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1부] 후쿠오카와 구마모토의 밤
오늘은 후쿠오카에서의 2박을 마치고 구마모토로 넘어가는 날입니다. 호텔의 체크아웃은 12시, 구마모토의 체크인은 오후 4시. 신칸센은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중간에 시간이 붕 뜹니다. 호텔에서 나와 점심을 먹을 겸 어제 들렀던 카페 SOFT를 다시 찾았습니다.
‘배고파요. 먹을 것 좀 주세요’ ‘밥? 빵? 면? 어떤 걸로 줄까?’ ‘면!’ 친구와 마스터의 대화는 단순 명쾌했습니다. 어제 술 많이 마셨을 테니 해장하라면서 크림소스 파스타를 만들어 주셨어요. 느끼하고 고소한 파스타는 약간 짭짤했습니다. 후다닥 다 먹고 나서 따뜻한 드립 커피 한 잔.
점심 먹고 나른~하게 좀 쉬다가 신칸센 표를 사러 갔습니다. 오늘은 12월 28일 토요일. 섣달그믐(오미소카, 大晦日)과 새해 첫 날(오쇼가츠, 正月)이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주말입니다. 일본은 음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쇼가츠는 새해를 맞이하는 큰 명절이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칸센 표를 사는 줄이 엄청 길겠지? 하는 걱정이 좀 있었는데, 의외로 하카타역의 신칸센 매표소는 평소에 비해서 조금 더 사람이 많은 정도였습니다. 평소엔 10분 줄 서서 살 수 있었다면 오늘은 15분 기다리는 정도?
하지만 문제는 표를 사는 게 아니더군요. 신칸센의 좌석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유석과 지정석. 당연하게도 지정석은 열차와 자리가 정해진 티켓을 사야 합니다. 자유석보다 비싼 표예요. 자유석은 정해진 차량 안에서 아무 자리에나 앉아도 되는 표입니다. 게다가 열차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아무 열차나 타도 되기 때문에 일정에 자유롭습니다. 중간에 내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도 뭐라고 안 해요. 말 그대로 자유죠. 그래서 저는 신칸센을 탈 때 항상 자유석 티켓을 사는데요.
15:01에 출발하려던 사쿠라 555 열차는 10분 정도 지연 출발해서 15:11 이 넘어서 출발하는 덕분에 그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1,2,3호 차량이 자유석이고 4,5,6호 차량이 지정석인 열차더라구요. 막 출발하려고 하길래 급하게 5호차에 올라탔는데요. 자유석이니까 앞쪽으로 이동을 했죠. 헌데... 4호차 즈음부터 복도에 사람들이 꽉~ 차 있습니다. 아! 이것에 귀성 인파인가!
네! 그랬습니다. 표는 쉽게 살 수 있었을지 몰라도, 자유석에서 ‘앉아서’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편하게 가려면 미리미리 ‘지정석’ 티켓을 예매했어야 하는 거죠.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카타에서 구마모토까지는 40분 정도면 되니까, 그냥 4호차와 5호차 사이의 공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습니다.
구마모토 역에 내려서 개찰구를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쿠마몬(クマモン). 구마모토의 ‘쿠마’가 ‘곰’이라는 뜻이라서 만든 캐릭터라고 하는데, 도시를 상징하는 캐릭터 중 역대급으로 성공한 캐릭터라 아주 유명합니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합니다. 숙소는 후지사키 하치만궁(藤崎八旛宮) 근처에 있는 코카이(子飼) 상점가의 옆 골목에 있는 작은 아파트입니다(일본의 아파트는 우리의 아파트와 좀 다릅니다. 아파트는 싸구려 허름한 집합 주택이고, 고급은 맨션이라고 하죠). 혼자 지낼 것을 생각하고 구한 방이었는데, 이틀 동안은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됐네요. 숙소에 도착해 보니 둘이 지내기엔 좀 좁긴 합니다. 그래도 접이식 침대를 펼치고 매트리스와 이불을 깔아보니 어찌저찌 둘이서 씻고 잠은 잘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어제도 늦게까지 마셨고, 체크 아웃하느라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더니 둘 다 피곤한 상태라, 일단 누워서 오징어 게임 2의 남은 회차를 보며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친구는 금방 골아떨어지더군요. 저는 오징어 게임 2를 마지막화까지 보고 나서 조용히 이런저런 짐정리를 했죠.
느지막이 저녁을 먹기 위해 번화가로 나왔습니다. 일단 오늘은 친구의 촉에 모든 것을 맡겨 보기로 합니다. 친구는 구마모토가 처음이긴 하지만 후쿠오카에서 특히 하루요시에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으니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죠.
구마모토의 중심 번화가는 구마모토 성 앞, 덴샤 도리(電車通)를 중심으로 한 넓은 구역을 말합니다. 하나뿐인 백화점인 츠루야 백화점(鶴屋百貨店)도 여기에 있죠. 덴샤 도리의 북쪽 구역은 옷가게와 헤어샵이 많고(구마모토는 일본에서 유명한 패션의 도시라고 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가게들이 띄엄띄엄 있는 번화가입니다. 중간중간 주택가도 섞여 있는 것 같고요. 덴샤 도리의 남쪽 구역은 말 그대로 진짜 번화가입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 어른들의 거리, 유흥가가 되는 느낌이에요. 친구와 둘이서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면서 느낀 점입니다.
