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구마모토에서의 아침은 매일 비슷한 루틴입니다. 일어나는 시간은 좀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일단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창문을 엽니다. 먼지떨이로 눈에 보이는 먼지들을 털고 진공청소기를 꺼내 전원을 연결한 다음 바닥을 청소합니다. 워낙 집이 작기 때문에 청소하는 데 시간이 별로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그러면서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오늘은 어디를 갈지 생각해 보곤 합니다. 오늘은 에즈코(江津湖) 그러니까 에즈 호수 공원에 가보려고 합니다. 지도를 보면 스이젠지(水前寺) 아래쪽에 아주 큰 호수가 두 개 보이거든요. 그중에 위에 있는 것이 카미에즈코(上江津湖) 아래쪽에 있는 곳이 시모에즈코(下江津湖) 또는 에즈코라고 부르나 봅니다. 정확하게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저는 두 곳을 다 합쳐서 에즈 호수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구글맵을 이용해 버스나 전차 노선을 체크해 봅니다. 일단은 버스를 타야겠군요. E3-2 버스를 타고 전차가 다니는 길로 가는.... 어라? 버스를 반대로 탔습니다. ㅠㅜ 결국 구마모토 대학 앞에 내려서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배차 시간이 꽤 길어서 시간을 많이 낭비했어요.
결국 버스를 타고 스이도초(水道町)에 내려 전차로 갈아탑니다. 아, 참고로 구마모토는 2024년 11월부터 전국 공용 교통카드들(SUICA, ICOCA, ...)을 지원하지 않고 구마모토 전용 쿠마몬 카드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상반기(?)부터 아예 교통카드가 아니라 신용카드로 대중교통을 바로 탈 수 있도록 도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차나 버스를 탈 때 그냥 현금을 사용했습니다.
전차의 바닥이 오래된 나무라서 느낌이 좀 좋더라고요. 운행 중인 전차 중에 저렇게 낡은 전차도 있지만 완전 최신형의 2량짜리 전차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신형 전차는 타 본 적이 없네요.
어디에서 내릴까 고민을 좀 하다가 결국 핫초바바(八丁馬場) 역에서 내렸습니다. 스이젠지는 예전에 가본 적이 있으니 오늘은 카미에즈코부터 산책을 시작해서 아래쪽까지 쭉~ 걸어 보면 두 시간 정도 걸리려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계속 구마모토 성 앞의 번화가에서만 지내다가 다른 동네에 오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지더군요. 특히 이 핫초바바 역 부근은 호수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고급 주택들이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뭐랄까, 호수와 공원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동네 분위기랄까?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노인 부부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더욱 은퇴한 (부자) 노부부들이 지내는 그런 동네처럼 느껴지는, 그런 첫인상이었습니다.
공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한적했고, 생각보다 규모가 더 컸고,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 좋았습니다.
구마모토의 겨울 날씨가 낮에는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정도길래 (대략 10-15도) 오늘도 옷을 좀 얇게 입고 나왔는데, 오늘은 흐리고 바람이 좀 불어서 춥네요. 몸이 살짝 으슬으슬해지고 있습니다.
역시 나쓰메 소세키가 '숲의 수도'라고 말했을 정도로 구마모토에는 커다란 나무가 많습니다. 이곳 에즈코 공원도 마찬가지예요.
솔직히 관광객이 굳이 찾아야 하는 공원인가? 하면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구마모토에서 생활하는 분들이라면 휴일 오후를 보내기 위한 곳으로 아주 좋은 공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걷다 보니 보트 선착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오리배 같은 걸 탈 수 있는 곳인가 보다 했는데, 물론 오리배를 탈 수도 있지만... 위의 사진과 같은 배가 있더라구요! 혹시 저거 배 타고 그 위에서 연회를 하는 그런 배 아닌가요? 저런 거 할 수 있는 건가!!!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정말로 배 위에서 연회를 할 수 있더라고요! 물론 배만 빌릴 수도 있고요. 저의 로망 중 하나입니다. 배 위에서 술 마시는 것.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가 아래쪽 호수로 넘어갑니다. 분위기가 살짝 달라지네요. 위쪽 호수는 뭐랄까, 피크닉 같은 걸 하기에 적절해 보이는 곳이었다면 아래쪽 호수는 러닝이나 산책을 하기에 더 적절해 보입니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하는 분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약간 쌀쌀한 날씨에 조금 추워하면서 걷다 보니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래서 보조 배터리를 꺼내서 충전... 하려 했는데, 보조 배터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네요? 이런 실수를...
이상하게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평소보다 배터리가 빨리 닳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보조 배터리를 항상 챙기는데, 오늘은 그걸 까먹고 나왔네요. 뭔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즈코 호수는 스이젠지에서 솟아난 물로 만들어진 호수라는 전설(?)이 있는데, 실제로 그곳에서 내려온 물도 있지만 에즈코 호수 곳곳에도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의 하나. 구마모토 동물원 남문 앞에서 솟아나는 물입니다.
그러고 보니 구마모토는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도시라고 하더군요. 상수도가 모두 지하수라서 수돗물을 틀면 미네랄워터가 콸콸 흘러나온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숙소에서 수돗물을 그냥 막 마시고 그랬습니다.
