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과 아이> 문성식
2021. 1. 27. 수_그림책 창작 모임 <쫌 시즌2> 2번째 만남^^
선정도서: 굴과 아이(문성식/스윙밴드)
진행자: 구름 민정
참석자: 구름, 나무, 키키, 천둥, 김작가, 권작가, 하이디
두 번째 만남이다. 원래는 온라인으로 중간 모임 후에 오프라인 만남을 더 깊이 하자고 했지만, 이번에는 민정이가 중간 모임을 깜빡했고 여러 가지 상황도 녹록지 않아 오프 만남이 무산되고 겨우 겨우 저녁 9시에 줌으로 만났다. 2주 전에 민정이가 모임 때 나눌 선정도서를 추천해주었다. <굴과 아이> 처음에 제목을 듣고, 굴과 아이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했다. 굴이 무엇이라고 단정 짓거나 깊이 생각지도 않은 채로.... 카톡으로 모두 주문했다는 말이 오가길래 나 역시 급하게 퇴촌 책방지기 김 작가에게 주문을 넣었다. 가격이 좀 비싸서, 사도 되는 건가 싶었고 직접 받고 나서도 제대로 들쳐보지도 않은 채 분주한 일에 치여 우선 책꽂이에 꼽아두었다.
제대로 읽지도 못한 상태에서 줌이 열렸다.
급하게 페이지를 펼쳤고, 미친 듯이 눈알을 굴리며 텍스트를 읽어 들였다. 짧고도 명쾌한 글귀, 그러면서도 깊고 진한, 궁극의 밝음과 어둠을 사용한 문장이 마음을 관통했다.
‘모든 풍경들은 밝고 어두운 것의 사이 색으로 만들어진다. (중략) 그림은 나에게 다른 이들과의 대화이고 일기이며, 또한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생명으로서 시간을 붙잡는 하나의 불완전한 방법이다.’(p.4)
몇 문장 되지 않는 글 안에 모든 것을 담은 이 화가의 필력을 보라. 뭐지? 민정이가 카톡으로 미리 공유해 준 그의 기사를 보니, 그는 어려서부터 세심한 관찰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깊은 관찰의 힘이 이런 문장을 만들어낸 것일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또 관찰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초상집의 일반적인 모습을 만들어주었다. 그 분주함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해 주어 고마웠다. (중략) 우리를 힘들게 했던 태양은 산을 넘어갔고 푸른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다. 낮에도 그랬지만 밤에도 구름 하나 없이 깊고 맑은 하늘이었다.’(p.11)
이 글을 읽으면서, 친정 엄마의 장례식 풍경이 떠올랐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았던 시간. 오고 가는 발걸음과 함께 머물러주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 한없이 황망한 시간의 풍경을 태양, 저녁, 밤이라는 어휘들로 극명하게 갈리는 마음의 갈래를 표현한 그의 글이 신선하고 강렬하다.
‘나는 방법적 혁명보다는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간적 질문이 더 절실하다. 그렇다고 방법적으로 구태의연한 것도 싫다. 독창성이 있으며 설득력을 가진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요즘 나의 고민이다.’(p.66)
그의 강력하고도 왠지 모를 불편한 느낌의 그림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했는데, 그 답이 여기에 있었다. 잘 그린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깊은 고민과 질문들로 작품이 시작된다니. 읽고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과 영감을 주는 그의 작품 세계이다. 나는 대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언젠가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런 작품을 쓸 깜냥도 안되고 감히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되는 거야라는 자괴감과 무력감을 버티며 사는 찌질이에 불과하다.
이 작가의 글과 그림을 보면서 관찰과 나의 사고를 뚫고 다시 태어나는 시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집요한 관찰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었다. 누군가는 추하거나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나 상황을 그는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이런 걸 왜 그렸을까 하는 우리의 갸우뚱함 뒤에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쩌면 그는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번 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 말이다. 나 또한 좋아한다. 모두가 그냥 지나칠 법한 이야기를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고 표현해내는 일.
‘어떤 마음속 풍경을 그려볼까.(중략) 내가 만난 풍경, 시간, 사건들을 떠올리고 살살 만져보면서 그 실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 마음을 통해 저장된 어느 날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기억에 대해서라도.’(p.9)
요즘 온라인으로 30일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우리가 지금 ‘마음속 풍경을 포착해서 글로 써내는 일’을 연마하고 있구나 싶어졌다. 매일 새로운 글쓰기 주제를 받지만 내 안에 어휘는 한정되어 있고 내 생각의 깊이는 너무 얕아서 색다른 표현이 궁하다. 내가 만난 풍경, 시간, 사건들을 떠올리고 살살 만져보며 그 실체를 나름의 방식으로 써내는 일이었다. 어떤 날의 기록은 나의 기억이 맞나 싶지만.... 이 글을 읽고 완전하지 않은 기억도 괜찮은 거야라는 위로를 받는 듯하다. 이 작가의 말랑함, 대범함이 좋다.
작가라고 모두 대단한 글을 쓰거나 매번 대단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미약함을 당당히 드러내면서 진솔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더 멋있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진짜 잘 나가는 작가가 된다고 해도, 나의 지질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아니, 꼭 작가가 아니라도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자, 이제 그의 그림 중에 인상 깊었던 것들을 골라보자.
