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청 금지법 만들테다
첫만남
키가 자그마한 아이가 수업 시간보다 조금 늦게 교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유치원생처럼 작은 키에 얼굴은 동그마니 누가보아도 귀염상의 얼굴이었다. 첫눈에 아이의 귀여움에 반해 훅하고 좋은 점수를 주었다. 아이의 실체를 경험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나의 후한 점수는 절벽에 낙하하듯 빠르게 추락했다.
아이의 고집
아이는 교실을 한 바퀴 돌았다. 아이가 무척 사교적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뭐가 씌인 상태라서 그렇게 보였다. 앉아 있는 아이들 중 몇이 그 아이를 안다는 눈빛으로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 방과후까지 같은 반친구를 보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
아이들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를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디에 앉을래"
"안 앉을 건데요"
'호, 요것봐라, 시크한데?'
"네가 앉아야 수업을 진행할 수 있어"
귓등으로도 안듣는 자세가 벌써 습관처럼 몸에 베어 나왔다.
이날 이후로 아이와의 밀당은 쉽지 않았다. 말하는 모든 내용에 반댓말을 했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수업진행하는 멘트마다 토를 달고 반대말을 일삼으니 다른 아이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의 학용품을 빼앗는 것은 기본이었다. 소리 없이 교실을 돌아다니면 그나마 참을 만하지만 친구들과 나를 방해하는 동선에 따라가 붙잡아도 잠시 뿐이었다. 이런 일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고 점점 강하게 드러났다.
이 아이를 어떻게 다룰까
수업을 신청한 이상 내 임의로 수업에서 제외 할 수 없었다. 내게는 그런 권한이 없었고 학교측은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주려는 서비스정신이 투철했다.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안고 마감시간을 넘긴 사람처럼 학교로 출근할 때면 가슴이 저릿했다. 눈물이나 슬픔이 아닌 치고 올라오려는 '웅크린 화'였다.
나는 선생님이니까 배우려는 아이를 내칠 수 없어.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그 아이를 만났다. 수업 전에 사탕도 쥐어주고, 선물도 약속하고, 교장 선생님을 거론하고 담임 선생님 성함을 말하면서 아이를 통제할 소재를 찾았다. 내가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어떤 방법으로 통제해야 하는 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아이가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나 아파서 조용히 있을 때면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오늘도 무사히~
그만두기를 종용하다
한 분기가 지났다. 학부모와 상담을 했다. 아이의 엄마는 두 째 때문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첫째를 돌볼 여력이 없어 보였다. 늦둥이 동생이 태어난 지 몇일 안된 상황이었다. 연신 미안해 전화기를 들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 같았다. 나도 미안했다. 더 잘해주면 아이가 달라지려나 마음을 다잡은 적이 많았다. 이러기를 여러번 했고, 나는 팔자주름이 깊어졌다. 수업 중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는 상황이 몇번 발생했지만 유하고 부드러운 엄마의 성격을 아는지 아이는 귓등으로 흘려 넘겼다. 도대체 무슨 방법이 통할 것인가!
처음에는 그냥 신청한 것을 취소하시라 말하고 싶었다. 체육활동이나 조금 더 신체활동이 들어가는 방과후를 권하고 싶었다. 나와 다른아이들의 힘겨움을 동의하는 아이의 엄마는 계속 하겠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도에 지나친 아이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것도 인정하셨다. 그런데 그것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친구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남는게 더 문제였다. 이부분이 내가 전달한 요지였다. 솔직히 말씀드렸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결론을 맺었다. 솔직하게 의논하고 나니 미움이 서서히 관심과 연민으로 바뀌었다.
엄마의 관심을 받고싶은데 집에서는 찬밥인 아이. 학교에 와서 부정적인 반응으로라도 관심받고 주목받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것이라는 이해가 생겼다.
이해의 눈으로 보니 귀엽고 안쓰러운
관심이 필요한 것이면 관심을 주면 되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간절히 내 옆에 앉고싶다고 요구했고 고집이라 거절했었다. 교실에서 친구들을 마주하고 앞에 앉히는 벌이 있다. 의미가 담긴 물리적 훈계방법인다. 그런데 아이는 벌로써가 아닌 나에게 가까이 앉고 싶어 그 자리를 고집했다. 책상을 옮겨주었다. 단, 수업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조건에서였다.
아이는 갑자기 선생님의 측근, 오른팔이 된듯 의기양양해 졌다. 날카롭고 아이들이 건들면 폭발할 것 같던 눈및이 자부심으로 바뀌어 수업내용에 그나마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글을 쓰라면 그림을 그리고 상상한 것을 발표하라면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아이는 조금씩 변했다. 미미하지만 변화가 있다는 것은 큰 보람이고 희망이 보이는 지점이다. 매일 함께 가보자고 결심한 것을 후회하다가도 칭찬에 해처럼 밝게 웃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자리에 우직히 앉아 버틸때는 칭찬폭단을 해주었다.
아쉬운 이별
아주 조금 아이는 차분해 졌고 3/4은 별 탈없이 지나갔다. 가을이 들어설 때였다. 아이는 무슨 일에 틀어졌는지 들어옴과 동시에 이상한 소리를 내고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가을 활동으로 단풍을 따라 그리던 활동이 어수선해졌다. (물론 아이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그 아이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 각자 활동을 너무 잘 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나에게 과격하게 반응하던 아이를 계속 타이르고 있는데,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진심어른 눈빛이었다.
"선생님, 나는 겨울에도 꼭 신청할꺼예요"
기뻐해야할지 울어야 할지 잠시 주춤했다.
"뭐라고, 지금 네가 하는 모습을 보니 하기싫어 못견디는 아이같은데요, 정말이예요? 이런 태도로 할 거라면 신청 못해요. 엄마랑 이야기 다 했어요"
아이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도 내가 지쳐 더는 어려웠다.
4분기 신청서가 들어왔다. 그 아이 신청서가 없었다. 아이의 엄마가 미안하고 속상해서 신청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편치 않았다. 통화를 했다. 다행히 다른 수업을 꼭 듣고싶었는데 이번에 자리가 나서 그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시간이 겹쳐 신청을 안한 것이라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이별을 말하지도 못하고 아이와의 밀당은 어렁뚱땅 마무리 되었다.
4분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소수정예로 1년을 함께 수업해온 아이들만 남았다. 수업이 척척 진행되었다. 순조로운 교실이 이상하게 텅 빈것 같았다. 9개월 동안의 밀당으로 지쳤지만, 교사의 자세를 많이 돌아본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내년 1분기에 그아이가 다시 신청한다면 과감히 no 라고 말할것같긴하다.
아이들이 미미한 성장에
울다가 다시 웃는
희망이란 병세는 깊어가나
현실은 파악할 줄 아는
나는, 방과후 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