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생활'을 위해
조만간 소멸해 버릴 항공사 마일리지를 쓰기 위해, 마침 백수인 지금 한 달짜리 장기 여행 - 아니 요즘 말로 하면 '한 달 살기'를 하러, 2일 뒤에 출발합니다. 첫 이틀은 후쿠오카에 있긴 할 거지만 어쨌든 구마모토에서의 한 달을 위해 짐을 싸는 중입니다.
성격이 INFP라서 사실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뭔가를 하는 편은 아닌데요. 장기 여행에서는 필요한 것이 좀 다르더라는 것을 지난번 보름간의 교토 여행에서 느꼈어요. 일반적인 여행을 준비할 땐 속옷과 양말을 포함한 옷을 여행 일자에 맞춰서 준비하고, 핸드폰 등 전자제품과 관련된 것 간단하게 그리고 세면도구와 로션 등을 챙기면 사실 준비 끝이잖아요.
하지만 여행이 좀 길어지면 전혀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집니다. 어느 정도 일정 이상의 여행은 더 이상 여행의 범주가 아니라 생활의 범주로 넘어간다고나 할까요. 전국 일주를 할 때나 큐슈 일주를 할 때에는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게 되는데요. 한 달 살기는 숙소 한 곳에서 계속 지내는 거라 또 다르더라고요.
일단 숙소를 옮겨 다니던 그렇지 않던 '빨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옷을 준비해야 해요. 일주일 짜리 여행은 빨래를 배제하고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길 수 있을지 몰라도 열흘, 보름 그리고 한 달 정도 되면 빨래는 사실상 필수입니다. 속옷이나 양말, 티셔츠 같은 것들을 얼마나 챙겨야 하는지는 얼마나 자주 빨래를 할 것이냐에 달려있죠. 단순하게 생각해서 일주일에 한 번 빨래를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모든 것이 일주일치 필요하겠죠. 지난 교토 여행은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3-4일마다 빨래를 할 생각으로 옷을 챙겨 갔습니다. 이번에는 한 겨울이라 외투를 세탁하진 않을 거라서 일주일마다 빨래를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챙겨두었습니다.
여기서 큰 변수가 되는 것은 의외로 '수건'입니다. 한 달 정도 묵을 숙소를 구했다면 그 숙소에서 수건을 어느 정도 제공해 주는지 확인을 해봐야 하겠죠. 호텔이 아닌 이상 매일 수건을 갈아주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번 교토의 숙소는 15박을 하는데 수건을 2장밖에 주지 않더군요. 추가 수건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해서 짐을 챙길 때 3-4장의 수건을 준비해서 갔었습니다.
자, 그럼 이번 여행에서 일주일마다 빨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수건을 일곱 장 챙긴다면? 트렁크의 꽤 많은 공간이 수건으로 꽉 찹니다. 의외로 수건은 굉장히 부피가 크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수건을 챙겨 넣었는데 정말 트렁크의 1/4 정도가 수건이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숙소에 문의를 했습니다. 수건을 얼마나 줄 수 있냐고. 다행히도 이번 숙소에서는 수건을 6장 정도 준비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수건을 아예 안 가져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세탁주기는 7일이 아니라 5-6일 정도가 되겠네요.
이번에 제가 챙긴 짐 중에 좀 의외의 것 중 하나는 '반찬통'입니다. 흔히 락앤락이라고 말하는 그런 부류의 것이요. 작은 걸로 3개 정도를 챙겼습니다. 지난 교토 여행에서 얻은 교훈인데요. 매번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수는 없고, 그럴 때마다 컵라면을 먹을 수도 없잖아요. 일본에는 우리나라처럼 햇반 같은 것도 있고, 즉석으로 조리할 수 있는 식품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숙소에서 차려 먹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밑반찬'이 좀 아쉽습니다. 매번 사는 것은 좀 아깝고, 시장에 가면 좀 더 저렴하게 파는 것들이 있단 말이죠. 이걸 비닐봉지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면 꺼낼 때 불편하기도 하고 냄새도 나거든요. 그래서 작은 반찬통을 3개 준비했습니다. 사실 이건 현지에서 사도 되는 거긴 합니다. 다이소에 가면 하나에 100엔, 200엔 정도 할 거예요. 그래도 뭐 미리 챙겨두면 그만큼 소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다고 김치 같은 것을 챙겨가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겠지만 저는 여행 중에 한식을 되도록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든요. 너무 먹고 싶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땐 현지의 한식당을 찾아보는 편입니다.
3박 4일의 여행이라면 집에서 매일 하던 것들을 잠깐 끊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달 정도가 되면 '매일'하던 것들을 그곳에서도 '매일'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관련된 짐도 챙겨야 합니다.
매일 산책하는 분은 운동화가 필요할 것이고, 매일 요가를 하는 분은 요가 매트가 필요할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운동화를 하나 챙겼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놓치기 쉬운 것, 바로 영양제입니다. 심지어 이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필요한 것이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하루에 두 번 먹는 영양제와 하루에 한 번 먹는 영양제, 총 네 종류의 영양제가 있어서 이걸 모두 60정, 30정씩 챙겼습니다. 물론 현지에서도 외출은 하게 될 테니까(여행이니까!) 약을 넣어 들고 다니는 휴대용 약통도 같이 챙겼습니다.
