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Nov 02. 2020

3교를 보내고 후회는 기본

                                                                                                                     

아, 탈고한 원고를 출판사에서 교정을 하고 한번 저자 수정을 한 뒤, 다시 마지막 교정을 보냈다. 마지막 교정에 손을 보고 싶은 부분이 늘어나 편집을 맡은 담당자가 난색을 표했다. 디자인이 다 나온 상태에서 더 고친다는 건 처음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은 용량의 일이다. 그 업무를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럴 것이라고 예측만 하면서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아침 대표님의 연락을 받았다. 더 고칠 여유시간이 되지 않으니, 알맞게 잘 수정 반영한 줄 믿고 디자인 안착을 위해 원고를 넘겼다는 말씀이었다. 나의 잦은 수정으로 편집부 식구들 고생이 많았다. 최종을 한번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 번 더 훑는다 하고서 첫 장부터 또 걸리는 게 있으면 일주일을 원고를 붙들고 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시동을 켠 채 자동차를 오래 두면 과열되듯, 나는 너무 오래 과열되고 있었다.


미련이 남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하고 툭 털었다. 그랬더니, 지지부진하게 준비하고 있던 내년 출간 예정 차기작 원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알고 있었고 손을 꼽고 있던 날짜였지만, 더 와 닿았다. 시간이 별로 없다. 애꿎은 가족들에게 한소리를 했다. "이놈, 마감 인생이 힘들구먼, 더 안 하고 싶다" 가족원들 그 누구도 나에게 글을 쓰거나 책을 내보라고 한 적 없다. 내가 개척하고 도전하는 영역이니 할 말이 없다. 유명세를 입고 뛰어난 작가들, 전문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작가들이야 쉬운 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버거운 패턴이다.

집안일은 최소치로 돌리고 있다. 오늘은 한 달가량, 주 1회 가사도우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자기 할 일을 잘 따라주어 손이 덜 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대표님의 톡이 아침부터 나를 게으른 잠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 이전 원고는 완전히 내 손을 떠났고 다음 할 일은 다음 책의 원고 쓰기다. 그간 모아 온 자료를 훑고 새로 구입한 참고 서적들을 들춰보았다. 할 일이 태산이다.


일전에 출판사에 보낸 목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고민하는 중이다. 목차가 나오고 글을 쓰고 싶어 기초공사에 오래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던 목차 잡기가 오늘 아침 얼추 속도가 붙었다. 내가 꼭 전달하고 싶은 말을 중심으로 독자들이 물어볼 wh?를 생각하며 풀어나가 보기로 했다. 이론을 멋들어지게 알려주기보다 진짜 궁금해할 것들을 풀어주는 방식.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갔다. 이전에 시를 쓰고 에세이를 쓰던 터라 교육 전문 영역에 글이 문체가 달라 고심하고 있었다. 문장이 이전처럼 술술 풀리지 않았다. 하나의 문장도 허투루 나의 주관적 느낌과 감상에 머물 수 없다. 정확성과 근거가 중요하다. 그럴수록 근거를 찾고 자료를 제시하고 인용할 내용을 잘 준비해야 한다. 아직 안 해보던 영역이라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고 좌절감마저 느끼고 있는데, 오늘 아침 무엇을 벗은 듯 가벼워지고 나서 글이 풀리고 방향이 잡히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종일 이렇게 진행하면 좋았으련만, 이 글을 쓰는 저녁시간까지 나는 술술 풀리는 글을 잠시 접고 일상의 일을 쳐내야 했다. 조카의 아들 돌잔치가 있다. 남편과 나의 나이가 지긋하지도 않은데, 큰 누님이 워낙 시집을 일찍 가셔서 낳은 큰아들이고, 남편은 막내라서 마흔 줄에 벌써 외가 할머니 소리를 듣게 생겼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단체 식사를 조심하는데, 오늘은 가족 중심으로 모여 오래간만에 거나한 식사를 했다. 과식을 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쓸데없이 넘치는 당분을 분해하느라 몸이 사력을 다하는지 노곤했다. 한숨 자고 싶은데도 오후에 4시간 좀 강의를 들을 일이 있어 쉴 수가 없었다. 그것을 끝내고 겨우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작업실로 왔다. 이 글을 쓰고 나는 다시 2시간짜리 경제 관련 좀 강의를 수강해야 한다. 일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도 버거운데, 오늘은 글이 잘 풀리는 날이라는데 무척 애가 끓는다. 글이 풀릴 때 달려야 한다. 흐름이 끊기면 다시 자리에 앉아 그 페이스를 찾는 데 한 시간이 걸릴지 하루가 걸릴지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하루 일정이 무척 야박하게 느껴진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고, 하려고 애를 쓸 땐 체한 듯 잘 안 풀리고. 사는 게 이런 꼬임의 연속이다. 원하는 대로 다 되었다면 지금 못 이룬 것이 있을까. 결핍과 부족과 막힘은 간절함을 상승시킨다. 더 하고 싶게 만들고 더 간절하도록 만든다.


사실 나는 시인으로 등단했다. 단독 시집 없이 조각조각 기고한 시 여러 편에 공저에 보낸 작품 등이 있다. 지금 준비하는 시집 준비로 많은 편의 시를 보내 놓았다. 이 가을이 휑하니 안 돌아보고 가기 전 나는 시를 쓰고 싶다. 원고 마감을 11월 말로 잡았다. 그래야 가을 끄트머리, 겨울 입구에서 시라는 것에 매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계절이 불러오는 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시도 쓰다가 원고도 기획하다가 두 가지를 병행하니 둘 다 제대로 안 된 것만 같다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쉽게 나를 두려고 한다. 쓰고 싶은 것을 미뤄두고 급한 것을 먼저 해내기. 오늘 원고가 잘 풀리는데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느라 뒤로 좀 미뤄두기. 안달이 난다. 막고 있는 것들 때문에 뒤에 기다리는 것들이 간절해진다. 줌 강의가 마치는 10시부터 못다 쓴 글을 이어 써야겠다. 이 좋은 글쓰기를 계속 쓸 수 있는 환경이 감사하다. 글에 치여 살고, 글에 눌려 살고 있다니, 감히 몇 달 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출간 약속-상큼한 계약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