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1부] 후쿠오카와 구마모토의 밤
2024년 12월 26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시점이고, 새해를 5일 남긴 그날. 소멸 예정 마일리지를 털기 위한 여행이 시작 됐습니다. 다행히 아침이나 새벽 비행기가 아니라서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더라고요. 딱히 쇼핑을 하는 류의 인간이 아닌지라 그냥 출발 게이트 앞에 앉아서 그림을 한 장 그렸습니다.
후쿠오카는 원래 일정에 없었는데 마침 친구랑 일정이 겹치는 날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친구의 호텔에 이틀 신세를 지기로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나카스 근처의 하루요시(春吉)라는 골목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정겨운(?) 골목.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가 이 동네에서 좀 유명한 친구라 함께 밤새도록 마시고 놀던 골목이에요.
친구의 호텔에 도착했더니 어제도 아침까지 마셨다면서 누워 있더군요. 오늘 저녁은 7시에 약속이 있다고 하니 아직 시간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단 가지고 간 크롬캐스트를 호텔의 TV에 연결하고 누웠습니다. 오징어게임 2가 바로 오늘! 공개 됐거든요. 약속 장소로 나가기 전에 1화와 2화를 시청했습니다. 음... 드라마에 대한 소감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얘기하기로 하죠.
참고로 꽉찬 한 달 일정의 이번 여행은 대략 4부로 나뉠 예정입니다. [1부]는 4일 동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마시는 날들입니다. 후쿠오카와 구마모토의 밤을 신나게 돌아다닐 예정이에요. [2부]는 약 일 주일 동안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 구마모토와 친해지는 시간입니다. 동네 슈퍼를 돌아다니면서 구마모토에서의 한 달을 준비해야 해요. [3부]는 가고시마에서 3박 4일 동안 흑돼지 샤브샤브와 쇼츄를 잔뜩 먹고 마실 예정이고 [4부]는 다시 구마모토로 돌아와 약 2주 동안 조용하게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시간이 될 예정이죠. 아직은 첫날, 이제 1부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사진으로 자세하기 올릴 수 없는 내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장면장면이 문제가 아니라 맨 정신으로 찍은 사진이 없어서요;;;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가득한 포스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제! 시작합니다!
오늘의 약속 장소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의 고교 동창생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가게의 이름은 하레토니치조오(晴れと日常). 다이묘(大名)라는 동네에 있는 가겝니다. 가게 분위기는 아주 깔끔하고 최근 후쿠오카의 젊은이들(특히 여성분)에게 인기가 많은 가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멤버는 일본인 두 명과 한국인 두 명입니다. 시커먼 남자 넷이서 노미호다이(정해진 시간 동안 술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요금제)로 맥주와 므기 소다(보리 쇼츄에 소다수를 섞은 것)를 주문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맨 먼저 나온 것은 오토시 4종이라고 부를만한 것입니다. 야채 조림, 계란찜을 다시에 담은 것, 꽁치 조림과 우메보시, 조개 조림 등 일본 특유의 달달한 간장을 사용한 요리들입니다.
다음으로 사시미 4종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코스가 시작됩니다. (아마도) 주도로, 도미, 문어, 삼치 아부리. 사실 이 집의 매력은 사시미가 아닙니다. 이 정도의 생선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죠.
마치 타파스처럼 작은 요리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이번에 나온 것은 니꾸 미소(고기 된장)라고 불러도 될라나? 싶은 것에 피망이 반쪽 함께 나온 요리인데요. 어떻게 먹는 건지 몰라서 일본 친구들을 살펴보니 저 된장을 피망 안쪽에 발라서 먹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따라 해 봤습니다. 피망의 신선하고 아삭한 맛도 맛이지만 저 고기맛 잔뜩 머금은 된장이 아주 맛있더군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우리 테이블에 일본어를 제일 못하는 사람이 저였습니다. ㅠㅜ) 숟가락처럼 생긴 작은 그릇에 담긴 저 요리는 우리가 주문한 코스에 나오지 않는 요리였습니다. 고교 동창 찬스로 받은 서비스인 거죠. 반숙 계란 위에 이꾸라, 우니, 날치알을 올린 요리입니다. 한 입에 먹기에 크기가 만만치 않습니다만, 기왕이면 한 입에 먹는 것이 맛의 조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맛있었어요. 고소함과 짭짤함과 톡톡 터지는 식감의 조화.
다음으로 나온 소고기 타다키는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맛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뭔가 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닌 그런 지나가는 요리.
코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표고버섯 튀김입니다. 표고 아래에 새우를 다져서 올린 다음 튀긴 것인데, 튀김 자체도 좋았고 표고의 식감과 새우 다진 것의 식감 등등 아주 좋았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가 아닌데도 그동안 먹어본 비슷한 요리 중 좋은 편입니다.
그다음으로 나온 새우와 애호박 요리는 마치 감바스 알 아히요 같은 요리입니다. 맛이나 향이 딱 그것과 같습니다. 제가 메뉴 이름을 하나하나 따로 체크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걸 수도 있겠네요. 생각하는 바로 그 맛입니다. 고소하고 짭짤한 감칠맛의 폭발.
