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여름 ㅣ by 키키
친한 기자님이 학부모 회장으로 있는 가까운 지역의 중학교로 진로교육을 가게 되었다.
'작가'라는 타이틀로, 어떤 수순을 거쳐 작가가 되었는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라는
취지로 나를 섭외하신 듯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섭외를 받고,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 틈틈이 고심했다.
'작가가 되는 법'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건 검색창에 쳐보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정보다.
문득,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지금 나는 '작가'로서 어떻게 살고 있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나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모르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매일 성실하게 일으켜 세워 칠판에 글씨를 읽게 했고 여덟 살의 어린 나는 처음으로 '모멸감'과 '수치심'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글씨를 잘 몰라서, 알림장을 쓸 수 없었다. 짝의 노트를 베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짝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노트를 가렸다. 알림장을 쓰지 못해, 숙제를 늘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엄마나 아빠에게 한글을 몰라서 힘들다는 얘기나, 숙제를 못하니 도와달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엄마는 4층 건물을 새벽부터 청소해야 했고, 낮에는 봉제공장의 시다로 일을 했으며, 또 틈이 나는 대로 그 공장의 사장님 댁에 가서 가사도우미를 하였다. 아빠 역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봉제공장의 제단사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도 부모님은 힘든 삶을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나의 고민을 토로할 수 없었다.
그럼, 부모님이 더 힘들어질 것이고, 매일 잠이 부족해서 피곤한 부모님에게 새로운 걱정이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지하 단칸방이었던 우리 집.
여름 장마철이 되면 벽이 축축하게 젖어서 벽지가 벗겨졌다. 바닥은 눅눅해서 자고 일어나면 이불이 꿉꿉했다.
가끔 쥐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어느 날, 아빠가 밤을 새워 일하고 들어오셔서 낮에 잠을 자고 있는데 방안에 들어온 쥐가 아빠의 다리 위에 올라탄 것이다. 아빠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고, 근처에 있던 빗자루를 세게 던져 녀석을 멈춰 세웠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고, 아빠는 치울 용기는 나지 않았는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는 그대로 두고 다시 잠을 청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밤에 돌아온 엄마가 세상에 어쩜 자기가 올 때까지 이렇게 둘 수 있냐며 황당해하면서 급히 수습했던 뒷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에도, 쥐들은 쉼 없이 우리 집을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덫을 놓고 또 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덫에 잡혀 울부짖는 쥐들과의 시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날들이 참으로 많았다. 덕분에, 난 쥐의 슬픈 눈을 잘 알고 있다.
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얘들아, 선생님은 그렇게 살았단다... 그러니, 선생님의 마음은 늘 어땠을까?"
지금의 내 모습은 한없이 밝고 명랑해 보인다. 그런 나를 처음 대면한 아이들은 나의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다.
"엄청 우울하셨을 것 같아요...."
"진짜 슬프셨겠어요...."
집도, 학교도 나에게 편안하고 좋은 곳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이렇게 중학교 진로교육 수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 정말 잘 버텼구나.... 나 진짜 엄청 잘 견디며 살았구나...'
"그래서 말이야, 선생님은 어릴 때 꿈이 없었어. 아니, 어떤 꿈을 꿔야 할지도 몰랐던 것 같아...."
학생들에게 지질했던 내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가 붙잡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었다.
"이렇게 우울하고 슬픈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이걸 하면서 견뎠어. 어떤 걸까?"
"나쁜 짓!"
"방황하기!"
"친구 때리기?"
아이들은 진담인 듯 아닌 듯 짓궂은 답변들을 늘어놓았다.
'일기', 나의 현실을 도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감사한 일을 찾아 안도하기 위해서, 지금 내 삶에서 그나마 긍정할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또 찾으면서 괜찮다고 위안했던 날들. 그리고 나는 어떤 때 행복하고 좋은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내 삶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순 끝에 가장 나답고 자연스러운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얘들아, 너희는 꿈이 뭐야?"
"패션 디자이너요!"
"수의사요!"
"고 생물학자요!"
"푸드파이터요!"
패기 넘치게 자신의 꿈을 공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그래, 뭐든 좋아! 그런데 딱 하나만 기억하자. 이 꿈들 앞에 너희는 반드시 '어떤'을 붙여야 해.
왜냐하면 이 '어떤'이 없이 꿈을 이루게 되면, 바로 공허함이 찾아오고 목적을 잃고 방황할 수 있거든.
이 '어떤'이 있을 때 꿈을 이룬 후에도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기쁘게 지켜나갈 수 있단다.
그럼 선생님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을까?"
"베스트셀러 작가요!"
"아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좋겠지만 그게 선생님의 목표는 아냐..."
"엄청 돈 많이 버는 작가요!"
"글쎄,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그게 선생님이 바라는 작가의 길은 아니야...."
"아주 아주 유명한 작가요!"
"음.... 유명해지는 건 별로...."
"그럼요?"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글로 치유하고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작가가 되고 싶어. 지금 내가 이렇게 너희들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그런 일 중에 하나겠지? 그래서 아이들과 또 성인들과 책 읽고, 글쓰기, 말하고 등의 수업을 하고 있어.... 선생님은 이런 일을 할 때 너무 행복해. 그래서 나는 내가 작가인 게 참 좋아...."
세 개의 반에서 연달아 나의 지난 삶 이야기, 작가로서의 나의 지향을 이야기해 주면서도 과연 이 아이들이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했을까 싶었다.
"얘들아, 혹시 선생님 얘기를 듣고 새롭게 생각하거나 떠오른 거 있어?
"네, 그동안 제가 꿈이 지조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좀 더 찾아보고 싶어 졌어요..."
"저도요...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랑 지금의 살아가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고 저도 선생님처럼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꿈을 이룰지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고마웠다. 내가 열성적으로 전한 메시지가 어느 정도 전달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집중해 준 아이들에 대한 감사함. 뜻밖에 수업으로, 내 삶의 여정을 필름처럼 돌려볼 수 있어서 꽤 좋았고, 의미 있었다. 그냥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참 잘 견디기도 했구나. 그 지하 단칸방, 달갑지 않았던 검은 쥐들.
by 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