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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02. 2020

쓰기보다 사람이 먼저다

                                                                                                                                                                                                                                                                                                                                         

대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양향옥 화가와 조촐한 만남을 가졌다. 그녀의 작업실은 최근 콘셉트를 잡아 작업 중인 작품들로 가득했다. 약속한 시각에 근접하여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작업실 문을 열자, 그녀는 음악부터 틀었다. 손님맞이 용이 아닌 음악이 그녀에게 딱 붙어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차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일반 푸드아티스트에 못지않은 감각을 가진 터라, 테이블을 꾸미는데 공을 들였다. 차를 우려내기 전 찻잔을 먼저 골라보라고 했다. 오늘 만남은 즉흥적이었지만 그녀의 꿈을 듣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펼쳐 말하려는 목표보다 한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귀한 손님으로 사람을 세우는 재주를 가진 그녀와 유쾌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목적보다 관계요, 성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이 그녀에게 익숙한 듯 배어 나왔고 우리는 여러 번 비슷한 지점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 그녀가 몰두하는 작품의 소재는 금잔화라고 했다. 속에 차인 것, 한이라던가 열망이 터져 나오듯 붓끝에서 황금색 꽃잎으로 분출하는 형상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아도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그녀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심장이 얼어붙듯 차가웠는데 최근 풀어지게 되었노라,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노라 말했다. 그 열기가 작품으로 그녀의 말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사람 관계의 권태기처럼 작품 활동에 찾아오는 슬럼프를 그녀는 계속 작업을 함으로 이겨낸다고 했다. 나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출간을 앞둔 책을 다시 갈아엎으면서 짧은 시간 내 새롭게 글을 쓰고 다시 교정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런데 그 고통이 나에게 엉덩이의 힘을 가져다주었다. 좋든 싫든 노트북을 펼치면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의 감동과 재미와 깊이 여부와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은 많이 변했다. 처음 시를 쓰며 시작한 글쓰기는 초보의 시간을 제대로 향유하기도 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글에 대한 거부, 쓰는 행위에 대한 질리는 마음에 구토감을 느낄 정도로 싫어졌었다. 나는 결국 그 과정을 소그룹으로 모여 글을 쓰고 서로를 고무하는 과정을 통해 극복했다. 어쩔 수 없이 한 꼭지 위 글을 쓸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니 글을 억지로 썼고 결국 쓰는 것에 대한 내면의 저항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만약 그 고비를 넘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생을 갈아 넣는 작품을 하면서 자란다. 작품에는 작가의 성장과 변화가 고스란히 담기는 게 사실이다. 그녀는 나의 시작활동의 시작과 지속 과정, 그리고 슬럼프와 극복 이야기에 놀랄만한 일치감을 느꼈다. 나름 예술을 한다고, 작품 활동은 하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공통분모는 '외로움'이다. 고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비슷한 감정을 교류할 대상이 주변에 많지 않아 혼자서 생각을 할 때 고독감을 느낍니다. 세상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 준다는 서글픔이나 외로움과 다른 감정이죠.

양작가님 허락하에 일부 진행중 작품을 찍었어요

시와 글과 동양화 그림으로 만난 우리의 오늘 조우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녀를 일으킨 소재, 메리골드-우리말로 금잔화 그림을 감상하며 오늘 오전, 집필에 열중하기보다 사람에 열중했다. 원고 쓰기에 서두르던 마음이 한풀 가라앉았다. 급한 일을 조금 뒤로 미루고 중요하고 인상적인 관계를 누릴 때 영감을 얻기도 하고 공감을 통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느려 보이지만 더 빠른 방법일 수 있다.


"오늘 참 잘~쉬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잘 쉬는 것과 같군요. 자주 쉬어야겠습니다. 악바리같이 글에 매달린다고 잘 되기만 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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