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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31. 2020

노릇노릇한 오후에 '개학 연기'

온통 노랗다가 먹구름.

"행복이 도착했습니다."

코로나 19로 달라진 일상이라면, 큰아이는 자기만의 스케줄을 스스로 기획해 메꾸느라 바쁘고 작은아이는 취미생활에 푹 빠져있다. 엄마와 각자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자율주행 라이프. 누군가의 지시에 굴종해 살지 않는 삶이다. 나도 지령을 내리지 않고 아이들도 엉겨 붙어 과한 의존을 표하지 않는다. 필요시 다시 합체하면 되는 융합형 인재 여자 셋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며 살고 있다.


"딸, 계란과자 먹고 싶어. 만들어 줄래"


마트에 가면 널린 게 계란과자겠지만 솜씨를 확인하고 싶었다. "과자가 도착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에 지퍼백 하나가 도착했다. 작은 주머니에서 쑥 튀어나온 노릇노릇한 동그라미들. 해사한 오후 햇살처럼 눈부시다. 계란과자는 다른 쿠키보다 손쉬운지 오븐에 10분 구우면 된다는 재잘거린다. 분명 얼마 전까지 아이들이 무얼 먹고 싶다면 장을 봤는데 이제 집이란 공장에서 아이들 손으로 만들어진다.


"엄마, 닭볶음탕 먹고 싶어. 고추장 팍팍 넣어서"


이제 요구가 달라졌다. "엄마, 닭 볶음탕 할 건데 닭고기 어디 있어?" 냉동실 안쪽에 가려진 것을 못 찾을 때만 전화가 온다. 작은아이도 핫도그 먹고 싶다거나 순대를 요구하더니 못 들은 지 한 달이 더 지났다. 배달을 해주고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에게 추가 주문을 한다. "내일 아침은 머핀이랑 먹고 싶네."


하루 이틀 하다가 그만둘 취미일까 했더니 오래오래 갈 것이라 예감하고 아이 용돈으로 박력분, 강력분 밀가루와 빵에 들어가는 분말 이스트에 식용색소까지 주문해주었다. 내일 머핀은 또 어떤 맛일까? 일상에 작은 것들이 도착할 때마다 감사하게 된다. 오랫동안 집에 갇혀 지내다 지친 아이들이 공방 앞을 지나가다 건네는 인사도 반갑다.



조금 전까지 반가웠다. 대략 난감. 글을 발행하려는데 주춤거렸다. 노릇노릇한 오후 햇살에 취해서 희망을 그리다가 비보인지 희보인지 도착했다. "온라인 개학" 소식. 난생처음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따스해진 마음이 다시 심란해지지만 견뎌야지 별수 없다. 내 아이 수업도 난감하지만 공방에 학생들 수업도 난감해진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더 이상 버티기만 할 수 없다. 실시간 라이브 생방으로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할 것 같다. 부모님들이 전화가 걸려온다. 비대면 수업 요청. 잘할 수 있을까? 학교 선생님들도 당황스럽기 매한가지겠다. 준비기간도 너무 짧아 실행이 잘 될까.


일단 버터향 가득한 계란과자를 먹고 다시 생각해야겠다. 생각의 총량을 다 소진해서 다시 가동하려면 당 충전이 필요하다. 개학 무기한 연기라니. 행복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났다고.

갑자기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반가운 소리다. 현실의 답답함을 뚫는 희망찬 소리. "엄마, 오늘 저녁엔 순대볶음 할 테니 양파 필요해". 개학 연기든 온라인 수업이든 생각을 접고 마트로 간다. 양파 사러. 오늘 저녁은 아이가 만든 매콤한 순대볶음으로 위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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