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받은 질문 중에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 있었다.
이 말은 내가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내가 진심으로 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지 하는 말과 닮았다.
나는 언제나 나 중심적이다.
더 이기적이거나 덜 이기적일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그것이 사소한 양보라고 해도 내게 손해로 보이고 희생으로 보이는데,
사실 그렇다.
그래서 내가 아닌 남을 위하는 것은 어렵다.
혹시나 그렇게 감수 하고 나름의 희생을 하더라도 상황이나 주변이 별 변화가 없을 때면,
몰라주거나 오히려 악화라도 될 때면 정신을 못차린다.
진심으로 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내게 사랑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은 줄수록 채워진다는 말은 어쩌면 그 진심이 다시 상대방의 진심으로 돌아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의 양보나 손해, 감정 등을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안에 사랑이 있다면 다시 돌아오는 사랑들로 그것은 마이너스였지만 마이너스가 아니겠다.
기브앤테이크적인 마인드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난 아직 내게 오는 것들에 연연해하는 때가 많다.
내가 먼저 진심을 줄 수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이 내게 진심을 줄 수 있을까.
내가 먼저, 사랑
내게 먼저,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