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추어탕, 구례 화엄사, 지리산 대통밥
이제 전주를 출발해 남원을 거쳐 구례까지 내려왔군요. 앞으로 광주, 목포를 거쳐 제주도로 들어가는데, 제주에서 꽤 오래 지냈거든요. 제주에서 보냈던 시간은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하루하루의 이동 거리가 그리 길지 않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집에만 있기도 하고...), 어쨌든 입도(入島) 전까지의 여정을 최대한 빠르게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손으로 그린 지도에 '남해'가 나온 건 처음이네요. 많이 내려왔군요. ㅋㅋㅋ
전날 술을 많이 먹었음에도 아주 이른 시간에 기상. 하지만 전날 술을 많이 마셨기에 다시 잠을 청했다. 어차피 알람이 울릴 테니까 알람에 맞춰 일어나면, 추천받은 식당(시골 가마솥)에서 청국장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알람을 꺼버린 것인지, 알람을 듣지 못한 것인지...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 버렸다.
그래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아침을 먹고 내려가기엔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지만 어차피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할 이유가 없다.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 편이라 그냥 맘 편하게 구례를 목적지로 찍고 여유롭게 출발했다. 고속도로로 갈 수도 있지만 여행 내내 고속도로를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국도를 따라 살살 달리는 것이 더 기분이 좋으니까.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슬슬 배가 고파진다.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근처가 남원. 생각해보니 남원은 가본 적 없는 곳이다. 남원 하니까 바로 추어탕이 떠올랐고, 그다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원조의 도시에서 추어탕을 한 번 먹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검색을 해보니 새집 추어탕(↗)이라는 곳이 유명한 듯.
와, 건물도 엄청 크고 주차장도 넓다. 대략 60년 정도가 지난 노포라고는 볼 수 없는. 추어탕으로 엄청 벌었나 보다. 추어튀김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것을 알기에 추어탕만 한 그릇 주문했다(나중에 다시 한번 방문해서 추어튀김도 먹어봤는데, 뭐 그냥 그랬다. 튀김옷이 별로였다). 추어탕이라는 음식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꽤 맛있는 갓김치와 함께 구수한 추어탕이 괜찮았다.
밥을 먹고 주차장 옆에 있는 휴게소(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지도를 보니 바로 옆에 광한루가 있다. 그 유명한 광한루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한 번 가볼까? 싶어 광한루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광한루는 광한루원 안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그리고 광한루가 있는 근처의 지역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 광한루원.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광한루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한루원에 들어가 광한루를 찍은 것이다. (쓸데없다, 쓸데없어. 쓸데없는 TMI)
사실 광한루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긴 한데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광한루원 자체는 꽤 좋았다. 나무도 많고 잔디밭도 넓은 데다가 잘 정비되어 있는 공원이었다. 주말이었는데도 (토요일이었다)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아서 기분 좋게, 한적하게 산책하면서 추어탕을 소화시킬 수 있었다.
슬슬 걷다 보니 마음도 여유롭고 기분도 좋아져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리고 공원 안에는 '춘향관'이라는 전시관이 있는데, 작은 전시관(박물관?)이고 '춘향에 대해서 뭘 전시할 게 있지?' 싶어서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꽤 재밌게 전시를 구경하고 나왔다.
특히 모두가 알고 있을 '춘향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전시가 인상적이었는데, 대형 LCD 여러 개를 세로로 길게 세워 마치 병풍처럼(하지만 연결되어 있진 않았다) 만들어 두고,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나비가 날아다니면서 LCD 화면에 스토리를 보여주는 전시 방식이었다. 가족들이 나비를 따라 걸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박물관에서 '전시물' 만이 아니라 전시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생뚱맞지만 역대 미스 춘향 수상자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의외로 많은 연예인들이 미스 춘향 출신이더라.
어쨌거나 저쨌거나 광한루원에서 산책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그랬는지, 그 앞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쥬스를 한 잔 마시면서 아이패드의 메모장에 그간의 여행을 좀 정리했다. (이 포스팅들도 모두 그 '메모'들을 참고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적고 있는 중)
자, 그럼 이제 출발해볼까! 하고는 미리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를 목적지로 찍었다. 계속 바닷가에 가까운 길을 달리다가 내륙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논과 밭이 계속되고, 멀리엔 산들이 감싸고 있는 느낌. 차들이 많이 달리지 않아서 한적한 길. 그리고 점점 지리산에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험해지면서 커브가 점점 심해지는. 달리기에 기분도 좋고 재미있는 길.
그렇게 달려서 숙소에 거의 도착했을 때부터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큰 길가에 있는 집이 아니라서 '초보운전자'에게는 심하게 좁은 골목으로 구석구석 찾아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ㅠㅜ 심지어 위치를 한 번에 찾지 못해서 두어 번 빙빙 도는 바람에 온몸이 땀범벅.
