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밥심 / by 명랑한 김작가
여름이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스튜를 끓이고 싶어 진다. 지난 것 같다가도 드문드문 더워지는 통에 속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여름이 물러나주길 기다렸던 터라 미룰 수는 없다. 아무리 맛이 좋은 스튜라도 에어컨 바람아래 먹는 것과 바람이 차게 느껴지는 날은 다르게 다가오니 적기임을 감지했을 때 지체 없이 움직여야 후회가 없다.
스튜를 끓이고 싶을 땐 끓여야 하는 이유를 먼저 만들어낸다.
아들이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날이라서, 미술반 회원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살이 찌고 있는 친구들과 나를 위해 키토음식이 필요할 때라서...
만약 이유가 준비되었다 해도 소리소문 없이 끓이는 게 관건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들키면 두 그릇 먹긴 틀린 일이 된다.
베푸는 것도 행복한 일이겠으나 고생하고 한 그릇 먹기엔 많이 서운하다.
이런 마음이 생기는 나를, 나는 착하지 않다고 표현한다.
굳이 착하지 않다는 말을 내가 먼저 하는 이유가 나도 가끔 궁금해지는데,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먼저 챙기니까 상대는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 없다고 당부라도 하는 걸까?
착한 사람은 본인이 먹을 것도 모조리 남을 위해 양보하고도 흐뭇한 모습을 남이 보지 않을 때도 유지해야 한다는 건가?
어쩌면 그 반대로 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라도 있는지 모른다.
착하든 안착하든 사랑은 모두에게 있는 법이라 나도 사랑을 한다.
스튜를 먹이고 싶어 진다면 사랑을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태, 토마토, 당근, 감자, 양파, 샐러리, 바질, 정향, 페페로치노, 버터, 치킨스톡, 우스터소스가 필요하다. 사태를 넉넉하게 준비해서 분배에도 치우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고기의 분배는 애정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 이렇게 시시한 사건들은 말하지 않은 감정들을 담아내며 관계 나무에 무슨 열매가 열릴지 결정짓게 한다. 다시 한번 다짐하게 한다. 먹는 것 가지고는 서운하게 말아야지.
저 재료들을 다 넣어 요리를 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참 신기하게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해도 하는 사람마다 맛이 다르다. 어쩌면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슬쩍 재료 한 개를 뺀다던가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놓고 언니가 비법을 안 가르쳐 줬다고 투덜거리는지도. 살림하는 여자들은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는 이유인지도 모르고. 어쨌든 내가 만든 스튜를 따라올자가 없다는 것은 큰 무기를 장착한 여자 이순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이어가고 싶은 욕심은 결코 없다. 몇 안 되는 관계를 소중하게 키워내고 싶을 뿐.
오늘도 참 외롭고 즐겁다.
아직 스튜를 끓일 재료를 준비하지 못했고 시간적 여유가 생길 것 같지도 않지만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조금 미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날씨가 쌀쌀해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