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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20. 2018

0학년 소라-#5(결말)

어른을위한(초등현실동화)

방과후 교실

벌써 수업이 시작되었다. 글썽이던 엄마가 생각났다.

“아이 참~”

선생님이 좋으시다는 엄마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교실 문을 열었다. 뒷문은 잠궈두고 앞으로 오라는 안내문이 미닫이 문에 붙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문 손잡이를 당겼다. 오래된 학교, 나무문은 언제나 삐걱거리며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 문갑자기 손쉽게 렸다. 옆집 아주머니가 입을 것같은 줄무늬 치마에 초록 줄이 달린 안경을 쓴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너 혹시 소라라는 아이 모르니”

“전데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빙고, 다 알고 있었쥐비쥐비~싸루사루”

‘뭐지? 급식실에 배식해주시는 할머니이신가?’ 그러기에는 젊어보였다. 뾰족한 안경과 뒷짐 진 손에 살짝 보이는 마법지팡이! 글쓰기 마녀선생님? 나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쏘라쏘라야~, 네 자리는 여기란다. 엊그제 첫 수업 못 왔으니 진도가 조금 나갔어. 넌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거야”

하기 싫은데......"

“아뉘아뉘, 이제 잘 모르는 건 없어. 열심히 할께요라고 말해야한단다”

선생님의 꼬부라지는 말투와 느끼하면서도 찌그러지는 쇳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벌서 교재를 펼쳐 한명씩 돌아가며 글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은 몇 줄 읽지 않았다고 나를 순서에 집어넣으시고 처음부터 다시 읽자고 하셨다.

“에~싫어요!”

아이들이 모두 반대했다. 그 소리에 나는 다시 놀란 눈으로 가방을 책상옆에 걸었다. 

“싫으면 시집 가세요”

“선생님 농담이 구려요”

“구리면 방구쟁이”

“선생님, 쟤는 글자도 모른단 말예요.”

창가 쪽에 우리 반 친구 한명이 앉아있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피할 곳이 없는 나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된 것 같았다.

“누가, 글자를 모른대요? 지금까지 소라는 읽기능력을 숨기고 있어요. 선생님은 딱 보면 알아요. 그리고 여기 있는 1학년 친구들 첫 수업에 보니까 글씨가 삐뚤빼뚤~, 받침은 내 맘대로~, 읽을 땐 개미소리 내는 거 다 봤어요. 다 비슷비슷하니까 친구를 평가하는 말은 우리교실에서는 금지예요”

“에이, 저는 안 그래요.”

“이뤈 이뤈, 자네는 바로바로~ 받침죄다 ‘ㄱ’으로만 쓰는 그 친구 아닌가? 할 말 있나요?” 옆 반에 개구쟁이 철민이가 입이 쑥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

“자기도 틀리면서 다른 친구를 탓하면 안돼요. 일단 다 함께 읽어봅시다. 순서 기억나죠? 틀려도 되요”


‘틀려도 돼요. 틀려도 돼요.’ 엄마 아빠가 자주 하시는 말씀을 여기서 들으니 마음 한쪽이 환하게 밝아졌다. ‘에잇, 나도 몰라. 틀리면 어때’ 나는 아이들의 소리에 귀기울였다.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쭈볏쭈볏하며 소리를 냈다. 그렇게 큰소리 치던 아이들도 자기 차례가 되자 개미소리발음 틀리고 우왕좌왕했다. 틀릴 때마다 다른 친구들이 귓속말로 욕하지 않았다. 잘 못읽으니 답답하다고 선생님에게 이르는 친구도 없었다. 모두 함께 웃고 작은 소리로 따라 읊어줬다. 내 순서가 되었다. 선생님이 나를 보며 윙크를 했다. 코를 찡긋하며 손끝을 올렸다. 목소리를 크게 하라는 신호인거 같았다. 선생님과 나는 뭔가 통하는 게 있나보다.