다음으로 나온 것은 과하게 간이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밥을 부르던 니꾸 자가. 그러니까 고기와 감자를 간장에 조린 음식인데 제가 알기론 주로 돼지고기를 쓰는데 이건 소고기를 썼더군요. 그러니까 더 달고 더 짜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바로 다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운 주먹밥 오차즈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제 단무지와 와사비를 곁들인... 입을 깨끗하게 싹 씻어줘요.
오토시를 모두 따로 친다면 대략 10품이 넘는 코스네요. 여기에 노미호다이를 더해서 1만 엔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코스 6천 엔에 노미호다이 3천 엔 정도였던가? 여하튼 가성비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는 제 나름의 평가입니다. 일본 음식 특유의 단짠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가게 분위기도 좋고요. 절대 친구의 친구네 가게라서 좋게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이묘에서 하루요시 쪽으로 걸어가면서 일본인 친구가 아는 가게에 잠깐씩 들러서 한 잔씩 인사를 합니다. 이번에 들른 곳은 JIGGY'S STEAK SAND라는 가게입니다. 아주 저렴한 곳이라고 알고 있고요. 마치 테이크 아웃만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겼지만 의외로 2층에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2층에 앉아서 규스지 한 그릇(아주 작은 그릇에 나오는데 진짜 짭니다)에 각자 므기 쇼츄를 한 잔씩 마셨습니다. 참고로 2층의 분위기는 특별한 장식도 없이 그냥 맨 벽에 그림들이 막 붙어 있는 아주 험블한 분위기입니다.
다음 가게로 이동하다가 벽에 붙은 그림이 너무 예뻐서 찍었습니다. 네네치킨과 크레용 신짱의 콜라보. 의외로 짱구보다 철수가 더 귀여워 보이는 포스터.
다음 가게는 C&B LOUNGE 라는 펍입니다. 므기 쇼츄를 두 잔 마시고 후렌치 후라이랑 피자를 한 판 먹은 걸로 기억해요. 이곳은 단체석(?)이 많은 펍인데요. 매우 커다란 테이블 위에 트럼프 카드도 있고, 보드 게임들이 놓여 있습니다. 물담배도 가능한 곳이에요. 뭔가 친구들끼리 아지트처럼 모여서 노는 그런 컨셉의 가게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하루요시 입구에 있는 건물 3층의 BONDS.920이라는 바입니다. 우리는 ‘바’라고 부르는데 구글맵에는 ‘가라오케’라고 등록되어 있네요. 오늘 저녁을 먹은 식당을 예약했던 일본인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잔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대부분 노미호다이를 합니다. 술을 마시면서 가게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래 부를 수 있는 바’라고 하면 되려나요? 단순하게 노래방이나 가라오케라고 하기엔 다른 손님들이나 바텐더와 어울려야 하기 때문에 좀 분위기가 다릅니다. 술을 마시면 노래는 무료입니다.
일본에는 이런 시스템을 가진 가게가 굉장히 많은데요. 보통의 경우 3층 이상에 있기 때문에 건물 1층에서 ‘이 건물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올라가지 않으면 이런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이런 식의 바와 스낵 그리고 클럽 같은 것들이 건물의 3층 이상에 다닥다닥 모여 있습니다. 클럽 같은 곳은 가격대가 아예 다르겠지만 바나 스낵 같은 곳들은 대략 60분 또는 90분 노미호다이에 3천 엔 정도로 비슷비슷한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업시간은 오후 8시 이후에 시작하는 곳들이 대부분이고 새벽 4-5시를 넘어 6시까지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밤은 이제야 시작입니다. 저와 함께 온 친구는 이곳의 엄청난 단골입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들과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같이 마시고, 얘기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아침을 향해 가고 있고요.
친구가 다른 바에도 인사를 하러 가자고 합니다. 이번에 가는 곳은 아예 입구에 간판조차 없습니다. 3층 7호실에 있는 곳이라서 이름은 No.7. 후쿠오카 앞의 이키섬(壱岐島) 출신의 마스터가 운영하는 곳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가게들보다 좀 늦게 열고 많이 늦게 닫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이곳에 오면 항상 마시는 (겨우 두 번 갔지만;;;) 이키섬의 쇼츄를 로꾸로 주문했습니다. 기본 안주로는 팝콘을 주셨네요. 여기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피크이지 바처럼 숨겨진 곳을 나만 알고 있다는 묘한 느낌의 바입니다.
이후의 시간은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아니 찍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아침 6시가 넘도록 마셨던 것 같으니... 사진을 찍을 정신은 없었어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 여행의 [1부]는 계속 이런 식입니다. 아침까지 마시고 다음 날의 아침과 낮 시간은 전부 취침 시간, 다시 밤이 되면 마시기 시작해서 아침까지. 그런 식으로 ‘일본에서 술 마시기’를 잔뜩 경험해 보는 것이 ‘1부’입니다. 그럼, 술냄새 가득한 두 번째 밤은 다음 포스팅에서~~
참고로 저는 이미 구마모토에서 동네 슈퍼들과 친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걸로 치면 ‘2부’가 진행 중인 거죠. 포스팅을 최대한 실시간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좀 더 부지런을 떨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