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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후 Oct 14. 2020

무시무시한 세뇌교육의 결과.

무분별한 교육제도가 만들어낸 청년들의 불행.

< 대구 가톨릭대 부설유치원 중에서 >



 무심코 살아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나 지금 뭐하는 거지? ,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이걸 하는게 맞는걸까?"  보통 이런 질문들은 누구나 한번씩은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해 누구나 반문을 들거나 고뇌하지는 않는다.  생각만 하는 사람과 생각에 반문을 들고 행동하는, 두부류 밖에 없다. 나도 항상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마찬가지로 저런 생각들이 들었지만 그때는 정확하게 말하면 환경에 지배당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것(입시제도를 위한 공부)을 하고 있었기에 그걸 벗어 난다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까 두려웠다. 또 그걸 벗어날 용기도 당연히 없었다. 17~19살 되는 놈이 삶이 주관이 뚜렷히 있을리가 거의 없다. 그 기준들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실패자로 낙인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사회로 나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그때의 나의 생각이 너무너무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소위 잘나간다는, 공부잘한다고 하는 아이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무너지기 시작하는애들이 많았고 공부안하고 보잘것 없고 무시만 당하던 아이들이 당당하게 성공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어렸을때 들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정답이 아닌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느껴졌다. 궁금했다.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지.. 



그때부터 나는 지금 나의 불행한 삶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했다. 책을 비롯한 다양한 모임, 활동 등 내가 하고싶은것들을 닥치는 대로 시행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어릴때부터 부모님과 학교에서 배웠던 교육들과 사상들이 점점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 진짜 행복한 삶은 내가 어렸을때 부모나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아니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절때 가르쳐주지 않은 내용들이였다. 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했을때 나는 내 마음속 깊은 진정한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주관이 하나씩 잡히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이 사는 기준들이 나에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빠르면 유치원, 늦어도 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 세뇌교육 아닌 교육을 받는다. 대학은 인서울에 어디어디 들어가야하고, 직장은 대기업이나 이름있는 돈많이 주는곳에 들어가야하고, 결혼하기전엔 얼마가 있어야하고, 결혼배우자는 어느정도의 능력과 미모가 있어야하고, 결혼 후 아이는 몇명 그리고 몇평 짜리 아파트에는 살아야하고, 아이는 최소 몇살때부터 영어, 수학을 시켜야 한다 등등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들을 교육 받는다. 나는 이것들이 우리나라, 즉 우리 미래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부정적인 영향과 그 한 사람 한사람 마다의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가는지 뼈절이게 깨닳았다. 그리고 이것들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는지 까지.



 나 또한 저런 교육을 받고 저런 기준들이 당연하고 맞다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에 정답은 절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거의 진리다. 모든 인생은 각자의 길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다.  틀린게 아니고 다른것이다. 각자의 삶은 자신으로 부터 계획되고 실행되고 이루어 져야한다. 조언이나 충고는 받을 수 있지만 절때 세상이나남의 생각, 가치관, 경험이 적용되선 안된다. 정말로 그 사람의 삶을 위해서 라면 말이다. 우리나라의 자살율,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 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어떤 한 기준만 보고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쫒아가기 때문이다.우리 사회는 다름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남과 비교한다는 뜻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라 자체의 교육제도가 완전히 바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수 많은 인생의 문제들과 기준들을 이기기 위해선 결국 나 자신의 뼈절인 고통과 노력밖에 없다. 고뇌하고 고민하고 거기서 나를 더 성장시키고 내 삶을 소중히 하는 사람만이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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