첫 번째로 ‘형과 나’ 아주 검고 커다란 연못 한편에서 낚시를 하는 형제의 모습. 작가가 그린 거대하고 진한 연못과 그에 대비되게 작은 형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연못을 빙 둘러싼 나무들의 모습까지. 어떻게 이런 구도를 생각했을까. 요즘 김 작가가 드로잉 모임을 하는데, 매번 그림을 그릴 때마다 평면의 하얀 백지에 어떤 장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풍성한 느낌을 줄 수 있다니, 작가의 시선과 표현이 부럽다.
두 번째로, ‘골목’이다. 얇고 길게 늘어뜨린 골목의 풍경이라니. 오래돼서 갈라진 잿빛 바닥과 골목 구석에 자리한 노인들의 모습. 흡사 하늘 위에서 바라본 듯한 구도가 새롭다. 그림을 볼 때 ‘제목’이 주는 메시지 효과가 이런 것이구나 절감한다. 제목을 못 봤다면, 아게 무슨 풍경이지 했을 테니까.
세 번째로, ‘노인의 집’이다. 빡빡하게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 건물 3층 창문에 백발의 노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심하게 빼곡한 벽돌이 노인의 외로움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참 멋지고 부럽다. 물질의 특성과 상황을 끝내주게 배치하고 조화시키는 작가의 힘! 역시 관찰과 끝없는 고민으로부터 가능한 일이겠지.
네 번째로, ‘춤추는 여자’와 그 옆에 ‘아담과 이브’다. 긴 머리칼이 사방으로 헝클어지게 몸을 흔들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 맞은편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안고 있는 남과 여. 둘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미친 딸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는 아닐까. 이 셋 중에 가장 슬픈 건, 알고 보니 저 춤추는 여자는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울면서 춤을 추는 건 어떤 기분일까. 춤을 추다가 눈물이 난다면?
다섯 번째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찾아서’다. 그림만 봤을 땐 이 황량한 나무들 사이에 저기 진한 나무의 정체는 무엇이며 톱과 지팡이를 짚고 가는 두 사람은 뭐하러 가는가 싶었는데. 제목을 보니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림에서 제목이 주는 강력한 메시지의 힘을 생각한다. 문득, 화가들은 미리 제목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지,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붙이는지 궁금해졌다. 구름과 김 작가가 대답해주었다. 때마다 다른 거라고. 어떨 땐 제목이 먼저 떠올라서 그림을 그리고, 어떨 때 그러고 나서 제목을 정한다고. 드로잉 책을 보면서, 전공자들에게 물어보니 정말 유익하고 재밌구나. 언젠가 친한 언니가 말했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빠가 산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할 나무를 베러 갔다고. 그 얘기가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이 그림이 딱 그 얘기구나.
여섯 번째는, ‘맹인의 얼굴’이다. 대충 자른 듯한 투박한 스포츠머리의 남자. 선글라스를 껸 채, 눈을 감고 있다. 이마에 다소 깊은 주름이 있고, 코에는 굵은 피지가, 입은 반쯤 벌리고 있는 얼굴 하나. 이런 건 왜 그렸을까 의아하다. 세상은 더럽고 추하고 아름답다고 한 작가의 말들이 이런 그림에서 떠오른다. 맨 뒷 페이지를 여니, 본문에 실린 그림 목록이 한데 모아져 있다. 그리고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정보도 세심하게 적혀있다. ‘이 그림은 무슨 재료로 썼을까?’, ‘실제로 어떤 사이즈였을까?’했는데 친절하게 모두 쓰여있다. 심지어 탄생연도까지. 작가의 세심한 기록과 표현에, 이 책은 소장도서로 인정!
제일 크게 도전이 되고 영감이 된 것이라면, 최근에 김 작가와 드로잉을 하고 매번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뒤에 글로 기록하는데, 이처럼 나 역시도 드로잉 에세이를 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그림도 못 그리면서’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못 그려도 선과 면, 색 등을 자유롭게 즐기고 표현하며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의 기록을 담아내고 싶다. 김 작가는 말한다. “주문을 걸면서 해봐. 예를 들어서, 그림을 그리면서 이건 사람이다, 사람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진짜 그게 사람이 된다! 진짜야!” 김 작가의 말은 신빙성이 있다. 나의 이상한 그림에도 꽤 그럴듯한 해석을 해준다. 폭넓은 그녀의 시선이 나를 더 그리게, 또 그리고 싶게 해 준다. 고맙다.
이 책을 보면서, 앞으로 더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글이나 그림으로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아침에 Dream’이라는 타이틀로, sns에 매일 글을 쓴다. 내일이면 딱 150일이다. 150일을 찍고, 이제 시즌2로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모색해봐야겠다. 아주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에 대한 관찰과 성찰, 고민의 연결?
어쨌든 민정 덕분에, 정말 좋은 책을 소개받고 새로운 영감도 퐁퐁 솟게 되어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우리 '쫌' 모임 식구들이 대부분 모여서 그 또한 기분이 좋았다. 모두 각자의 창작과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으니, 다양한 감성과 시선이 공존한다. 이 다채로움 속에서도 자기만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깊이 수용하고 공감한다. 참으로 귀한 모임이다.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서, 모임을 마치자마자 써보았다. 중구난방이겠지만, 그래도 우선 인증은 완료!! 앗싸
writer: 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