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랜도>를 다시 보며
버지니아 울프는 장황하게, 아니 섬세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오래오래 내 얘기를 들어 달라고.
간단히 말해서는 생각한 것들을 당신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누군가 적절하게 붙여준 의식의 흐름 기법.
반드시 정의 내려야 하는 게 아니고 산책하듯 말해도 된다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그렇고 영화 올랜도 속의 주인공도 그랬다.
이렇게 말해도 내 말을 알아들어줄 수 있는지 묻고 싶은 걸까.
이래도 나랑 친구 할 수 있어?
1994년쯤이었을 거다. 친구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공감했었던.
그 후로도 몇 안 되는 좋아하는 영화로 남아 있다
다시 보면 별로일까 싶었는데,
역시 좋다.
역시라는 걸 확인한 후, 쫌 동지들과 함께 보기로 했고 결과는 역시?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았다.
공감하는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쉽게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난 또 혼자 좋고 말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이야기하는 양성적 인간의 조화로움이 올랜도에도 반영되어있다.
올랜도는 여자이거나 남자였을 때도 특유의 섬세함을 잃지 않는다.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정체성을 지켜내는 강하지만 유연한 인간.
여자일 때, 남자일 때도 올랜도는 올랜도였다. 아니, 여자이거나 남자일 필요가 없다.
writer 명랑한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