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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27. 2020

스콘이 봄비처럼 남자 마음에

딸이 만드는 행복 레시피

우리 집 식탁문화가 바뀌었다.


현재 초등 5에 올라가는 아이는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제과제빵에 푹 빠져있다. 코로나 19의 공이 크다. 그녀는 넘치는 자유시간과 느려도 된다며 깃발을 흔드는 엉뚱 교육철학 엄마 덕에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어제 스콘을 성공하고 지인에게 선물한 덕에 자신감이 붙었다. 아몬드가루를 첨가해볼 욕심을 내더니 목표 대상을 정했다. 아빠, 딩동댕. "어제 스콘 너무 맛있는데 더 없니?" 기다렸다는 듯 부친의 말에 탄력을 받았고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간에 오븐을 예열하고 있었다.

계란물 묻히기는 제빵의 꽃이라지요.

더 맛있는 스콘을 맛 보여주려는 아이의 열정에 덩달아 아빠가 신이 났다. 고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제대로 큰 목소리 못 내고 고양이 걸음을 요구받고 있었다. 큰아이에게는 노크하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접근금지를 선언해 씁쓸하게 돌아서기도 했었다. (가끔 돌아섰지 자주 진입해서 갈등이 생기는 게 다반사였다.) 게다가 갱년기도 아닌데 불면증이 가끔 찾아와 피곤과 나른함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중년의 남성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를 느끼지는 않을까? 정답은 반대였다. 초긍정 시어머니를 닮아 주도적이며 낙천적인 남편이 소외라니.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그 속을 열어보지 못해 추측할 뿐이다. 분명 외로움과 소외를 1프로라도 느낄 거라고. 작은 아이의 스콘에 감동하는 표정이 샤방샤방하기까지 하니 심리적 변화가 이전과 다른 게 확실하다.


시큰둥한 아빠가 어깨를 덩실거리는 것은 작은아이의 스콘 때문이다. 아기 같던 존재가 조물조물 손을 놀려 빵을 굽는다는 사실에 한번, 아빠를 위해 남겨둔 것에 두 번 감동했다. 더욱이 내일 아침 아빠만을 위한 스콘이라니 심쿵이 백만 번 일 것이다. '엄마와는 아주 다르군'이라고 느껴도 무방하다. 내가 채울 수 없는 것을 대신하니 나로서는 고마울 뿐. 아빠의 어깨춤과 하트 뿅뿅 눈을 확인한 딸은 내일 아침 아빠에게 대접할 스콘을 열과 성을 다해 굽고 있다. 밤인데 낮과 같은 모습에 '안 자냐?'라고 대뜸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 흐뭇게 확실하다.


스콘은 이스트로 발효를 오래 하는 빵이 아니라 식으면 겉이 딱딱하고 속은 퍽퍽하다. 절대미각을 자랑하는 남편이 스콘의 맛에 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의 정성과 지극한 관심이 무미건조한 일상에 행복을 배달한 것이 확실하다. 낮에도 병아리처럼 귀여운 스콘의 실물을 영접하겠노라 집에 잠시 들렀다니 그의 훈훈해진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다글다글 다육이 잎같이 다닥거리는 스콘을 식혀요

봄비가 내리는 아침,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온 남편은 살짝 데워 구수한 냄새가 나는 스콘에 잼과 밀크 잼을 발라 음미했다. 구수하지만 살짝 퍽퍽해서 목 넘김이 껄끄러웠다. 아몬드가루 입자가 굵어서 그런가 했더니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 내가 만들었다면 접시를 밀어냈을 식감이지만 접시에 세팅된 것을 모조리 다 먹었다. 기어코 삼켜야겠다는 제스처로 꾸울꺽 넘기며 바로 우유를 찾긴 했지만 표정은 안면 세포 모두 박수를 치며 만족해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벚꽃이 피고, 봄비가 와요. 아침이네요. 커피한잔 해야겠어요.

딸, 엄마 대신 아빠의 기를 살려줘서 고마워

아빠 마음에 봄비가 내렸네.

내일 아침은 부드러운 머핀으로 부탁할게.

'꾸울~꺽!, 우유 좀 건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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