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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Jul 05. 2024

어? 어? 하다가 엄청 마신 밤

짧은 도쿄 긴 교토 (16) - 07.03 / 밤과 새벽

어제, 결심했어요. 아무거나 대충 먹지 않겠다고, 대충 먹을 거면 차라리 편의점 레토르트로 차려 먹겠다고. 그래서 오늘은 비용 생각하지 않고 괜찮은 가게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겠습니다. 방에서 샤워하고 빨래하고 등등 정리 좀 하고 나오느라 저녁 시간을 살짝 넘겼습니다. 구글맵에는 시간 날 때(모닝 화장실?) 점찍어둔 많은 식당들이 있습니다. 친구들도 추천을 많이 해 줬고요. 그걸 보면서 저녁 먹을 가게를 찾아보기로 했어요. 목적지는 방에서 카모 가와를 건너 시조(四条)의 남쪽 구역입니다. 번화한 동네가 아니고 일반 주택이 많은 구역이에요.


결론부터 말하면,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관련해서 나중에 정리를 한 번 하고 싶기는 한데, 어쨌든 ‘예약’을 하지 않고 갈 수 있은 ‘괜찮은’ 식당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구글맵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그 가게를 마음에 들어한 사람은 교토라는 도시의 특성상 엄청 많을 겁니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말이죠. 게다가 교토의 가게들은 작은 곳이 많아요. 예약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 더, 모두 구글맵을 씁니다. 그러니까 구글맵에 평점이 높거나 리뷰가 좋으면 그곳에 사람이 몰립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걷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것에만 의지하고 있어요. 차라리 저는 경험에라도 의지하고 일본의 친구들에게 들은 정보라도 있죠. 지구 반대편에서, 평생 아시아에 올 생각도 안 해본 관광객들은 오로지 구글맵, 그것이 정보의 모든 것이란 말이죠. 모두가 똑같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보고 ‘여기가 좋겠는데?’하고 룰루랄라 걸어가 보면  거긴 이미 만석이 확실합니다.


네, 그렇게 저도 대여섯 개 이상의 가게를 돌아다니고 만석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한 시간 반 이상의 시간을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거예요. 이게 교토의 현실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대안을 찾을 것이지만, 이날은 그랬어요.






그렇게 한 시간 반 이상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자리가 있어서 앉을 수 있었던 가게, 쿄노젠 쿠루마(京の禅 「車」)입니다. 미야자키의 닭을 사용하는 닭요리집인데, 규모가 엄청 크고 분위기가 세련됐습니다. 가격도 좀 비쌀 것 같은 분위기. 닭요리라고는 하지만 사실 주로 야키도리입니다. 어제도 먹긴 했는데... 뭐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에요.





교토 야채샐러드와 차가운 순두부입니다. 쿄사이 사라다라더니, 특별한 야채가 안 보입니다. 이건 그냥 그린 샐러드 아닌가? 속은 느낌이긴 하지만, 저 양상추를 교토에서 키운 것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네요. 순두부는 부드럽고 고소했어요. 하지만 뭐 특별한 맛은 아닌. 그래도 앞으로 나올 요리들과 함께 먹으면 느끼함을 없애줄 거예요.





모모 아부리(다리살 살짝 굽기)와 시로 네기(흰 대파)입니다. 다리살의 껍질 부분을 바삭하게 구웠고 살 쪽은 날 것 그대로입니다. 껍질을 완전히 바삭하게 구워 씹을 때 질감을 느끼고 나면 나머지는 회로 먹는 그런 요리. 신선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시로 네기는 완전 실패작이었어요. 달달한 채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우즈라야에서는 대파를 통으로 구운 다음 맨 바깥의 껍질을 벗기고, 채즙이 빠지지 않도록 쿠킹호일 그릇을 만들어 다시 한번 굽는 단 말아죠. 여긴 그런 노력까지는 없습니다, 꼬치에 꽂힌 대파를 그대로 숯에 굽기만 해서는 대파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없네요.





세세리(목살)와 네기마 그리고 나가이모(참마)입니다. 세세리가 탱글하고 네기마는 평범했어요. 전반적으로 어제 먹었던 가게에 비하면 수준이 높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우즈라야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방문해야겠습니다.


참마는 아주 두툼해서 놀랐는데요. 아주 잘 구웠더라고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해요. 이렇게 구울 수 있으면서 대파는 왜....





좀 이르지만 마지막으로 카와(껍질)랑 레바(간)를 주문했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생맥주, 므기(보리) 쇼츄 소다와리 그리고 좀 비싼 사케를 한 홉을 마셨습니다.


이 가게는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닭도 신선하고, 큰 가게라 좌석도 많네요. 그냥 그런 체인점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다만, 제가 애정하는 우즈라야보다는 좀 못하네요. ㅎㅎ 기준점이 너무 높은가....





