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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5. 오늘은 기필코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으리라!

2025 새해맞이 여행 - [1부] 후쿠오카와 구마모토의 밤

by zzoos



어제 저녁 먹으려고 들어갔다가 시간이 늦었다고 해서 오늘 저녁 7시에 예약을 해두었던 구마모토 야끼니꾸 키츠네(焼肉 㐂常(きつね))에 왔습니다. 이곳 역시 밖에는 작은 간판 밖에 없고 건물의 3층에 위치한 가게입니다. 어제 눈에 불을 켜고 ‘야끼니꾸(焼肉)’라는 글자를 찾다가 그 작은 간판까지 발견할 수 있었어요.


구마모토에는 아카규(赤牛)라고해서 털이 붉은 소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유명하고 높게 쳐주는 소는 털이 검은 소(黒毛和牛)거든요.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글에 따르면 아카규는 한우와 맛이 비슷하다고 하던데, 사실 저는 그 정도까지 구분은 못하겠습니다. 어쨌든 오늘 여기서는 바로 그 아카규를 먹어봅니다~


단품으로도 주문할 수 있는 가게이긴 합니다만, 술을 좋아하는 두 명이다 보니 노미호다이(飲み放題)를 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코스로 주문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방문 전에 미리 메뉴를 확인해 둔 게 있었는데요. 코스는 6천엔, 8천엔, 11천엔 코스가 있더군요. 이럴 땐 가운데 것을 고르는 거다! 라는 진리에 따라 8천엔 코스를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하니까 바로바로 눈앞에서 고기를 썰어 주시더군요.





일본식 야끼니쿠 코스답게 우설로 시작합니다. 약간의 야채도 함께 주십니다. 쫄깃하면서 냄새 없이 부드러운 맛의 우설이었습니다. 친구는 우설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는데도 이건 잘 먹더군요. 아, 그리고 직접 구워 먹어야 하는 가게였습니다. 왠지 분위기가 고급스러워서 혹시 구워주려나?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사실상의 메인인 3품입니다. 설명을 들었지만 일본어로 소의 부위까지 알아듣기에는 저의 일본어 실력이 너무 미천합니다. 대충의 느낌은 마블링 많이 보이는 애가 등심, 오른쪽 위의 지방 적어 보이는 애가 안심, 아래쪽의 붉은 살이 안창 같이 육향이 진한 특수부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블링 잔뜩인 등심의 맛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고요. 안심도 생각보다 안 퍽퍽하고 부드러워서 좋았습니다. 육향이 강한 부위는 제가 별로 안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어요.


다음으로 호르몬(ホルモン) 그러니까 내장이 나오더라고요. 어라? 벌써 코스가 끝이야? 싶습니다. 호르몬에는 양념이 되어 있고 대창과 곱창이 섞여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특이하게도 대창이나 곱창을 동그란 원형 그대로 굽지 않고 원을 잘라 전개해서 널찍하게 굽습니다. 느낌이 조금 달라요.





호르몬이 나오길래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한 코스가 남았네요. 길쭉한 등심(?) 로스를 구워서 사과채를 말아서 먹는 요리입니다. 이건 직접 구워서 가위로 반을 잘라 주시네요. 의외로 상큼하고 사각한 사과가 연하게 구운 로스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깔끔한 마무리가 되었어요. 옆 자리에서 단품으로 주문해서 드시던 여성분들이 이걸 보시고는 바로 주문해서 드시더라고요.





가게의 분위기는 이런 식입니다. 눈앞에서 고기를 직접 잘라 주시고, 다찌에 빙 둘러앉아서 먹는, 그런 식. 끝으로 어느 부위인지 모르겠지만 타다키(잘은 모르지만 일본은 육회를 팔 수 없으니 직접 육회 덮밥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주 살짝이라도 불을 대서 타다키로 만들면 서빙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덮밥과 소고기 국물이 나왔습니다. 밥과 고기는 아주 맛있었는데 국물에 ‘간’이 전혀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몰래몰래(?) 고기 찍어 먹던 소금을 넣어서 간을 맞춰서 먹었습니다. 소고기 국물과 밥, 마무리로는 최강의 조합이네요.


노미호다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스로 주문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코스였다고 생각합니다. 8천엔 코스에 2천엔 노미호다이. 실컷 술 마시면서 고기도 먹었는데 1인당 1만 엔이니까 말이죠. 특히 이날 ‘토마토 사와’를 계속 마셨는데요. 이게 아주 물건이었어요. 하필이면 사진이 남이 있지 않아서 이름을 모르겠지만 ‘투명한’ 토마토 쇼츄에 소다를 섞은 것이었거든요? 근데 이 투명한 술에서 고급스러운 토마토의 맛이 난단 말이죠. 아주 좋았습니다. 매우 매력적!





고기로 배를 채웠으니 이제 술을 마셔야죠. 근처의 건물을 돌아다니며 1층에서 해당 건물에 입점한 가게 리스트를 확인합니다. 작은 간판들이긴 하지만 그 가게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물론 BAR, SNACK, CLUB 같은 가게의 정체성도 당연히 표기하고 있고요. 어떤 건물의 1층에서 SNACK SHIRO라는 간판을 보고 한 번 가보기로 합니다. 스낵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스낵은 바와는 또 다르게 동네 아저씨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 있고 그러잖아요? 하지만 SNACK SHIRO는 오늘 휴무일이었습니다. 연말연시라 문 닫은 가게들도 많단 말이죠.


