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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19. 2018

초보시인 출간도전#3

실패가 실패일까?

고3을 여차저차 아무 탈없이 지났다. 대학원서를 써야 했다. 의례적인 진로지도상담을 받게 되었다. 진짜 명분만 남은 과정이었다. 선생님은 어느 대학 어떤 과를 정하고자 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셨다. 본질을 잃고 세속적 조류에 담합한 불합리한 선생님에게 반항심이 생겼다. 뒤늦게 올라온 반항심이었다. 치기 어린 마음에 선생님이 반대한 방향을 선택해버렸다.


선생님은 끝까지 말렸고, 말려도 안 된다 싶어 하시며 넋 놓고 입을 대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선비 같은 분이며 현실감각을 갖고 상담해 주신 것을 미숙한 나의 잣대로 재고 폄하한 것이리라. 내가 고3 담임이라도 그분처럼 신중하며 현실적으로 조언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선생님의 반대 때문에 돌연 선택한 전공은 대학에 발을 딛자마자 이상과는 달랐다. 실패감 위에 몸부림쳐야 했다. 시를 쓴다는 선배는 불면의 밤을 지내 늘 퀭했고 담배를 종일 두 갑 이상 피워댔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카툰까지 쓴다는 선배는 늘 막걸리의 시큼한 냄새에 절어 있었고 날카로운 말과 눈빛으로 후배들을 제압했다. 그 선배 앞에서는 돌부리에 걸려 잘 넘어지는 햇병아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운동 끝무렵이라 노동운동에 동참하고 민중을 이야기하는 선배들은 민중시나 운동권 도서를 권했고 청빈하게 자연을 노래하는 사치스러운 문학인들과 그 조류를 비난했다.


나는 어디에 서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4년의 학점이수 과목중 바라던 시를 3학년이 되어서야 배울 수 있었다. 시론을 다루는 한 학기 3학점의 수업이 전부였다.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그제야 후회했다. 선배들의 뼈있는 농담을 토해 시인으로 밥벌이를 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자주 들렀고 높으신 시인들의 뜻 모를 작품들을 줄기차게 읽었다. 읽으면서 미궁에 더 빠질 때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미궁에 빠지는 시를 더 미로처럼 꼬아 설명하는 작품론이 힘들었다. 리포트를 써야 했고 문학을 접하고 있었지만 스승이 필요했다. 나 스스로 헤쳐가기에 요즘처럼 검색엔진을 동원할 수도 없는 시대여서 힘들었다. 도서관에 즐비한 도서를 나 스스로 구조화하며 공부할 안목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오래토록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들 중간 기말고사가 너무 자주 찾아온다고 불평했고, 어떻게 리포트를 쓰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지 전전긍긍했다. 손글씨를 잘 쓰면 유리하다고 해서 글씨 연습을 하는 이들도 왕왕 찾을 수 있었다. 컴퓨터로 쓰는 리포트가 보편적이 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팀,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들로 도서관은 가득했고, 국문을 배우면서 영어 스터디를 하는 동아리도 있었다.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길을 찾고자 연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에 머물러 있으면 멍청이가 되어가는 기분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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