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Mar 26. 2020

초딩이 혼자 구운 '스콘'에 울컥!

설마가 실화가 되는 현장

공방에 출근하려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밀가루를 날리던 아이와 한판 붙었다. 의견 차를 좁힐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스콘을 도전하겠다는 아이를 말렸었다. 아직 제빵은 어렵다는 게 나의 요지였다. 말리는 엄마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실력뿐, 아이는 과감하게 머핀 틀에 머핀을 구워버렸다. 이미 퇴근할 때마다 다양한 베이킹을 선보였던 터라 놀랍지도 않았다.

어느날 퇴근하니, 에그타르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영역. 밀가루로 만드는 과자와 빵의 세계. 정확성을 요하는 모든 작업에 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영역은 대강해도 비슷하게 따라 하는데 제빵 앞에서는 똥 손이 되고 만다. 마무리가 안되고, 결국 미세한 조절을 못해 빵이 돌이 되고 쿠키가 무기가 되던 시절. 내 생애 아이들과 오손도손 쿠키를 굽는 일을 진작에 포기했다. 내가 구운 쿠키를 먹던 아이가 울며 이가 부러질 것 같다고 한 일로 나는 제빵과는 손절한 것이다. 이런 엄마를 닮았을 아이들 또한 제빵에는 재주가 없을 거라 확신했다.


나의 예측은 빗나갔고 아이는 각종 도구를 모으고 재료를 사더니 저절로 굽기 시작했다. 나의 도움이라고는 1도 안 들어갔으니 저절로 배운 것이다. 머랭을 도전할 때 동영상이란 동영상은 다 시청했다. 하나씩 종류가 달라질 때마다 아이는 초보자에게 가장 적합하면서도 결과물의 퀄이 좋은 영상을 찾아내 며칠을 돌려 보았다. 그날부터 아이는 나더러 빨리 퇴근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저의 자유와 나의 자유가 만나 축포가 터졌다.

그녀에게 쿠키는 오후 낮잠보다 쉬운 일이라 한다.

영상을 시청하고 가닥을 잡은 아이는 메모지에 순서를 복기한다. 메모지를 의지해 차근차근 1그람의 오차도 없이 고사리손으로 오븐을 돌린다. 각양각색의 종류마다 머랭 치기 법, 밀가루 반죽의 차이, 버터의 온도와 양등 신경 쓸 것이 많다. 나와는 맞지 않은 세상의 법칙들이다. 그것을 해내는 아이가 신기했다. 혹시 내가 낳은 아이와 바뀐 아이 아닐까?


정확과 정밀의 방법론, 시간과 온도의 좁은 틈을 넘나드는 그녀의 재주는 남달랐다. 이제 길어진 방학도 끝나가고 매일 학교에서 내주는 온라인 과제를 하느라 지칠 법도 한데, 눈을 뜨자마자 스콘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서 좋아하는 일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임을 새삼 아이를 통해 배웠다. 이모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약속에 스콘을 만들라고 허락했다.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이모를 기다리는 손에 오동통하게 부풀어 계란물로 세수한 맛깔난 스콘이 포장되어 있었다. 아이만큼 귀여운 얼굴이었다.

해사한 얼굴 내밀고 방긋하는 스콘의 얼굴, 아이를 닮았다. 귀엽다.

큰아이를 키울 때 획일화된 입시 중심의 교육에 회의를 느꼈지만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만큼 오니 지구 상의 사람의 수만큼이나 길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다양하다 못해, 길은 만들면 되는 것이라는 사실. 스마트폰도 없던 길이었다. 인공지능도 상상 속에만 존재했었다. 그보다 이전에 수많은 발명품, 사회제도 어느 하나 미리 짜여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없던 길을 만드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일상의 작은 도전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작은 도전과 실패가 모여 아이의 길은 더 선명해지고 길게 이어질 것이다.  


작은 아이의 베이킹이 중심이 된 겨울방학, 가족원 모두 행복했다. 저는 만들어 성취감에 취하고 가족들은 달콤하게 먹어 배부름에 취했다. 잔소리할 일도 없고 찡찡댈 겨를도 없었다. 오가는 대화는 다음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에 대한 재잘거림들. 두 아이를 풀어주니 저절로 자기만의 길을 스스로 찾고 있다. 반짝거리고 있다.

초기 작품, 초기가 2월 말이라니, 한달만의 급성장에 박수를 짝짝짝

곧 개학이다. 다음 목표를 치즈볼로 정한 그녀가 나를 탐색한다. 어떤 명분으로 내일의 오븐을 돌릴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린다. 너무 몰입할까봐 하루에 한가지만 만들라는 지령때문이다. 목표를 위해 대상자를 정하는 방법, 신선하다. 아빠 맛보시게 하려면 많이 만들어 보라고 했다. 시키지 않은 숙제로 태클을 걸까 봐 벌써 과제를 다하고 안 해도 되는 영어 리스닝까지 했다는 말에 탕후루도 만들어보라고 딸기를 사주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지지받을 때 다른 과업까지 신바람 나게 할 수 있는가 보다.


치즈볼 만들기 영상을 찾던 중 초등 사회 강좌를 이것저것 누르던 아이는 나를 불러댔다. 일전에 매일 베이킹만 하고 사회가 어려워지는데 어쩔 거냐 타박했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엄마, 5학년 예습하던 내용 억지로 외우려니 힘들었는데, 강의 하나 듣고 내용이 저절로 다 기억나. 안 외워도 돼. 엄마 저 강사가 하는 강의 다 찾아 들을 거야. 엄마가 설명할 땐 안 외워졌는데"  이런 기회가 없다. 하나 더 아이를 당길 차례다. "영상 시청 많이 하면 눈 나빠지는데, 강의 듣고 눈알 50번 굴리기 하려면 봐도 돼"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를 말리는 척하면서 눈 운동의 효과까지 두배로 끌어당긴다.

 "아싸~, 신은 아이와 나에게 기회를 주시는군요. 자발성으로 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최적의 방법으로"


아이의 일취월장을 아래글로 확인하세요

https://brunch.co.kr/@zzolmarkb6sm/508

https://brunch.co.kr/@zzolmarkb6sm/729


매거진의 이전글 2000원으로 행복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