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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글에서 '詩'쓰기로 shift

멍 때리면 더 빨라질 거야

by 최신애

작가들의 퇴고의 과정을 우리는 잘 볼 수 없다. 감상적으로 생각할 때, 자신이 공들여 쓴 글을 다시 훑고 고쳐 쓴다는 것은 꽤나 멋질 것 같다. 그것도 장르가 시라면 문학 장르 아닌가. 유시민 선생님도 말한 바, 비문학적 글은 훈련하고 노력하고 배우고 연습하고 많이 쓰면 되는 일이지만 문학 장르는 창작의 영역이라 고유하면서 타고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문학 장르 작가의 창작과 퇴고는 무척 아리따운 과정 같기만 하다. 하지만 나의 퇴고는 낭만적이지 않으니 이렇게 글로 달래고 있다.


자녀교육 관련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판사에 보냈다. 완벽한 탈고가 아닌, 목차 조정을 위한 10프로 남겨둔 원고다. 출판사와 조율이 되면 다시 나는 작업 모드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그 글은 가르치고 전달하고, 할 수 있다는 독려의 문체다. 사실과 이론과 사례를 나열하는 책이니 '시'와는 아주 거리가 먼 글이다. 문학적으로 비유를 군데군데 넣어 쓰면 흐름이 말랑해질 수 있다. 그래서 참고 참고 참으며 시를 멀리했다.


때마침 두 명의 아티스트와 조인을 하게 되어 나의 시와 패턴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의 만남. 그것을 위해 나는 급하게 교정을 시작했다. 물론, 보낸 초고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연되어서 더 급한 것도 있다. 그런데 시를 교정하는 것이 서두에 밝혔듯 아름답고 서정적이지만 않다.

머리속이 컴퓨터 선처럼 꼬이고 꼬이고, 난감하네~~

문체의 시프트가 되지 않는다. 비유와 상징과 의인과 여러 방법들을 다시 수면 위에 드러내고 까발리고 싶어 진다. 독자가 읽을 때 시원하게 알도록 드러나게 고치고 싶은 욕구에 어젯밤을 뒤척였다. 시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말이다. 슬프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 그리고 숨기고 독자가 슬픔을 스스로 그리도록 제공하는 것이 시인데 말이다. 슬프다고 말하고 슬픈 이유도 따박따박 밝히고 싶어져 교정을 할 수 없었다.


몇 편을 고쳤는데, 산문처럼 드러내도록 난도질을 해서, 처음 쓴 시의 의도나 이미지가 다 뭉개졌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산으로 올라가는 교정 과정. 시를 교정하는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장르의 전환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글에 몰입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른 이들의 시집을 펼쳐 읽었다. 급 처방전이다. 시의 결, 시의 호흡, 시의 어절과 다양한 숨김에 익숙해지지 않고는 교정이라고는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이틀 지났는데 겨우 1/6을 손을 댔다. 그것도 시답지 않은 시로 말이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좋은 시란 많이 고친 시'라고 누군가 말했다. (아주 유명한 분인데,,, 이렇게 나의 지식이라는 것은 뇌의 어느 지점에 제멋대로 정돈되어 꺼낼 때 서랍을 다 열어야 그것을 찾듯 겨우 찾아낸다.) 어쩌면, 좋은 시를 못 쓸지 모르겠다. 많이 고칠 수 없는 나의 상황. 이것이 핑계가 되지 않도록 마음에 다짐한다. 되도록 많이 읽고 많이 고치겠다고. 짧은 마감 기간이라면 자투리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고쳐야 한다.


지금 카페다. 누군가의 시 창작법, 시에 대한 아포리즘,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적 감성과 언어의 결이 장착되면 얼른 고치기 시작해야겠다. 지금 숨을 고르지도 못하고 거칠게 손을 대서는 안될 일이다. 사람이 전환할 때 덜거덕 거리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마음의 준비와 감각의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방을 자리에 넣고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자신의 하루가 피곤으로 겹겹이 두꺼워졌음을 강력히 전달한다. 많이 허용할 수 없지만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잠시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마. 3분 멍 때리기!" 아이들은 늘 익숙하지 않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멍 때리고, 가만히 있고,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뇌가 전환을 허락하도록 잠시 두는 것. 아이들에게 허락하고 나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어서어서, 급하잖아. 빨리 고쳐 쓰란 말이야'

뇌는 내가 시키는 대로 바로 말을 듣지 않는다. 나의 뇌도 나의 나이만큼 고집스러워졌다. 오래 묵어 그런데 내가 종용한다고 되지 않는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른 이들의 호흡을 느껴. 그들의 언어에 잠시 기대 보자'

나를 허락한다. 멍 때리기, 기대기! 화살을 조준할 때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바닥으로 잠시 내려 조준을 재정비한다. 호흡과 팔의 근육에게 말하는 것이다. 순간의 포착을 위해 잠시 느슨하게 뒤로 물리는 법. 지금 그 타이밍이다. 잠시 바닥을 향하게 내리고 다시 올리자. 나를 허락하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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