집에서 매일 하던 것은 아니지만 현지에서는 매일 하게 되는 일도 있군요. 지난번 교토 여행 때 매일매일 사진을 정리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렸더니 여행 다녀와서 커다란 숙제가 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할 생각인데요. 작업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겼습니다. 아이패드 화면에 떠있는 키보드만으로 입력하려니 좀 불편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매일 또는 자주 하던 일이 있는데, 그건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입니다. 헌데 이건 장비를 모두 챙겨가기가 좀 곤란합니다. 캠핑용 장비 같은 것들은 휴대가 간편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제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사용하는 장비들을 가져가려면... 그것만으로 큰일이죠.
그래서 커피는 현지 조달해 보기로 했습니다. 커피 원두 좋은 걸로는 일본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일 테니 원두 구매는 문제가 안 될 거예요. 하지만 장비가 없으니... 드립백을 현지에서 구매하는 걸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구마모토의 로스팅 카페들을 몇 군데 미리 찾아뒀습니다. 물론 드립백도 판매하는 곳으로요.
그 외에도 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것들은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거든요. 휴지, 티슈, 물티슈, 세탁세제, 샴푸, 바디샴푸, 치약 등 자잘한 물건들이거나 액체류라서 들고 다니기 곤란하다거나 하는 것들은 오히려 현지에서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한 가지 좀 고민했던 것은 바디샴푸인데요. 이게, 제가 좀 취향이 독특(?)해서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잘 안 쓰거든요. 3-4일짜리 여행에서는 그냥 호텔에서 주는 걸 쓰는데... 한 달 내내 쓸 수는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집에서 쓰는 걸 가져갈까 했는데, 마침 현지에서 제가 예전에 쓰던 브랜드를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작은 용량으로 현지에서 사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지난번 교토에서 15박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였던 것 중 하나가 '청소'와 빨래였습니다. 세탁에 대한 얘기는 앞에서 했으니 넘어가고요. '청소'는 저도 아직 노하우가 쌓이지 않은 분야입니다. 일단 지난번에는 숙소에 진공청소기가 있었는데요. 이게 성능이 별로 안 좋기도 한 데다가, 유선이다 보니 숙소 곳곳을 다 청소할 수 없어서 전원 연장선도 샀거든요. 그런데도 구석구석 청소하기엔 불편하더라고요. 결국 빗자루를 하나 사서 매일 가볍게 바닥을 쓰는 정도의 청소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숙소에 물어보니 진공청소기가 있다고는 하는데, 어느 정도일지는 감이 잘 안 오네요. 그래서 책상 위를 청소할 때 가끔 쓰는 작은 빗자루와 먼지떨이를 가져갑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많이 숙소는 더러워집니다. 먼지와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쌓이거든요.
숙소가 호텔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청소를 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직접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 동안 먼지 구덩이에서 생활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요.
이 정도면 대충 다 얘기한 걸까요? 흠.. 또 뭐가 있더라...
아! 식수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미리 생각해둬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생수를 잘 못 마십니다. 보리차를 끓여 먹어야 해요. 그래서 집에서 먹던 보리차용 보리를 가져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맛은 좀 다르겠지만 일본에도 보리차는 있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구마모토는 모든 상수도가 지하수이고, 모든 지하수가 미네랄워터라고 할 만큼 물이 좋은 도시라고 하니 일단은 물을 마셔보고 결정해도 되겠다 싶어요.
※ 일본 여행할 때 편의점에서 녹차 같은 거 사서 마시곤 하잖아요? 이게 일정이 좀 길어지면 비용이 꽤 나갑니다. 슈퍼마켓 같은 곳에 가서 1L, 2L 짜리로 사서 냉장고에 넣어놔야 좀 괜찮아지죠.
구마모토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구마모토에서만 지낼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구마모토에서 보내는 한 달 중간에 가고시마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아마 '한 달 살기'의 좋은 점은 그런 걸 거예요. 굳이 비행기를 또 타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바로 여행을 다닐 수도 있다는 점. 그러니까 짧은 여행용 가방 같은 게 필요합니다. 트렁크를 다시 꺼내들 고 갈 게 아니라면요. 세면도구나 옷 같은 것은 어차피 가져갔던 것들로 해결이 될 테니까요.
이렇게 저렇게, 내일모레 출발할 여행을 준비했고, 하고 있습니다.
꽤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빼먹을 것이고 지내다 보면 아쉬운 것이 생기겠죠. 빼먹은 것이 여권만 아니라면 여행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아쉬운 것은 다음의 여행에서 보완하면 되겠죠.
다음 포스팅에서는 구마모토에서의 얘기를 할 수 있겠네요. 아마도 후쿠오카에서는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을 거라서 아예 포스팅을 못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