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2부] 구마모토와 친해지기
구마모토 성 앞의 사쿠라바바 조사이엔을 탈출(?)해 이제는 정말 장 보러 사쿠라마치 구마모토로 향합니다. 사쿠라마치 구마모토는 최근에 지어진 커다란 쇼핑몰이라고 알고 있어요.
어라? 쇼핑몰 앞에서 뭔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를 든 여자분께서 ‘후루마에자케’라면서 다들 와서 드시라고 방송을 하고 있고, 멋진 옷을 차려 입은 젊은 남녀가 종이컵에 니혼슈를 떠서 나눠줍니다. 후루마에자케가 뭔지 나중에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후루마이자케(振る舞い酒)란 새해를 맞이해서 다 같이 즐겁게 마시는 술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한 잔 얻어 마셨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예쁜 언니에게 술을 얻어 마시니, 올해는 운수가 좋을 모양입니다.
잠깐 광장에 서서 한 잔 마시다 보니 자연스레 고개가 위로 들리면서 사쿠라마치 건물의 위쪽을 보는데, 어라? 저게 뭐지? ㅎㅎㅎ 쿠마몬이 위에서 반겨주고 있네요.
쇼핑몰 안에 들어가니 특별 매장 같은 게 있습니다. 이런저런 매장에서 만든 후쿠부쿠로(福袋)를 모아서 판매하는 매대인 것 같았어요. 후쿠부쿠로 그러니까 복주머니란 일본의 새해 첫날에만 판매하는 특별한 판매 방식인데요. 해당 매장의 상품이 랜덤으로 들어있는 주머니입니다. 예를 들어 5천 엔짜리 후쿠부쿠로를 사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5천엔 보다는 훨씬 비싼 값어치의 물건들이 들어 있는 식이죠.
한 달 뒤에 돌아갈 때 짐이 될 것 같아서 아무것도 구매하지는 않았습니다. 뭔가 ‘먹는 것’들이 들어 있는 주머니가 있다면 사볼까? 싶기도 했는데 가격들이 만만치 않아서요.
집 바로 앞에 커다란 슈퍼마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멀리 있는 쇼핑몰까지 장을 보러 나온 이유는 바로 이곳 때문이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엊그제 왔을 때 한꺼번에 다 사갔을 수 있었을 텐데....
진미 고쥬안(珍味古じょう庵). 이런저런 쯔께모노들을 만들어 파는 곳이라고, 검색해서 찾아낸 집입니다. 아무래도 집에 밑반찬을 사두고 싶었거든요. 교토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유즈 뱃따라즈케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이건 일 년 내내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걸로 알아요), 그래도 슈퍼에서 막 사다 먹는 쯔께모노가 얼마나 맛이 없는지도 알고 있어서, 제대로 만든 것을 사다 먹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비싸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먹어보니,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여기서 사다 먹은 쯔께모노들은 정말 맛있었어요.
아,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바로 앞의 도시락 가게에 들러서 두고두고 먹을 반찬 같은 것이 있는지도 좀 확인하고, 저녁으로 먹을 것도 챙겨서 샀습니다.
장을 보고 나서 돌아가는 길, 내려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동네 여기저기를 걸어 다녀 보는 거죠.
집, 아니 숙소 근처에 목욕탕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온천이 아니라 센토(銭湯)라고 불러야 정확하게 알아듣더군요. 어쨌든 구마모토시 공중욕탕조합의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소개한 적 있는 귀여운 홈페이지(http://kuma1010.com)를 가진 조합이에요. 아마 1월 3일에 술을 넣는 욕탕에 처음 술을 붓는 날인가 봅니다. 언젠가 방문해서 피로를 풀게 될 것 같은 목욕탕! 위치 체크!
자, 이제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샀는지 체크해 봅니다. 우선은 고쥬안에서 산 쯔께모노들입니다. 무, 당근, 오이 등을 절인 것이죠. 가운데는 죽순을 다시에 절인 것입니다. 이건 짠맛이 아니라 가쓰오부시의 감칠맛이 나는 절임이에요. 세 번째 것은 타카나메시 그러니까 갓 볶음밥을 만들기 위한 갓 절임입니다. 구마모토의 음식 중 하나라고 하네요. 아소산에서 자란 갓(타카나)을 쓴다고 합니다. 원래는 저걸 볶아서 밥이랑 섞어 먹는 거라는데, 저는 그냥 절임 상태 그대로 먹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반찬가게에서 산 것들입니다. 야채 사라다는 두고 먹으면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으니까 큼직한 것으로 샀고요. 저녁으로 먹을라고 생선까스 도시락을 하나 샀습니다.
끝으로 집 앞 편의점에서 우유와 쥬스도 샀습니다. 무거운 것들은 굳이 멀리서 살 필요가 없으니까요.
자, 이제 사 온 것들로 저녁을 차려 먹습니다. 된장국은 미리 사두었던 즉석 된장국입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거죠. 도시락에 반찬이 많길래 야채 사라다와 갓절임만 추가했습니다 쯔께모노들은 아직 꺼내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훌륭한 밥상이죠. 하지만 가격이 절대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도시락이 450엔이니까요. 간단하게 먹을 때는 더 저렴하게 먹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는데... 아무래도 500엔 아래로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직접 요리하지는 않으니깐 말이죠.
드디어 먹고 마시는 ’여행‘이 아니라 조용히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마시기도 하겠지만, 집에서 하는 일들도 많아질 겁니다.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죠. 쓰레기가 쌓이면 분리수거도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여행의 영역에서 생활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1/10)은 이미 가고시마 여행까지 다녀온 시점입니다. 이래저래 사진의 양이 상당해서 이걸 언제 다 정리하나 싶긴 하지만, 어차피 백수잖아요.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숙소의 느린 인터넷 환경이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