이번에 찍어둔 포인트기 아니라 예에에에전에 찍어둔 포인트가 근처에 있어서 가봤습니다. 락킹 체어라는 바.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것 같아요. 교토에서 가볼 만한 바들을 체크하면서 찍어둔 포인트. 다행히 자리가 있긴 한데 바 좌석은 없다더군요. 힐끗 보니까 한 자리 있는 것 같던데... 여튼 2인 테이블에 혼자 앉았습니다. 다행히 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이 예쁘네요.





스트로베리 쿨러를 추천받았습니다. 한 모금 마셔보니까, 확실히 칵테일을 잘하는 곳입니다. 밸런스가 아주 잘 잡혀 있고, 모나지가 않아요. 다른 칵테일도 기대됩니다. 사용하는 기물도 좋네요. 게다가 얼핏 보기에도 백바에 위스키 컬렉션이 좋아 보입니다. 조용히 바텐더랑 얘기하면서 칵테일도 마시고 위스키도 마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돈 나가는 줄 모르고 계속 마실 것 같은 바예요.


네, 조용하다면 말이죠...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여기가 교토인지 상해인지 헷갈릴 지경이에요. 아, 정말 아쉬운 가게. 코로나 전 교토에 자주 올 때 와봤어야 하는 가게였네요. 아쉽습니다.





부도야에 다시 들렀습니다. 와인으로 입을 좀 씻고 싶었어요. 독일의 리슬링을 한 잔 마시고 나서 포르투갈의 화이트를 하나 마십니다. 가츠오 가르파쵸를 안주로 먹었는데 사진을 깜빡했네요.





어딘가 관광객이 없는 바를 가보자! 라는 탐험 정신이 왜, 하필, 지금 발동해서 코코봉고라는 바를 찾아갑니다. 구글맵에 리뷰가 좋더라고요. 찾아가 보니 후쿠오카에서 여기저기 따라다니던 조그만 동네 바의 분위기입니다. 단골들의 사랑방 같은? 헌데, 문제는... 그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 남은 자리 겨우 앉았는데, 제가 일본어에 서툰 관광객이라는 걸 알자마자 관심이 제로입니다.


구글 리뷰의 문제네요. 어떤 한 사람이 겪은 좋았던 상황은 모두에게 똑같이 발생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걸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쇼츄 소다와리 두 잔을 먹고 일어섰습니다.





새벽 시간입니다. 술에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뭔가가 아쉽습니다. 사람이 그립달까, 대화가 그립달까, 관심이 그립달까... 교토의 바들이 언제부터 이랬죠? 손님한테 말을 걸지 않는, 도쿄의 바와 비슷해져 버렸어요. 너무 아쉽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아, 물론 저도 변했습니다. 나이가 먹었죠. 그만큼 외모도 달라졌을 거고요. 이 하얀 머리카락은 함부로 말 걸기 힘든 아우라를 풍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숙소 건물 2층에 있는 라부아르에 마지막으로 들릅니다. 여기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나에게 관심을 줍니다.





시원한 칵테일을 주문했더니 모히토를 만들어 주네요. 계절 과일을 이용한 칵테일이 된다고 해서 복숭아를 이용해서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바텐더는 칵테일을 참 못 만듭니다.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맛이 제대로 섞이지 않고 서로 날뛰고 있어요. 잘 만든 칵테일이 아니라는 정도가 아니라 못 만든 칵테일입니다. ㅠㅜ





백바에서 눈으로 보틀을 고릅니다. 마셔보지 못한 것으로 잘 골라봐야겠죠. 일단 오반 리틀 베이. 밸런스가 졸고 상큼하네요? 이거 엄청 매력적이었습니다. 뒤늦게 올라오는 피트도 좋았고요. 시그나토리 병입의 쿨일라 2012. 오피셜 보틀보다 가벼운 느낌이지만 쿨일라는 쿨일라였어요. 매력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드포드 리저브. 일본 바텐더들이 칵테일 만드는 유튜브를 보면 기주로 버번을 쓸 때 이걸 많이 쓰더라고요. 궁금했습니다. 맛은 딱 버번입니다. 버번의 정석 같은 느낌이랄까?


이러고 나서 편의점에 들러 냉동 오코노미야끼를 사서 방에 올라와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마무리했습니다. 야키도리, 클래식바, 와인, 다시 바, 마지막으로 방, 총 5차인가요? ㅋㅋㅋㅋ


내일은 아주 늦게 일어날 예정이고, 아무 데도 갈 수 없겠네요. 집에서 푹 쉬어야죠. ㅎㅎㅎ 날씨 어플 보니까 비소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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