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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27. 2018

__________섬이되고싶다

초보시인 생활 에세이

나는 대한민국 주부다. 한 때 열혈맘이었다가 지친 엄마며  살림에는 9단에 못 미치는 6단쯤 되는 주부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끔 가르치는 강사며 석 달에 하나씩 다양한 취미를 겉도는 프로 취미러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가 더 붙는다. 고매한 시인이 되고 싶고 작가의 길을 걷기 원하는 독서 추구자이며 글쓰기 노동자이다. 독자가 많지 않아 홀로 노동을 즐기는 중이다.


공저 출간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에서도 졸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시집을 따로 빌리거나 사서 읽어본 사람이 내 주위에는 거의 없다. 즐기고 누리는 시공부가 아닌 암기식으로 공부한 탓인지 시라는 단어만 접해도 저주 아니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시에 매료되었었다. 오래전에 그러했다. 한번 더 읽고 잠잠히 생각해야 화자의 말하는 바에 조금 가까워지는 숨김이 좋았다. 속도감 있는 짧은 형식 속에 보편적 인간의 서사와 서정을 담고 있어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길 언저리에 기웃거리다 발을 담그려고 용을 쓰고 있다. 시심이 발동할 때 어눌하게라도 써야 직성이 풀린다. 그 세계에 엄지발톱만큼 담갔으려나?


시집을 빌리거나 산다. 운이 좋을 때는 아이들과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구하다 절판되거나 초판본 시집을 사기도 한다. 그런 시집 여럿을 둔 것이 금고를 집 깊숙이 숨겨둔 기분과 맞먹는다면 과분한 비유인가?


시집을 펼쳐 읽으면 책장이 빨리 넘어가지 않는다. 한 편의 시에 오래 머물게 된다. 사실 너무 좋은 시는 곱씹어 읽고 며칠을 계속 되새긴다. 사람들이 나를 더 이해 못하는 면이기도 하다. 삼촌이 사다준 귀한 외국과자를 숨겨놓고 하나씩 빼먹는 느낌이랄까? 그것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이 기분을 설명해줄까 고민한다.


그런데 매력적인 시에 과하게 몰입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가는 길을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 시보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은 이렇다. 시 한 편을 펼쳐 1행을 읽다가 택배가 도착해서 받아야 하고, 1연을 읽고 나면 세탁 건조가 다 되었다고 알림음이 울린다. 2연을 시작하려면 아이가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하고 2연 마지막 행에 머물려고 하는데 큰 아이 픽업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 외에 백만 스물아홉 가지 이상의 일이 나를 부른다. 정말 성질이 이정도인게 다행이다. 좌식 소파 테이블에 앉았다 일어나기만 십여 번 하면 두 시간이 후딱 가고 무릎은 덜덜덜 거린다.


남편이 선물을 주려고 한다면 오로지 시에 몰입할 반나절만 뚝딱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혼자 웃으며 상상할 때가 많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오전 3시간 만이라도 아무 방해 없는 공간과 시간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하고 싶다.


근래 섬에 가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말하고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돌+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나의 말을 철회할 생각은 1도 없다. 주부의 일, 엄마의 일, 가르치는 일도 물론 가치 있지만 그것에 탁월해지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다. 이전에는 여러 분야에 탁월하게 잘하고 싶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는 일에 탁월해지고 싶다.


나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다른 소리가 없는 침묵 가운데 오래 있고 싶다. 침묵의 중심에서 한 페이지를 거침없이 넘기고 싶다. 많은 상황의 부름으로 끊기는 흐름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예전에는 흔들려도 다시 돌아와 앉으면 그 일에 집중하기 쉬웠다.  젊었나 보다. 지금은 아니다. 기억력과 집중력도 늙을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뼈저리게 느낀다.


나를 부르는 잡소리를 off, on 할 수 있는 방 하나쯤 갖고 싶다. 거기에 머물고 싶다. 그리 책을 사랑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긴 호흡의 글을 읽기 꺼려하고 지루해하던 나였다. 그런데 책에서 사람을 만나고 생각이 오가는  경험은 나를 독서라는 신비로 이끌어 주었다.


시집을 읽고 짧은 시를 쓰기를 즐기던 내가 긴 호흡의 글에 빠지고 지식과 정보만 얻지 않고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보게 되는 동참이 신기하기만 하다.


섬이 되고 싶다. 파도만 와서 철썩거리며 우주가 숨 쉬고 있음을 환기해주는 그런 섬에 가고 싶다. 섬에 가서 섬이 되는 꿈. 그냥 꿈일 뿐이다. 생각만으로 즐거워지는 상상은 섬에 가는 상상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인데 실제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연속으로 주어지면 얼마나 기쁠까? 문제는 그때가 되면 노안이 찾아오고 손가락이 둔해져 자판을 두드리기도 어려울 때가 아닐까 생각하기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오래도록 기다려도 이루어 질지 모르는 상상을 할 바에야 지금처럼 새벽까지 버텨보는 것이다. 내가 새벽까지 작은 전구를 끄지 않고 버티는 이유다. 새벽에 혼자 동그마한 작은 전구 알과 친구가 되어 식탁이라는 섬에 머물고 있다. 그래 여기가 섬이다. 누구의 간섭도 없고 고요의 극치 가운데 읽는 행위, 쓰는 행위로 이야기를 지어나가는 내가 바로 소박한 섬인 것이다.


섬을 만끽하려고 쌓인 설거지를

내일 아침 과업으로 떠넘기고 있다.

지금 롸잇나우.

나는 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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