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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28. 2020

머랭 쿠키 값에 숨은 비밀

가격에는 가치가 들어있구나.

*최근에 아이의 취미생활로 글감이 주로 제빵 쪽임을 밝힙니다. 밀가루와 휘핑기를 쥐어주고 부러 소재를 만들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얻어먹기만 할 뿐인걸요. 절대 강요하는 엄마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드리며 이야기로 고고할까요?


이웃집에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남자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제한된 간식만 먹을 수 있다. 작은 아이의 제빵 솜씨를 자랑하다 보니 그 아이가 머랭 쿠키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알게 된 이상 아니 만들 수야 없지. 딸에게 주문을 했다. 미니오븐을 사용하는 터라 한판에 계란 하나만 필요하다. 그런데 시간은 한 시간. 한 번만 구워보면 '그냥 사 먹고 만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얄미운 과자다.

윤기가 주르르

아이는 흔쾌히 계란을 하나 꺼냈다. 과자를 굽기 시작한 날부터 냉장고에는 계란이 떨어질 날이 없다. 모든 제빵에 계란은 필수니까. 아이는 한 달 전 제빵에 발을 담그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설날 남은 용돈으로 휘핑기를 샀다. 그 덕에 머랭을 만드는 과정이 간소해졌다. 굽는데 한 시간도 잔인한데, 재료 준비에서 손목이 나가도록 거품기를 저어야 한다면 누가 도전할 수 있을까. 머랭 쿠키는 그렇게 귀한 과자다.


외출 후 다 구워져 나온 머랭은 유난히 때깔이 고왔다. 결은 엄청나게 부드러워 비단 같았다. 살짝 더 구워져 연 살구빛이 나는 것은 도저히 맛을 볼 수 없을 만큼 영롱하고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에게 이전에 만들었던 그 많은 머랭과 차이가 나는 이유를 물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휘핑기를 1로 돌리기만 했다가 이번에 4로 잽싸게 돌렸다는 차 이외에 모른다고 했다. 가정집에서 초등생이 만들었다기에는 고품격이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초기작-기포가 적나라하죠?

머랭 쿠키의 재료는 간소하다. 계란 흰자, 설탕 일정량, 레몬즙은 생략 가능. 이게 다다. 진실로 그렇다. 더 이상 어떤 가루류도 필요치 않다. 위 사진은 아이가 처음 머랭을 거품기로 15분 저어 만들 때 기포 가득한 표면이 눈에 띈다. 모양도 들쭉날쭉.. 한 달이 지난 시간 아이의 솜씨가 많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랭 쿠키  성공의 중요한 비결은 시간과 온도에 있다. 작년에 똥 손 엄마인 내가 팔을 걷고 머랭 쿠키를 선보인다고 했다가 망작으로 끝난 적이 있다. 그때는 레시피를 글로만 보고 도전했다. 예열도 하지 않았고 온도도 높았으며 굽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짧았다. 그것이 문제인 줄도 모르고 거품을 잘 못 냈다거나 오븐기가 썩었다고 둘러댔다. 아이들에게 아픔의 추억으로 남아 '집에서 머랭 쿠키 따위는 불가능'이라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온도는 대략 90~100도를 맞춘다. 예열한 후 그 온도에 1시간을 굽는다. 더도 덜도 말고. 시간이나 열은 오븐마다 달라 몇 번의 도전을 해야 최적의 환경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완성하는 머랭 쿠키를 인내의 열매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사르르 녹는 머랭 쿠키를 사달라 졸랐다. '작은 게 어찌 비싸냐'라고 자주 사주지 않았다. 이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머랭 쿠키의 값의 대부분은 인내라는 것을. 물론 전기세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얄밉지만 귀여운 머랭, 볼이 통통하구나

"대단해, 너무 멋져. 최고야. 너는 누굴 닮았니. 우주인이세요?"등의 호들갑을 떨었다. 불가능이 눈앞에 가능으로 펼쳐지는데 흥분하지 않으면 뭐란 말인가.

 "엄마, 항상 이랬어. 차이가 뭐가 난다고 그래. 나 원래 이렇게 만들어. 엄마가 요즘 내가 만든 것 먹느라 머랭 쿠키를 못 봤구나."라고 저도 천연덕스레 말했다. 아이에게 이미 머랭 쿠키는 자다가 일어나 세수하는 것처럼 쉽고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쿠키를 성공한 게 다가 아니다. 이제 목표를 이룰 시간. 이웃집으로 쿠키와 그 아이가 좋아하는 곶감을 들고 갔다. "띵똥" 아이 아빠가 나왔다. 나는 어깨 넘어를 봤다. 집에 아이들이 없었다. 근처 할머니 집에 놀러 갔나 보다. 아이 입에 쏙 넣어 감탄하는 표정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어깨 힘이 빠져 돌아왔더니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엄마, **가 뭐래?"

"없더라. 나중에 먹고 말해주겠지"

......

아이는 쿨하게 돌아섰지만 이번 결과물이 꽤나 만족스러웠나 보다. 엄마도 이렇게나 자랑하고 싶은데 말이야.

못 먹겠다, 못 먹어

"**야, 어서 맛을 보고 피드백을 줘야 하지 않겠니? 오늘 종일 기다릴 거다. 네 품평에 따라 다음 작품을 보낼지 말지 결정돼 테니 신중하여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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