그렇게 겨우겨우 찾아간 숙소.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본채로 주인 아주머니 가족이 사시는 곳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별채로 부엌과 욕실 그리고 널찍한 방 한 칸이 딸려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면서 주인집과 멀지가 않아서 매우 편안한 느낌으로 묵을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친절하시기도 했고. (다음 포스팅에 나오겠지만 너무나 맛있는 아침도 차려주신다!)
원래의 계획보다 남원에서 시간을 많이 쓴 관계로 숙소에서 쉬지도 못하고 바로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사실 지리산 화엄사였다! 그래서 숙소를 화엄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잡았다. 차는 숙소에 두고, 신발과 바지도 산책? 트래킹? 에 적절하게 갈아입고 나왔다.
그렇게 숙소에서 잠깐 걸어 올라오니 널찍한 주차장이 보이는데, 주변의 상가(?)들은 아주 심하게 쇄락해있었다. 아마도 예전에는 모두 이곳에 차를 세우고 올라갔어야 했나 보다. 그러다가 더 위쪽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갈 수 있게 되면서 상가를 찾는 손님이 확 줄어든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렇게 초록과 함께 걷다 보니 대화엄성지라는 석비, 비석? 여튼 그런 게 보인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나도 차를 가지고 올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정말 잠시, 오랜만에 걷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숙소에서부터 약 2.2km, 시간으로는 약 30분 정도를 걸어 드디어 화엄사(↗)에 도착. 올라오는 길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곳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다들 차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다. 땀도 많이 나고 힘도 들어서 수박 쥬스를 하나 마시면서 좀 쉬었다.
쉬면서 검색을 해보니 화엄사에는 4개의 국보가 있다. 각황전, 각황전 앞 석등, 사사자 삼층석탑, 영산회괘불탱. 오, 좋았어! 이건 꼭 보고 가야지. 하고 다짐을 하고는 다시 화엄사 구경을 시작했다.
왼쪽의 석탑 사진은 보물 제132호 동오층 석탑일까 보물 제133호 서오층 석탑일까.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는 도저히 모르겠어서 잠깐 검색을 해보니,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탑이 동오층 석탑이라고 한다. 사진의 뒤쪽에 보이는 대웅전의 위치로 봐서 동오층 석탑인 듯.
그리고 오른쪽 사진의 저 멀리 보이는 것이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거대한 석등이 국보 제12호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역시 사찰을 바라볼 때에는 뒤에 보이는 산세를 함께 보는 것이 더 느낌을 살려준다.
다시 한번 각황전. 자그마치 2층 누각이다. 다포 양식으로 치켜올린 지붕을 아래쪽에서 바라보는데, 두 개층의 지붕 모두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에 왠지 모르게 감동.
사실 사진에서 엄청 많이 본 석등인데, 직접 보니까 그 '크기'에 엄청나게 압도된다. 각황전은 조선시대에 다시 지은 것이지만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때 지은 것 그대로. 오오. 역시 '돌'은 나무보다 오래 남는구나!
그러고 나서 사사자 삼층석탑을 보러 가려고 했더니,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출입금지라니! ㅠㅜ 너무 아쉬웠다. 사실 화엄사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이 석탑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뒤로 돌아 털썩! 주저앉으니 지리산의 산세에 폭 안긴 화엄사의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파노라마로 한 컷.
파노라마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어서, 대웅전과 서오층석탑을 지리산의 산세와 함께 한 컷.
화엄사의 국보 4개 중에 영산회괘불탱을 못 봤다는 건 까맣게 잊고는 숙소 쪽으로 내려오는 길. 뭔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길가에 있는 꽃(?)도 한 번 찍어봄.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좀 정리하고 편한 옷을 입고는, 저녁을 먹으로 큰길 가로 나왔는데... 이런 분위기. 쉽게 말해서 사람이 없는 곳이라 문을 연 식당도 별로 없는 상황.
그중에서 문을 연 집을 하나 찾아서 (위의 사진을 찍은 곳이 식당의 앞마당. 그러니까 사진에서 보이는 뷰에서 등 뒤쪽에 있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의 이름이 지리산 대통밥(↗)이라 대통밥을 주문. 다행히 1인분도 주문이 된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ㅠㅜ
나물 반찬이 쫙 깔린 걸 보니 막걸리가 먹고 싶어서 주문을 했더니 점심을 먹었던 남원의 막걸리가 나온다. 인연인가? ㅋㅋ 어쨌든 처음 상을 받았을 땐 미리 만들어둔 반찬들을 그냥 담아 나온 것 같아서 살짝 실망할 뻔 했는데, 반찬 하나하나가 너무 맛있어서 밥도, 술도 술술 들어갔다. 결론적으로 근처에서 밥 먹을 곳을 찾고 있다면 추천할만한 곳. 일부러 이걸 먹으러 찾아갈만한 곳은 아니고.
맛나게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서 여행 정리도 좀 하고, 내일 일정도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주인 아주머니가 수박 한 조각 먹으라고 하신다. 아, 그러고 보니 여행하면서 과일을 별로 먹지 못했구나.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한 수박. 너무 맛있고 감사하게 먹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지리산에서의 하룻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