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2부] 구마모토와 친해지기
오전에 산책도 다녀오고, 점심도 배부르게 라멘을 먹었으니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이 됩니다. 정육점에 가서 고로케나 가라아게를 사다가 카레와 함께 먹을까? 아니면 슈퍼에 가서 도시락을 하나 잘 골라볼까? 아, 정육점은 연휴라서 아직 쉬는 중이겠구나. 흠, 어쩌지...?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봤더니, 오늘 금요일이더라구요??? 아, 제 몸의 유전자(?)가 반응해 버립니다. 금요일 밤에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은 스스로를 슬프게 만드는 일입니다. 어디를 가던 일단 나가서 먹어야겠습니다. 그렇게 집 앞으로 나와 보니 12월 31일 밤부터 영업하던 야타이들이 오늘은 철수를 시작하네요. 아하, 1월 1일까지만 영업하는 게 아니었군요. 총 3일 정도를 영업하는 모양입니다.
정처 없이 걸으면서 적당한 가게를 찾다가 마침 카운터석에 자리가 있는 것 같은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가게 이름은 이시하라(石原).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인 이시하라 사토미(石原さとみ)와 한자가 완전히 같네요!!
빈자리가 꽤 많아 보이는데도 구석에, 혼자 오신 아저씨 옆에 앉히더라구요. 근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제가 앉고나서 5분도 되지 않아 가게가 만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카운터석의 6개 의자에도 커플이 두 쌍 앉았으니, 제가 혼자 오신 아저씨 옆에 앉는 게 맞더라고요. ㅎㅎㅎ
이곳의 주문 시스템은 QR 코드를 찍으면 나오는 홈페이지에서 직접 주문하면 합산해서 계산이 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테이블마다 다른 QR 코드를 가지고 있는 거죠. 헌데 초보 알바가 저한테 별도의 QR 코드를 안 주는 바람에 저는 옆자리 아저씨 QR 코드로 주문을 해버렸습니다. 다행히 고참 알바가 눈치채고 얼른 새로운 QR 코드를 주고, 기존의 주문을 수정해 줬습니다. 이렇게 QR 코드로 주문을 하면 홈페이지에서 번역 기능을 통해 메뉴 이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편합니다. 중간중간 지금까지 얼마나 먹었는지 금액도 체크할 수 있어서 좋고요.
오토시는 작은 주먹밥을 구운 다음 걸쭉한 소스에 담근 것입니다. 아무래도 겨울이다 보니 이런 식의 음식을 많이 먹게 됩니다. 저렇게 걸쭉한 소스... 라기보다는 걸쭉한 국물에 담가 먹는 방식을 일본 요리에서 부르는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젤 먼저 주문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우엉 튀김입니다. 아주 짭짤하고 바삭한 게 완전 맥주 안주네요.
하지만 문제는 제가 야마이모 튀김도 주문했다는 겁니다. 두 메뉴의 맛이 너무 비슷하고 짭짤해서 좀 지겨웠어요. ㅠㅜ 다행히 그다음 메뉴인 닭목살 구이를 상큼한 유즈코쇼와 함께 먹었더니 짠 기운들이 많이 사라지더군요. 다음부터 튀김 메뉴는 하나만 주문해야겠습니다.
다음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오차즈케를 주문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좀 남기고 나왔어요.
이 가게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해본다면, 동네에서 인기 있는 이자카야인 건 맞는 거 같습니다. 싸고 젊고 분위기가 활기찹니다. 하지만 음식들의 맛은, 뭐 그냥 그랬습니다. 자리도 좀 좁고 불편했고요. 그래서 아마도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금요일 밤! 이라는 기분이 좀 사그라들어서 그냥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빵과 과자를 샀어요. 그리고 자그마치 500엔짜리 와인이 있길래 한 병 사봤습니다. 세븐 일레븐은 가성비가 좋으니까요.
세븐 일레븐 와인과 세븐 일레븐 빵 거기에 세븐 일레븐 버터까지. 와인의 퀄리티가 5천 원 치고는 좋았습니다. 확실히 가성비가 좋은 와인이었어요. 와인 반 병 정도 마시다가 슬슬 필 받기 시작해서 하쿠타케 소다로 넘어갑니다. 냉장고에 넣어놨던 사라다와 쯔께모노도 안주로 꺼냈습니다. 좋습니다. 맛있습니다. 흥이 막 올라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나와버렸습니다...
오늘은 좀 다른 길을 걸어 번화가 쪽으로 갑니다. 엄청 크고 화려한 주차 타워. 그리고 특이한 주차 관리 기계입니다. 구마모토에는 여기저기 주차장이 정말 많습니다. 주택이나 아파트, 맨션에도 웬만하면 주차장이 갖춰져 있는 느낌이고요. 아무래도 생활에 차가 밀접하게 필요한 모양입니다.
이자카야에서 1차, 집에서 2차. 그리고 3차는 이곳. 두 번째로 오는 바인 ICOCA입니다. 일단 얼굴은 한 번 텄던 곳이니까 마음 편하게 재방문했어요. 사진은 별로 없지만 이날 정말 엄청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옆자리 아저씨들과도 말을 많이 텄고요. 그중 일식 요릿집의 오너 셰프인 분도 계셔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반도체 엔지니어인 미조마타상과는 내일도 만나기로 해버렸습니다!
오, 일본 아저씨와의 술 약속이라니 ㅋㅋㅋ
새벽 몇 시였을까요? 내일을 기약하며 일어나서 집 방향으로 걸어오면서 구마모토의 밤거리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어요.
피곤함을 풀자마자 다시 마셔버리는, 나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