대충 동네 분위기는 알았는데,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뭘 먹을 거냐? 친구가 야끼니꾸를 먹자고 합니다. 그래서 야끼니꾸집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 구글맵보다는 발과 눈을 믿어 보기로 합니다 - 마음에 드는 가게를 하나 찾아서 들어갔는데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내일 저녁에 예약이 가능하겠냐고 물어봤더니 가능하다고 하셔서, 야끼니꾸는 내일 먹기로 했습니다.
이젠 시간이 너무 늦어서 눈에 보이는 가게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로 하고는, 가게 앞에 커다란 수족관이 있는 체인점처럼 보이는 그런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가게 이름은 사카소(酒湊). 사진에서 보듯 가운데에 조리하는 모습이 보이는 주방이 커다랗게 있고 디귿자로 둘러서 바가 있습니다. 물론 뒤쪽에는 테이블석도 있고 안쪽에는 룸도 있습니다. 아주 큰 가게예요.
구마모토에서의 첫 끼니까 카라시 렌콘과 히토모지 구루구루를 먼저 주문했습니다. 카라시 렌콘은 연근의 구멍 부분에 겨자 소스를 채운 다음 튀긴 음식이고, 히토모지 구루구루는 쪽파를 데친 다음 돌돌 말아서 초된장에 찍어 먹는 요리입니다. 구마모토의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고 해요. 참고로 바사시 그러니까 말 사시미가 구마모토의 가장 유명한 음식이지만, 예전에 구마모토에 왔을 때 시도해 봤었고, 저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손도 안 댈 예정입니다.
이 가게에 들어온 이유는 문 앞에 놓인 메뉴판에서 오징어를 모양 그대로 회 뜬 것을 봤기 때문이었는데요. 오징어 회를 둘이서 먹을 만큼 달라고 하니까 한 마리 통째로 주질 않아서 비주얼이 안 예쁩니다. ㅠㅜ 먹어보니 무늬 오징어인 것 같았어요. 눈이 달린 다리 부분은 나중에 손질을 더 해주셨습니다. 무늬 오징어회야 뭐 말해 뭐 하겠습니까. 맛있습니다. ㅎㅎ
친구는 밥이 필요하다면서 참치 붉은 살 마끼를 주문했습니다. 어라, 배가 고파서 그랬나? 별로 맛있지는 않았는데 ‘밥’이 들어가니까 좋더군요.
그래서 마끼를 두 종류 더 주문했습니다. 대충 메뉴판 가리키면서 주문했기 때문에 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새우 어쩌고가 하나, 명란 어쩌고가 하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생선 구이를 하나 먹고 싶어서 은대구 구이를 주문했는데, 아~ 이건 대실패. 구운 것이 아니라 대충 쪄진 것 같은 생선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문한 것은 굴튀김이었어요. 전반적으로 ‘딱 고만한’ 가게였습니다. 분위기도 맛도 가격도 딱 고만한 가게. 평소 같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배고프고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그런 가게.
일단 배를 채우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바’ 탐방을 시작합니다. 오늘 찾으려는 ‘바’는 평소에 제가 다니던 포멀(formal)하거나 클래식(classic)한 바가 아닙니다. 후쿠오카에서 이틀 동안 부어라~ 마셔라~ 하던 분위기의 가게를 구마모토에서 찾아보는 거죠. 저와는 여행 스타일이 다른 친구가 과연 어떤 식으로 자신의 단골집을 만들어 가는지 그 시작을 함께 해보는 겁니다. 친구는 구마모토가 처음이니까요. 그렇게 구마모토의 유흥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고른 빌딩인지는 모르겠는데, 친구가 갑자기 이 건물로 들어가 보자고 합니다. 1층에 있는 가게 리스트(?)를 보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렸습니다. 그때 One Line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문 안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그룹인 GLAY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이런 분위기가 한국에는 없는 곳이다 보니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좀 어색하더라고요.
안에는 두 팀 정도가 마시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구석에 앉았어요. 일단 시스템을 물어보니 노미호다이 90분에 3천엔. 저희도 마시기 시작합니다. 하이볼도 마시고, 므기 소다도 마시고, 고메 우롱(쌀 쇼츄에 우롱차 섞은 것)도 마십니다. 노래도 한 곡 부릅니다. (저는 박효신의 눈의 꽃을 주로 부릅니다. 일본의 유명한 곡을 번안한 거라서 한국어로 불러도 다들 알거든요. 신기해하기도 하고) 오너와 얘기해 보니 한국어는 못하지만 재일교포 2세라고 합니다. 한국어 이름을 들었는데... 까먹었습니다. ㅠㅜ
친구가 다른 가게를 소개해달라고 하더군요. 아하, 이런 식이구나. 일단 가게 하나만 뚫고 나면 소개받고, 소개받고 하면서 여기저기 다녀 보다 보면, 결국 마음에 드는 가게에 안착(?)하는 식!! 여하튼, 그렇게 노미호다이 한 타임을 채우고는 다음 가게로 이동합니다.
이번에 소개받은 가게는 내부가 온통 하얀색입니다. 사람도 많았어요. 헌데 손님들이 전부 너무 젊은이들이라 우리가 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분위기였어요. 뭔가 붕 뜬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죠. 들어왔으니까 일단 마십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90분에 3천엔.
사실 앞의 가게에서 스낵을 하나 소개해달라고 했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을 연 가게가 없다고 하더라고요(이때가 대략 3시 정도?). 소개받은 이 가게의 오너는 이곳 말고 스낵도 하나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를 소개해줬나 봅니다. 여기서는 굳이 노래까지 하지는 않았어요. 손님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거든요. 그냥 술만 마시다가 4시가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네 번째? 구마모토 방문인데, 처음 보는 구마모토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ㅎㅎㅎ 피곤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