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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14. 2021

다정한 시선, 관찰의 힘으로 쓰기.

"중등 교실을 반사합니다"

교실 풍경 #1


"얘들아, 개나리가 왜 개나리인 줄 아니?"


"쌤, 개나리가 원래 개나리죠"


"너희들 나리꽃 알아? 나리꽃을 닮았는데 '개'라는 접두사가 붙어서 나리꽃 보다 못한 닮은꼴의 꽃이라는 의미로 개나리라고 부른다고 해"


"헐, 대박"


"쌤, 개신기!"


"연애질에 써먹어라~, 아는 척하고 싶다면 배워야지"



교실에 햇병아리 중1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개나리 하나로 수업에 흥미도가 급상승했으며 해보지도 못한 연애질에 꺅~소리에 천정이 들썩인다. 


"쌤 더러워요. 연애질"


아이들의 말은 참 볼썽사납고도 솔직하다. 부끄럽거나 오글거리는 내용엔 항상 더러움을 연발하고, 최고봉의 반응에는 늘 '개'를 들먹인다. 욕이 아닌 게 어딘가. 에이 C를 귀엽게 하는 정도는 눈감고 넘어간다. 


교실 풍경#2


라면 이름대기 게임을 하기로 했다. 이유도 가르쳐주지 않고 시간 때우는 뉘앙스로 게임을 진행했다. 알고 있는 라면 이름을 총동원하는 아이들 콧잔등에 땀이 맺힐 지경이다. 아이들 곱절보다 더 마~니 산 내가 모르는 라면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혼미하다. 


서로 자기네가 더 많은 라면을 제시했다는 둥, 상대편이 자기들의 정보를 훔쳐봤다는 둥 아수라장이 되고 공평한 판결로 무승부를 외쳤다. 그리고 간식을 돌린다. 


"에이, 뭐예요? 시시하게"


"쌤은 오늘 너희들이 이렇게 많은 라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랐어. 대단한데?"


별것도 아닌 칭찬, 칭찬할 내용이 시시한 라면 이름인데도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기억력에 으쓱하며 간식을 한입에 먹어치운다. 


"라면 이름 정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평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을 얼마나 주의 깊게 보는지 알 수 있어. 오늘 해보니 하찮은 마트 진열대에 라면 이름을 우습게 여긴 게 후회가 되지? 일상의 사소한 것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을 관찰력이라고 해. 관찰력이 원래 타고나게 좋을 수 있지만, 관찰력은 키울 수 있는 능력이야. 어떻게? 자세히 살피면 돼!"


아이들은 라면과 관찰력의 묘한 컬래버레이션에 선생의 말의 의중을 살피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관찰력이 있어야 해. 우리 주변을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물의 종류와 쓰임새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들을 의미 있게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저장하는 세심함. 그것이 글에서 묘사라는 것으로 드러나지. 자세한 묘사에 자신의 평소 생각이나 소중하다고 여기는 감정이 묻어나면 글이 살아 꿈틀거리지. 글에 생명력이 움트는 순간이야. 읽는 사람들은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글에 담긴 생각이나 감정을 읽게 된단다. 문장이 좀 부족하고 맞춤법이 혹간 틀리더라도 진정성, 세심한 관찰은 읽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단다. 그런 글을 우리는 잘 쓴 글이라고 해. 어른들이 정답이라고 하거나 상을 주는 젠체하는 글은 문장은 멋진데 가슴을 턱 하고 치지 않을 때가 많아. 그러니 훌륭한 인물을 본받겠다거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는 등의 뻔한 말들은 너희들 좋아하는 '개'나 줘버려."


"쌤! 개머시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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