그래서 같은 건물 6층에 있는 BAR 王我(오오가?)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부르는 구성진 엔카 가락이 들리길래 후딱 문을 닫았어요. 뭔가 우리 분위기가 아닐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마스터가 후다닥 뛰쳐나오시더라고요. 검은 셔츠에 회색 베스트, 넥타이까지 챙겨 매신 단정한 마스터를 보니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가 정통 바같은 느낌도 풍겼거든요.


오토시가 아주 마음에 드는 가게였습니다. 확실히 중년이 타겟인 것이 분명한 구성. 오이 절임과 계란말이 그리고 작은 소시지 데침. 거기에 딸기 한 알과 초콜릿, 땅콩까지. 오토시의 양과 종류가 아주 다양합니다. 이곳의 시스템은 노미호다이 한 시간에 3천엔. 백바에 있는 술 중 1,2층은 노미호다이가 가능하고 3층에 있는 술은 별도 주문해야 하는 술. 구분도 명확하고 명쾌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보틀들을 이것저것 주문해서 마셨어요. 위스키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좋은 녀석들은 다 3층에 ㅋㅋ) 쇼츄들을 위주로 마셨어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더군요.





다음 가게를 찾기 위해 구마모토의 밤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전차가 다니는 풍경 저 뒤에는 구마모토 성도 보여요. 친구의 촉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작은 간판. 하치(八)라는 바입니다. 가로수가 멋진 골목의 2층에 있는 분위기가 좋은 바예요. 약간은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시는 누님이 혼자서 운영하시는 곳이었어요. 들어가면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 여튼 분위기가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노미호다이를 하거나 하는 분위기의 바가 아니더군요. 저쪽 편에 칠링하고 있는 샴페인 보틀이 보이길래 글라스로 샴페인을 마실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한 잔에 1,700엔. 가벼운 가격은 아니죠. 마셔보니 당연하게도 샴페인입니다. 어설픈 스파클링이 아니더군요. Mailly라는 샴페인이었는데, 저는 처음 마셔보는 것이었어요. 잘 익은 빵 냄새가 확 올라오고 버터의 여운이 남습니다. 그리고 기포가 섬세한, 아주 맛있는 샴페인이었어요. 오너 누님에게 한 잔 권했더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샴페인이라고 하시더군요.


와인을 고르시는 게 남다른 것 같아서 레드 와인도 글라스로 한 잔 청했습니다만, 레드 와인은 생각보다 많이 별로였습니다.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많이 칠링 해두셨어요. 피노누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너무 낮은 온도라서 향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어요. 쥬스처럼 후루룩~ 마셔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백바에 보이는 모리이조(森伊蔵)를 한 잔 부탁했습니다. 일본 쇼츄의 3대 천황! 흔히들 3M이라고 부르는 모리이조, 무라오, 마오. 바로 그 모리이조입니다. 요즘엔 사토우와 만젠을 더해서 4M 1S라고 부른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사랑했다는 바로 그 모리이조입니다! 사실 다음 주에 가고시마에 3박 4일 여행을 갈 것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직접 3M을 마셔보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오늘, 여기서 그 시작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분위기가 좋은 바였으니까요.


그렇게 받아 든 모리이조는, ... 정말 환상적인 술이더군요. 그동안 마시던 쇼츄들은 뭘까요? 한 잔의 술에서 이렇게 복합적인 향과 맛이 날 수 있는 것이었다니! 다층적으로 향의 레이어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복합적인 맛과 향이 차근차근 느껴지는데, 이건 정말 잘 만든 술이라는 말을 저절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좋은 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라오와 마오는 얼마나 좋은 술일까요? 가고시마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커집니다. 지난번엔 왜 안 마셨을까...





조금은 얌전하게 시간을 보내서인지 노미호다이가 가능한, 좀 왁자지껄한 바를 찾기로 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BAR Rumbullion(バー ランバリオン).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90분에 3천 엔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스키가 주력인 가게라서 하이볼을 줄창 마셨어요. 그러던 중 처음 보는 버번들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밤은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바를 찾아갑니다. 아니, 사실은 숙소 쪽으로 걸어가다가 발견했어요. 주차장 앞에 작은 건물을 혼자 쓰고 있는 바 ICOCA입니다. 구글맵에는 2시까지 영업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들어간 것이 이미 2시가 넘었고, 이날 제 기억엔... 새벽 4시가 넘도록 마셨습니다. 귀여운 남자 알바가 우리랑 잘 놀아줬어요 ㅎㅎㅎ





숙소까지 걸어서 대략 15분 정도니까 멀지는 않습니다만 피곤해서 걸어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러 갔더니 이 늦은 시간에도 줄을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러고 보면 구마모토는 전차가 있긴 하지만 코스가 구석구석 커버하지 못해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자가용이 비율이 아주 높아 보이는 도시였습니다. 우리도 지방의 작은 도시에 가면 승용차 없이 살기가 불편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요. 구마모토는 건물마다 주차장도 잘 구비하고 있고, 번화가나 유흥가에도 구석구석 주차장이 잘 되어 있어요. 주택가 사이사이에도 마찬가지고요. 승용차를 쓰는 비율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택시 사용 비율도 높은 게 아닐까? 하는, 제 나름대로의 분석 아닌 분석도 함 해봅니다. 사실 분석이라기보다는 느낌 정도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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