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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 Sep 30. 2018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착각

“그렇구나”

둘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 하나하나 쌓여가는 말들에 끄덕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맞아, 그래 맞아, 하며 모든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건드릴 수 없었다. 그저 수긍이 되었고, 적어도 그 순간에 어떤 이유나 변명 따위를, 다시 설명하고, 어떤 설득을 시도하며 이야기들 사이의 공간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느새 난 정말 미안해 하고 있었다.

글쎄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설마라는 말 뒤에 억지로 덮어놓은 예상이 사실로 드러나면 뭐든, 어떻게든 화를 낼 것 같았다. 적어도 더 들을 것도, 얘기할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벗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에 담아 넣으며 오히려 복잡했던 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되는 것도 같았다.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결국 나였구나’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음을 최선을 다해 사과했다. 외로움에, 불편함에, 흔들림에 몰아넣은 것은 나였다. 모든 결정들은 오롯이 나의 기준들에 맞춰져 있었다. 내가 그간 살아온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그럴듯한 설득을 부단히도 시도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들에 맞춰진 만남, 표현, 요구, 기대들에 그 사람이 실망하거나 서운해하고 때로는 화를 내는 순간들을 마치 비정상적이고 지나친 모습인양 반박해왔다. 나는 서운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서운함을 헤아리려 애쓰지 못했다. 나는 먼저 화를 내진 않았지만 그 언어들이 가진 진짜 의미들을 앞서 살피지 못했다. 나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방관이나 무관심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은 유난히 외로워하는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나처럼 애쓰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내게 맞춰진 시선에 불과했다. 그저 내가 당장 설명하기 좋은 장치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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