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을 모임으로 배웠다

매거진을 발행하며

창작 모임 '쫌'의 매거진 <쫌>입니다. 쫌 많이 쓰면 계절마다 낼 거고 쫌 적게 쓰면 해마다 낼 거 같습니다. 창작 쫌 하는 모임의 첫 번째 이야기를 들어봐 주세요~





나는 모임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내가 처음 모임이라는 것을 만든 것은 아이를 갖고 그림책에 빠졌을 때다. 물론 그전에도 여러 가지 모임을 했었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학회 모임도 했고 인문학 책 읽기 모임도 했고 동아리 활동도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직접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간 것은 처음이다. 그림책이 너무 좋아서 그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그림책 모임은 이후에 육아모임이 되었는데, 대화가 하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모임을 이어갔다. 우리는 각자 독박 육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기랑 하는 옹아리 수준의 대화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대화. 그래서인지 회원들이 이사를 가면서 거리가 멀어지고 만나기 힘든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모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림책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다 가치롭고 의미 있고 토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그때 했던 논쟁 중 하나가 기억이 난다. 아이가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천재 과학자의 자질이 있는데 아이는 자질도 없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면 어쩌겠는가, 이런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이 왜 그런 것을 가지고 목청을 높였는가 싶지만 그때는 그랬다. 구석구석 서로의 생각과 정서를 너무나 잘 알게 되어서인지 우리는 가장 오랜 연대의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혼이니 질병이니 갱년기니 하는 각종 인생의 다이내믹을 함께 견뎌오고 있다.


그다음에는 수공예 모임을 했다. 엄마가 직접 만든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라는 책에서 육아를 하는 엄마는 반드시 예술활동을 하라고 했다. 아이를 창의력 있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재충전을 해야 하는데 에너지를 재충전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예술활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엄마들은 예술을 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평소 예술이라는 것을 해보지 못한 엄마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이의 인형을 만들어주는 모임을 하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좋은 엄마도 되면서 예술도 하는 1석 2조의 효과라고 홍보했었는데, 어쨌든 이것도 육아를 견디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평생 손으로 무엇을 해본 적이 없는 똥 손이었는데 수공예라는 것을 하면서 내 손이 그래도 동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의외로 내가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임에서 나는 뜨개질로 배운 동물 인형을 응용해서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내어 전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이후에도 주로 아이를 내세운 모임을 이어갔다. 역사책 모임, 학부모 모임 등을 했다. 마을 모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는 커피파티를 하면서 마을과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모임으로 나아갔다.

혼자 육아를 했다면, 혼자 책을 읽었다면, 혼자 창작을 했다면, 혼자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개인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모임이라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법도 배우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다보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만나고 대화하고 어떤 행위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나를 성찰하게 되고 나의 존재태를 획득하게 되었다. 직장과는 또 다른 깊이를 가진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타인에게 온유와 끈기를 베풀고 분별과 신의를 얻기도 했다.


지금은 시 읽기 모임, 창작 모임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를 쓸 때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을 인용하게 된 것도 서점 모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창작 모임은 사실 별로 창작에 대한 자극제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약간의 나태함, 약간의 어설픔, 약간의 무료함을 배웠다. 그건 내게도 있지만 없는 듯 감추고 지내던 것들이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는데 이들 덕분에 나도 심심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여기서 나는 다른 곳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정함을 느꼈다. 어쩌면 창작과는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그것, 하지만 창작의 근원일 수 있는 그것을 말이다. 다정함은 창작자의 속성 그 자체였다. 이제 속살처럼 감춰두었던 다정함을 겁내지 않고 드러내며 산다.


witer 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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