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기념관, 무등산 자연휴양림 그리고 광주
그러고 보니 벌써 열다섯 장이 넘는 지도를 그렸네요. 지도 그리는 게 꽤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지도는 뭘로 그렸냐고 물어보는데, 아이패드에서 타야수이 스케치(Tayasui Sketches Pro)로 그린 겁니다.
일단, 여행 과정은 모두 GPS 트래킹 해뒀고(Moves 앱으로 트래킹 했습니다. 이젠 서비스 종료했지만 ㅠㅜ), 데이터를 익스포트 해서 구글맵에 앉힙니다. 그런 다음 적절한 배율로 구글맵의 스샷을 찍고 그걸 구글 드라이브에 올립니다. 타야수이 스케치에서 불러들인 다음 레이어들을 이용해 윤곽선도 그리고, 여행 경로도 그립니다.
마지막으로 구글 지도와 여행 메모를 확인하면서 코멘트를 적으면 완성~
어젯밤에 주인 아주머니가 수박을 주시면서 '내일 아침 8시에 넘어와서 아침 드세요'라고 하셔서 일찍 일어나 (초췌하고 지저분한 몰골을 보여드릴 순 없어서) 싹~ 씻고 옷도 좀 깔끔하게 입고 본채로 넘어갔더니, 아니 이렇게 멋진 아침 식사가! 그리고 여행 내내 주로 혼자 밥을 먹었는데, 주인댁 따님들도 같이 식사를 해주셔서(?) 참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사람 냄새나는 식탁. 게다가 어머니 손맛이 좋으셔서 반찬 하나하나가 너무 맛있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하늘을 보니 하늘이 꾸물꾸물.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부지런히 출발했다. 초보 운전자 게다가 아직 빗길 운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운전자이다 보니 '비'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단은 숙소를 광주에 잡았으니 광주와 구례 사이에 가볼만한 곳이 있나? 하고 검색해보니 오지호 기념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설명을 보니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혹시라도 비가 온다면 역시 실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목적지는 오지호 기념관으로.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만 계속 꾸물꾸물. 네비를 따라 달리다 보니 '주암댐'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네비가 알려주는 길과는 다른 방향이긴 했는데, 뭐 어떤가? 나는 어차피 시간이 매우 많은 여행자인데. 그래서 네비를 무시하고 주암댐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러고 보면 팔당댐이나 춘천댐, 소양강댐은 본 적이 있는데 주암댐은 처음 본다.
주암댐 근처에 오니 주암댐 전망대(↗)라는 곳이 있나 보더라. 그래서 목적지를 다시 수정. 사실 날이 흐리기도 했지만 최근 계속 가물었었기 때문에 경치가 엄청 멋질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고, 댐에 얼마나 물이 빠졌을까? 가 궁금해서 가봤다. 혹시라도 비 오기 직전이라 수문이라도 열면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역시나 날은 흐리고 수위는 아주 낮았다. 그래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나쁘지 않았는데, 사진에는 다 담기지 않아서 좀 아쉽다. 길도 예뻐서 드라이브하기에도 괜찮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여행을 출발한 지 2주나 지나서 그런지 운전에 좀 익숙해졌나 보다. 네비대로 따라가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핸들을 돌리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점점 여행이 더 재밌어지고 있는 중이다.
주암댐을 구경하고 나서 원래의 목적지였던 오지호 기념관으로. 굉장히 쌩뚱맞은, 시골길의 안쪽 골목에 있었고 주차장도 텅텅 비어 있었다.
오지호(吳之湖, 1905년 ~ 1982년).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국립 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고(그래서 화순에 기념관이 있는 거였군!), 우리나라에 인상주의 화풍을 정착시킨 화가라고 한다.
각설하고 작품들을 좀 보면,
인상적이다! 기념관에서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으면 촬영이 가능해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의 사진들을 잔뜩 찍어놨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상파 화가가 있었구나. 우연히 들른 곳에서 오랜만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역시 여행 중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르는 것이 참 좋으다.
더 오래 있을 수도 있었으나 배가 슬슬 고파져서 기념관을 나섰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핸들을 돌리는 재미도 알아버렸기 때문에 목적지는 광주의 숙소로 넣어두고 국도를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광주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딱히 차를 세울만한 식당이 없다. 그러다가 발견한 무등산 자연휴양림(↗)이라는 표지판. 흐렸던 날씨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데다가 왠지 근처에 식당이 있을 것만 같아서 아! 이거다! 하고는 네비를 무시하고 우회전을 감행했다.
