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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04. 2020

에세이의 마법이란~~

어제 새벽 1시 40분께 100일 프로젝트 글쓰기를 써서 올리고 2시 전에 자려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겼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써질 때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에 잠시 이성을 잃었다. 잠들 때 몰려오는 감사와 기쁨과 성취감에 진지한 기도를 하고 잠들었지만 이제 몸은 나의 의지로 관할할 수 없는 늙어감을 막을 수 없다. 눈이 부어 막내 등교에 겨우 밥을 차려주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리고 결국 평소보다 2시간여 늦은 출근에 혼자 속상해한다. 푹 쉬지도 못하고 눈은 부었고 눈가에 주름은 자글자글하다. 글을 쓰기 시작해 책을 낸다고 이렇게까지 허비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다꼬(뭐하러 그렇게 까지-경상도 방언)"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고인 말이 많지는 않다. 사실 억울하고 분하게 살아온 히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질상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미묘한 차이라도 더 안다면 알려줄 때 놀라운 기쁨을 느끼던 터가 아이들을 가르치던 전달력을 이어 책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만 젊었다면 다른 행보를 했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가장 건전한 것이 이것이다.

이미 오늘 오전 시간이 무너진 게 아니라 몸이 벙벙해졌다. 몸놀림이 느려졌고 눈꺼풀을 깜빡이는 게 느껴졌다. 몸의 모든 기관이 산뜻하게 작동하지 않는 이 불쾌하고 둔감한 기분. 내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많이 물어왔다. 이 세상을 한 번 살고 갈 것인데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으셨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쁜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과정이 길고 다양했다. 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발견했다는 나의 길을 우직하고 오래도록 가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한가. 그래서 지금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친구에게 나의 출간 소식을 알렸다. 예약판매라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축하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의미심장한 말도 들었다. "역시, 말이 무섭구먼. 너는 말한 대로 진짜 되는구나." 이유인즉슨 내가 처음 시를 쓸 때, 등단할 거라는 말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시집을 낼 거라는 말에 공저로 시집을 한 권 출간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과 함께 읽고 쓰는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다가 결국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교육 관련이면서 공간 대여와 비슷한데 코칭 프로그램까지 돌아간다. 그러고는 상가 임대 2년 안에 3권의 책을 내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은 그만두고 그저 사업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친구의 말에 어렴풋이 나의 호기롭던 말이 생각났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뭐든 시작하기 전에 꿈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떵떵거리며 호언장담한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고 뿌리던 나의 모호했던 꿈이 공방으로 탄생하고 책 3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에 순간 전율이 일었다. 언 몸에 가시 같은 소름이 쭈뼛 돋았다. 친구와 함께.

3권을 출하려는 목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그저 매일 글을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내 주변에 일어나는 사람의 일을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 글로 남겼을 뿐이다. 나는 글을 쓰면 시심을 장착한다. 원래 시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하며 사물을 은유하고 상징하고 의인화하길 좋아하는 특징대로 모든 글에 그런 시선을 담고 싶어서 그렇게 표현되기도 한다. 나의 일상,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을 정직하고 건강하고 그리고 유익을 끼치며 공존하는 삶이 공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실로 짜릿하고 매력적인 일이다. 사람에게 어디든 자신만의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다른 이들과의 소통까지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공간을 저지르고 지금까지 유지했다니. 그리고 폐업이 아닌 확장을 위해 2관을 계약했다는 것이 내가 선택한 모호한 꿈과 실현이 나름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출간을 말하면 인세를 물어본다. 인세에 기대어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저 글 쓰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다고 여겨야 한다. 존재하고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글쓰기라면 글의 내용이 무엇인가 중요하다. 문장과 문단과 어휘의 수준보다 나만 생각을 얼마나, 어떻게 담느냐가 우선이다.  


쓸 때, 마법을 경험한다. 일상이 품은 신비의 공존.

바닥으로 눈을 돌리면 , 사소한 것들이 소리친다. 그리고 그것들의 미동과 상호관계에 숨은 진실을 발견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매일 귀기울여야 들을 수 있다.

악독한 이들보다 따듯한 이들이 주변에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라는 거대한 물결에 뜬 작은 조각배 같은 나를 발견한다. 쓰기 시작하면 경외와 겸허를 함께 경험한다. 사소함에 숨은 것들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찾을 때마다 절대자를 의식한다. 일반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 같은 인생, 삶이 귀하고 감사하다. 비록 대부분 고달프고, 잠시 기쁘고, 어쩔 때 행복하고, 잠시 감탄하는 게 삶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 속에 죽지 않는 선을 향한 추구와 소망 때문 아닐까. 모순덩어리의 삶, 실낙원에서 펼치는 조각배 같은 인간의 운명에도 좁은 길이지만 걸어갈 수 있는 우리의 삶을 오늘 아침 희망해본다. 퉁퉁부은 눈과 어눌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비록 대부분 고달프고, 잠시 기쁘고, 어쩔 때 행복하고, 잠시 감탄하는 게 삶이지만


글 쓰는 브런치의 모든 작가는 에세이뿐 아니라 글쓰기의 마법가루에 흠뻑 취해 바다를 유영하는 사람, 혹은 노 젓는 조각배 같은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따듯하게 세상을 보게 되는 글쓰기로 마음의 조금이 매일 나아지는 경험을 우리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든든해진다. 모두 나의 아군 같아 보이는 아침이다. 시심이 작동한 게 아니라 가을 감성이 과해서 그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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