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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Sep 21. 2020

당신 곁에 '발'같은 사람을

제시어:발

*이번 글쓰기 주제는 '발'입니다. 제가 제시한 주제지만, 난감하기 짝이 없는 주제임을 지난주에 깨달았습니다. 변경 가능하지만 하지 않고 도전해보려고 두었습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무엇을 어떻게 쓸까? 발이라는 소재에서 어떤 주제를 말할까? 그래서 나는 내 속에 숨겨둔 발에대한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은 불편할 때 그 대상을 인지하곤 한다. 평소 아무런 불편이 없으면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떤 사건인지 그냥 지나친다. 우리는 특별한 불쾌나 놀람 혹은 기쁨과 같은 환경과 대상을 연결하여 기억하는 재주가 있다.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기억을 못 하기도 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신체든, 혹은 사물이든 불편해져야 의식하게 된다. 혹시 자기 발을 항상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발에 어떤 불편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나와 같은 지병을 가진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무좀이든 각질이든 발가락 골절이든 족저근막염이든. 나는 오늘도 발 때문에 생기는 불쾌와 불편으로 그의 미친 존재감을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소중함도 매일 깨닫는 중이다.  


나에게 발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발이 없다는 말에 놀라지 마시길. 도무지 발로 인해 불편해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나는 가끔 길게 자란 발톱이 양말을 뚫을 때만 고요하게 그것을 응시하곤 했다. '아, 나에게 발이라는 것이 있었지. ' 그 정도였다. 발톱을 갂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깎아줄 뿐 금세 발이라는 존재를 잊고 일상을 살아갔다. 자주 발생하는 인지와 망각의 순환이었다. 


유독 발에 땀이 없던 사람이었다. 바짝 말라 촉촉함이라고는 겪어보지 못했다. 나의 발은 하얗고 작고 건조했다. 발가락 사이에 까만 물질이 차지도 않고, 꼬롬한 냄새도 잘 나지 않았다. 발톱도 빨리 자라지 않아 일 년에 몇 번 만질까 말까 한 존재가 나의 발이었다. 양말을 신을 때만 잠시 '나에게도 발이란 것이 있구나'라며 생각했을뿐. 그러고 보니 목욕을 할 때도 발은 잊어버려 씻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불편을 주지 않으며 숨은 듯 제 역할을 하는 순하디 순한 나의 발은 그렇게 잊혀진 존재였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 중 차가운 바닥에 딛고 나서 발 시림 현상이 생겼다. 찡 거리는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시림은 통증으로 이어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보니 심해졌다. 수면양말을 두 개를 신고도 발이 시려 밤잠을 설치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나의 발은 서서히 존재감을 나타냈다. 무수한 세월 순하고 낮게 궂은일을 하더니 그 은혜를 몰라준 나에게 호통치기 시작했다. 발 시림은 오래되었고 그것이 무릎관절과 연결되어 걷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손목과 고관절과 비염과 다 연결되어 나는 나의 몸 구석구석을 인식하며 살게 되었다.  그 많은 신체기관 중 단연코 매일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는 것은 바로 발이었다. 너무 쉽고 편해서 함부로 다룬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것이다.  

나의 주위에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문장을 쓸 때만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만큼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다. 불편을 주지 않고 앓는 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아무렇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도 한다. 궂은일을 해도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의 하찮게 여김에 상처 받는 이들이 바로 '발'과 같은 사람이다. 웬만하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존재이다. 남을 배려해서, 단체의 평화를 위해서, 모두 힘들기 때문에 참고 참는데 그걸 몰라준다. '나 하나 조용하면 모두가 행복하잖아'라고 자신을 위무하며 귀갓길에 홀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속으로 곪아가는 줄 스스로 모르다가, 더 견딜 수 없게 되면 꿈틀거리며 표효한다. 남에게 쓴 것을 내뿜는다. 복수하고, 이를 갈고, 할 말 다 하고, 험담도 풀어놓는다. 그렇게라도 하면 다행이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기도 하는데 그것이 더 위험한 일이다.  우울 가운데 빠진다. 자신을 쓸모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약이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 몸 여기저기가 아파온다. 아무 소리 없이 자멸하는 것보다 속으로 곪기라는 하는 것이 다행일수도 있지만 둘다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들을 줄 알고 생각도 있고 아픔도 느끼는 사람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최후통첩이다. 우리의 가족 중에도 있고 일터에도 이런 '발'과 같은 사람이 있다.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런 사람을 하찮게 대하고 있다면 멈춰야 한다. 말할 줄 몰라서 참는 게 아니고 성질이 없어서 부리지 않는 게 아니다. 까칠할 수 있지만 목소리를 낮추어 가정과 일터를 지켜낸 영웅 같은 사람들이다.  눈에 띄지 않는 큰 역할을 중하게 하고 있음을 알고 제대로 존중해야 한다. 말없이 웃어도 끝까지 의견을 말할 기회를 줘야 한다. 절대로 그 사람의 마이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느리지만 천천히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제는 그가 말할 차례다. 표효하기 전, 최후통첩을 보내기 전 '발'과 같은 사람의 인기척을 느껴야 한다.  

여름이나 겨울, 밤의 정적이 찾아오면 나의 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추워' 발 시림을 면하려는 다양한 양말로 감싼다. 보습제를 자주 바른다. 의자에 앉으면 발을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보살펴주지 못한 만큼 안아주고 보듬어줘야 마음이 누그러진다. 진작 나의 발을 알아줬더라며, 발이 주는 유익에 감사했더라면 이렇게 오래 뒷손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겨울이 다가온다. 어떤 형형색색의 수면양말로 나의 발을 위해줄까 벌써부터 검색 삼매경이다. 발아, 기다려라 뜨듯한 것으로 널 감싸줄게. 네가 있어 내가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을 이제 나도 안다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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