자연휴양림이다 보니 역시나 산길을 올라가는 코스. 드라이브하기 딱 좋은 예쁜 시골길. 그렇게 달리다가 잠깐 차를 세우고 네비의 목적지를 수정했다. 네비가 알려주는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커다란 식당이 하나 있는데... 아, 이거 뭔가 분위기가 쌔~ 하다. 뭔가 단체로 예약하고 와서 토종닭 푹~ 고아서 먹는다거나 염소를 한 마리 잡는다거나 뭐 그런 류의 식당. 그 외에는 식당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휴양림에 주차장이 있는가? 하고 봤더니 식당 주차장을 같이 쓴다. 식당에 온 거라면 주차비를 받지 않지만 식사를 하지 않고 휴양림만 사용할 때에는 주차비를 내야 한다는 듯.
어쨌든 차를 세워두고 휴양림 산책 시작. 하아... 배가 고픈데.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왜 산책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걷다 보니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아서 어느새 산책에 푹 빠져 버렸다. 산책 중간에 버섯을 키우는 곳을 만났는데, 가까이 가서 슬쩍 봐도 어떤 버섯을 키우는지는 모르겠었다.
쭉쭉 뻗은 편백 나무들. 그 사이로 난 숲길. 사람은 없고, 날씨마저도 너무 화창하지 않아서 딱 걷기 좋은 날씨. 몇 개의 산책 코스가 있었지만 너무 길지 않은 코스를 선택했다. 점심을 거른 채 너무 긴 코스를 걷다가 체력이 딸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산책을 끝내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번엔 중간에 새지 않았다. 일단 숙소에 가서 식사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광주 시내의 한적한 곳 뒷골목에 있는 작은 빌라. 4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짐을 들고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ㅠㅜ 혼자 하는 여행인데 짐이 뭐가 있겠냐 싶겠지만, 게다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차에 놔둬도 되지 않겠냐 싶겠지만, 아이스박스에 들어있는 식료품들을 냉장고에 옮겨둬야 했다. 그리고 냉매들을 다시 꽝꽝 얼려야 했다. 그래서 아이스박스를 들고 올라가야 했다.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숙소는 작은 원룸. 세탁기와 냉장고가 모두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빨래 거리를 모두 모아서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렸다. 그러고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집 밖으로 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행보다는 다행에 가까웠다. 햄버거라는 음식 자체를 너무나 오랜만에 먹을 수 있었고, 한참 더운 시절에 자두로 만든 음료를 먹으면서 시워어언~~~했으니 다행이었다. 기왕이면 다른 브랜드의 햄버거가 더 나을 수도 있었겠..... 지만 이게 어딘가 ㅋㅋ
일단 주린 배를 채우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니 세탁기가 한 바퀴 돌아갔고, 빨래를 꺼내서 싹~ 널어두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는 아이패드를 꺼내서 여행을 좀 정리하고, 피곤한 몸을 폭신한 침대에 좀 뉘었더니, 헐!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을 때, 슬금슬금 집에서 기어 나왔다. 저녁을 먹는다 = 술을 먹는다는 말이기 때문에 차는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광주를 목적지로 정할 때부터 최소한 한 끼는 이곳에서 먹을 생각을 했었는데,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오늘 밤, 바로 그곳을 가기로 했다. 바로 광주송정역. 음 KTX가 지나기 때문에 유명한 역이기도 하지만, 바로 길을 건너면 그 유명한(?) 광주 떡갈비 골목이 있는 곳.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했을 때, 가고 싶은 집은 다른 곳이었지만 마침 오늘이 휴무일. 그래서 그 옆에 있는 다른 집에 갔으나... 여기도 이미 런닝맨이니 뭐니 유명한 TV 프로들이 다녀 간 집이다. 근데... 그래도 맛있더라.
일단, 담양의 비싼 떡갈비에 비해서 광주 떡갈비 골목의 떡갈비는 가격이 싸서 좋다. 게다가 푹~ 고은 국물을 함께 주니 안 좋을 수가 있나.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마시면서 찬찬히 저녁을 먹기엔 충분했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 살랑살랑(?) 술을 마시고, TV를 보면서 (내 기억이 맞다면 '효리네 민박'과 '비긴 어게인'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미 여행이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 되어 있는 하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랬다 정말. 이미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