여자 한 취미가 취향이다. 꾸미고 만들고 고치는 연주하는 취미 커리어를 20여 년간 쌓았으니, 지인들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본능적으로 나에게 맞는 취미를 알아채면 즉시 몰두한다. 3~6개월 안에 고급과정까지 도달은 다반사였다. 취미로 자격증도 많이 땄으니 4차 산업혁명에 잘 맞는 중년 인재가 아닐까. 목표를 세우면 잠을 안 자고 골몰하는 열혈파니 남편의 핀잔은 기본 옵션이었다.


취미 여정 중, 열정만 많던 나는 1그람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베이킹에게 강제 퇴출당했다. 수없이 도전해도 쿠키는 돌이 되고 빵은 젤리가 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하고 싶은 열정과 똥 손의 콜라보는 엉망진창이라는 쓴맛을 남겼다. 쓰디쓴 맛을 큰아이가 오롯이 받아먹고 탈없이 잘 컸으니 감사하지만 실패와 좌절은 그대로였다. 그런 나의 오점을 만회해주는 이가 있으니 작은 아이가 나의 구세주가 되었다. 아이는 간편하고 손쉽게 쓱쓱 만들어 내 버리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작은 아이에게 떼를 써서 이틀에 한 번씩 취침시간을 지연시키고 있다. 내가 떼를 쓰는 것이 좋은 양육은 아니겠지만, 아이의 베이킹은 날로 발전 중이다. 다양한 재료의 조합을 미션으로 주면 종일 최고의 레시피를 찾고 만들며 문제 해결한다. 내가 퇴근할 즈음 집안은 고소한 냄새로 가득하고 아이는 뛰어나온다.

"엄마가 말한 거 결국 성공했어. 며칠 계속 실패했는데 이젠 아냐. 너무 기뻐"


베이킹에 추가하여 다른 영역까지 떼를 쓰고 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열정 많고 낙관적이지만 치밀하지 않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뒷심 또한 부족하다. 집요함, 치밀함, 목표를 세우면 꼭두새벽부터 덜그럭 거리는 주도적인 성향의 아이. 내게는 기적 같은 선물이다. 코로나로 자유시간이 많다지만 학교, 수학학원, 영어 때문에 숙제가 많아졌다. 사실 딴짓을 못하게 하려는 부모님과 학원들의 암묵적 결의로 숙제가 많아졌다는 사실. 몰입을 끊어야 하는 하루 몇 가지의 과업. 거기에 엄마표 숙제를 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빵이며 쿠키를 구워보라고 떼를 쓰고 있다. 베이킹에 방해되는 문제풀이 숙제를 접으라고 까지 했으니 나의 떼쓰기는 좀 이상할 지경이다.


방치가 아닌 느림을 선택했다. 삼각김밥 먹으며 학원 뺑뺑이를 돈다는 대치동 근처도 못 가봐서인지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미리 이 학습터 강의 진도를 나간 아이들도 많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리지만 친구들의 위기감 조성에 조바심을 낸다. 지각이 싫어 이른 등교를 하는 성격의 아이다. 조바심과 스트레스로 급하게 하는 공부는 체하기 마련. 그리고 오래 남지도 않는다. 여유를 갖고 스케줄에 맞춰 하루 양만큼 하자고 했다. 결단코 버거우면 학원도 정리하자고 말하니 아이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가슴을 두드린다.


"괜찮아, 베이킹 연구하는 걸 보니, 목표만 세우면 넌 뭐든지 할 수 있겠네.  오늘 영어는 하루 쉬어."

나는 매일 빵이나 과자를 구워보라고 떼쓰고,  공부 천천히 하라고 떼쓰는 이상한 엄마다. 그리고 계속 떼를 쓸 작정이다. 좋아하는 빵 구우니 좋고, 천천히 해도 되니 좋고.

"너도 좋지?"


혹시 아이가 내적 동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싶고 잘하고 싶다고 한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코치할 거예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느리게 가면 망한다, 뒤쳐진다'는 전설. 학부모들 사이에 떠도는 신념을 저는 안 믿거든요.

매거진의 이전글 노릇노릇한 오후에 '개학 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