“이때, 사냥꾼은 나무꾼에게 다가와~~” 더듬거리는 말과 작은 목소리에 선생님이 조금 도와주셨다. 더듬거릴 때 친구들이 같이 읽어주었다. 순서가 3번 정도 돌아가서 글 한편을 다 읽었다. 쿵쾅거리던 심장소리가 작아졌다. 선생님은 천천히 더듬더듬 읽는 우리 모두를 기다려주셨다. 선생님이 생생하게 느끼라고 얼굴표정을 찡그렸다 펴면서 웃기게 읽으셨다. 교실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함께 박수를 치며 웃고, 몇 명의 개구쟁이 남자애들은 교실바닥에 구르며 선생님을 흉내 냈다.

"여기서 호랑이는 어떤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했을까요? 어디 한번 연기를 보여줄 친구있나?"


내가 책을 어떻게 읽는지 지켜보고 수군거리는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입학이후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시원한 적은 처음이었다. 교재에 답을 찾아 짧은 문장으로 적어야 하는데 틀릴까봐 연필이 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쭈볏 거리는 나를 보시더니 모두에게 노래 부르듯 질문했다.

“얘, 얘, 얘들아, 너희들은 몇 학년?”

“1학년요”

“1학년은 초등학교에서 처음일까 마지막일까?” “선생님, 유치해요. 당연히 처음이죠”

“선생님이 지금까지 친구들을 관찰해 보니까, 일학년인데도 모두 한가지 씩 뛰어나요. 방귀 뀌는데, 똥 싸는데, 숨 쉬는데, 밥 먹는데, 말하는데 뛰어나요.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친구는 일찍 시작하고 어떤 친구는 늦게 시작하는 친구도 있어요. 누구나 처음은 잘 모르고 배워가는는 게 당연하죠?"

그리고 선생님 목소리가 더 커지며 말씀하셨다.

"모르는 건 자랑해야 그 부분을 제대로 배우게 되요. 아는 척하며 눈치로 맞추면 계속 제자리가 되니까......

“모르면 바보죠” 또 철민이가 끼어들었다.

“철민아 그만해. 잘난 척 쟁이야”

"선생님, 철민이 오늘 벌받고 왔데요."

진지한 선생님의 말씀에 자꾸 한마디씩 거들었다. “우리 약속하나 해요. 모를 때 자랑하자! 따라하세요”

“모를 때 자랑하자”

“모를 때 손 번쩍 들고 자랑하면 선생님이 출동 할게요”    


선생님이 주는 사탕 두알을 손에 꼭 들고 현아를 데리러 어린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발이 너무 가벼워서 공중에 걷는 것 같았다. 마치 학교앞 방방놀이터에서 실컷 뛰어 놀고 땅에 발을 디딜때 느꼈던  기분이다.

“언니, 오늘 왜 나한테 짜증안내?”

“야, 내가 만날 짜증내는 사람이냐?”

“응”

“우쒸~”

“맞잖아”

“언니가 신나는 일이 있었어. 엄마 말처럼 난쟁이 똥자루처럼 생긴 선생님이 웃긴 목소리를 책을 읽어주는데 마치 살아있는 이야기 같았거든. 그게 생각이 나서 말야."

"언니 담임 선생님 만날 언니 혼만 낸다며, 이야기도 안들어보고, 언니가 나한테 말했었잖아."

"그 선생님 말고 방과후 선생님! 모른다고 혼낼 줄 알았는데  자기의 모르는 것을 자랑하래. 그러면 우리 반에서 내가 자랑할게 제일 많잖아?”

“뭐야, 언니. 무슨 말이야”

“너도 네가 지금 모르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해. 4살은 모르는 게 당연해!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런데 언니는 나한테 그것도 모르냐며 놀리잖아"

"이제 안그럴께. 나도 모르는게 많아"

내일 학교에 가면 나보다 조금 빨리 알기 시작한 짝꿍 수만이를 만나 말해주고 싶어졌다. 모르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많이 자랑해서 빨리 배우고 싶어졌다. 모르는 걸 발표할 수록 선생님이 더 많이 설명해 주시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오늘따라 엄마가 빨리 퇴근하실 것같아 연신 시계를 쳐다봤다. 냉장고 앞에 엄마가 써 놓은 낱말10개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평소 보기도 싫던 낱말이 오늘따라 너무 쉽게 느껴졌다. 신나게 종합장을 꺼냈다. 간식을 조금 먹고 소매를 걷었다. 몇번을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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