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여름이 너무 지루해 보이지만 실상 여름은 길지가 않았다.
여름을 알리는 초복(7월 16일/음력 6월 18일)과 가을을 알리는 입추(8월 7일/음력 7월 10일)의 간격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이상기온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5월 초순경부터 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그러면 우린 이제 봄은 없어졌다. 그냥 바로 여름이다 한다.
하지만 절기상으론 입춘도 있고 초복도 있고 많이 더워진 건 사실이지만 절기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은 7월이다. 물론 음력으론 날짜가 바뀌지만...
여름의 더위가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 텐데 우린 이 더위 아니 폭염에 무서움을 느끼며 이 시절에 살고 있다.
8월 찌는 듯한 날씨에 사무실에 앉아 동남각루를 바라본다. 태양은 아직 후끈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과 나뭇잎사귀들을 보며 가을이 오는 건가 한다. 이 더위에? 하지만 높은 하늘이 이미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따가운 여름 햇살도 그늘 어딘가로 한 발자국만 옮기면 이내 습하지만 시원함이란 것이 내 살갗을 스치고,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핀 하늘이 알 수 없는 높이 감으로 가을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달력을 바라보니 여지없이 입추가 지나 있다. 아직 여름의 한가운데이지만 이미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든 것일까?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눈치도 빨라진다. 그리고 그러한 계절이 스칠 때마다 아쉬움도 커진다. 어릴 땐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추억. 낭만. 행복. 즐거움. 여러 감정들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러한 것들은 사라지고 아쉬움만 남기며 계절이 스쳐간다. 아련하고 애잔하게 말이다.
이렇게 더운데 가을이 느껴지는 뭉게구름이 핀 하늘을 보면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느꼈던 따갑고 뜨겁지만 시원하게 불던 바람을 맞던 여름 모래사장이 생각이 나곤 한다. 저 하늘 너머 너머에 그때 뛰어놀던 바닷가 하늘이 있을 테지. 계절은 그렇게 추억을 담고 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의 도시에서 벗어나 풀과 나무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접하게 되면 자연이 걸어오는 대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자연이 주는 한 없는 편안함과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경이로운 파노라마에 우린 마음이 치유되고 힐링을 얻는다. 아파하는 자연은 끝도 없이 조건도 없이 우리에게 치유의 공간을 선물한다. 인간임이 부끄러워지지만 자연은 엄마의 품처럼 인간을 품는다.
뭉개구름 아래 접시꽃이 예쁘다. 어릴적 딱 한 번 본 고모를 생각나게 하는 예쁜 접시꽃. 성곽 밖의 소박하지만 화려한 꽃들. 여름의 상징 앵두도 빨갛게 익어간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먹구름이 낀 날씨도 여름 안에 있다. 짙은 회색 빛 여름.
여름 안에는 잿빛 하늘도 있다 소나기, 태풍, 장마, 천둥, 번개,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회색의 동남각루는 커피를 부르는 풍경이 된다. 잠시 감상해보자.
뜨거운 하루를 뒤로 하고 해가 열기를 식혀 간다. 도시 속 수원성곽도 곧 귀뚜라미의 향연이 울릴 것이다.도시 속에 갇혀서 하루를 보낸 화성도 잠시 지는 노을 속에서 쉼을 맞는다. 현대의 도시와 과거의 도시가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본다.
여름이 익어가면 노을도 함께 예뻐진다.
화성의 여름은 천의 얼굴을 갖는다. 아침. 점심. 저녁, 동. 서. 남. 북, 도시와 시장,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어우러져 생각지도 못한 감성을 이끌어 낸다.
오늘도 과거 속 어딘가 있었을 하늘과 나무를 보며 걷는다. 귀뚜라미 소리가 정겨워지는 가을이 성큼 다가온 한여름에.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 한 번 더 바라봐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