아래쪽 호숫가에는 구마모토 동식물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요. 어차피 동물원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입장할 생각은 없었지만, 마침 오늘이 휴원일이더라고요. 화요일인데 왜 쉬지? 하고 살펴보니까 원래는 월요일이 휴원일인데 월요일이었던 어제가 성년의 날이라 쉬지 않고 대신 오늘 쉬는 것 같았습니다.
일본의 1월은 이래저래 휴일이 많고, 그 휴일 때문에 식당을 비롯해 모든 곳들의 영업일이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미리미리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새해 연휴를 피해 가고시마에 일부러 1월 6-9일에 갔는데, 제가 가려던 바 세 곳 모두 새해 연휴에는 영업하고 오히려 그때가 휴일이었어요.
동물원 구역에서 더 내려가면 히로기(広木) 구역이 나오는 모양인데요.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전차역과 너무 멀어지기도 하고요, 오늘 얇게 입고 나와서 좀 으슬으슬하기도 하고요,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게 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동물원 즈음에서 전차역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니, 동물원 입구 앞에 쵸파 동상이 있더군요. 원피스의 작가인 오다 에이치로가 구마모토 출신이라 구마모토 곳곳에 원피스 출연 캐릭터의 동상이 있더라고요. 일단 제가 직접 본 것은 바로 이 쵸파 동상. 그리고 구마모토 현청 앞에 몽키 D. 루피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두 개 밖에 몰랐는데, 며칠 뒤에 미즈미에 다녀오다가 기차 안에서 바닷가에 있는 징베 동상을 살짝 봤습니다. 그럼 혹시 더 있을지도??
동물원에서 전차역으로 가는 길에도 또! 큰 나무가!
동식물원입구 역에서 전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갑니다. 일단 집으로 가서 핸드폰을 충전하고 나서 다시 시내로 나와 저녁을 먹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지도를 잘 보다 보니 전차를 타면 사쿠라마치 앞까지 바로 갈 수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사쿠라마치 길 건너편 뒷골목에 있는 카츠레츠테이(勝烈亭)까지도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얘기네요. 마침 시간이 저녁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니 대기도 없이 먹을 수 있겠죠?
그래서 다시 한번 찾았습니다. 카츠레츠테이! 예상대로 대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찾았을 때는 휴일이라 사진만 찍고 돌아섰거든요. 구글 리뷰에 보면 미슐랭 어쩌고 하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분명히 구마모토에서 가장 유명한 돈카츠 가게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입장해서 자리를 안내받으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각종 소스들입니다. 노란 레이블의 소스부터 다이콘 오로시에 뿌리는 폰즈, 샐러드에 뿌리는 유자 드레싱, 역시 샐러드에 뿌리는 프렌치드레싱, 서양풍 돈까스 소스, 갈아둔 참깨와 섞어 먹는 일본풍 돈까스 소스입니다.
주문하고 나서 잠깐 기다리면 먼저 나오는 것들입니다. 짜지 않고 신선해서 먹기 좋았던 쯔께모노, 돈까스 위에 올려 먹으면 느끼함을 잡아주는 다이콘 오로시(무 간 것), 참깨를 갈아두는 종지, 참깨, 참깨를 갈기 위한 방망이 그리고 그 위에 덜어서 먹을 수 있는 갓절임입니다.
구마모토는 갓절임이 유명합니다. 아소산에서 자란 것들을 쓴다고 해요. 갓절임과 밥을 섞어서 볶아 먹는 타카나메시라는 구마모토 음식이 있다고 합니다.
드디어 제가 주문한 특선 히레 카츠, 로스 카츠 모리아와세가 나왔습니다. 등심/안심 함께 나오는 메뉴예요. 그리고 밥과 아카지루, 그러니까 붉은 된장을 사용한 된장국이 나왔습니다.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아주 높은 곳이었어요. 돈까스야 말할 것도 없고, 샐러드, 밥과 국, 쯔께모노 등등 나무랄 것이 별로 없는 곳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고시마에서 먹었던 쥬안(寿庵)의 고기가 더 좋긴 했습니다만, 가고시마와 구마모토를 비교하는 건 좀.... 어쨌든 카츠레츠테이의 고기도 괜찮았습니다. 약간 아쉬운 이 느낌은 '초특선'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한번 초특선 - 가장 비싼 메뉴를 먹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피는 셀프입니다만, 그게 어딥니까. 천천히 커피를 마시면서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그것 또한 좋았습니다. 아주 좋은 가게였어요!!
나오면서 계산을 하다가 보니까 미슐랭에 올랐다는 상패(?) 같은 것이 있더군요. 구마모토 같이 작은 도시에도 미슐랭 가이드가 있나? 하고 좀 의아했는데, 2018년 구마모토/오이타 특별판에 소개됐었다고 합니다. 아하!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네요.
그 옆에는 2016년 타베로그에서 구마모토 레스토랑 1위를 했다는 상패도 있네요. 어쨌든 유명한 가게인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유명한 가게는 그만큼 손님이 많겠죠? 오늘은 오후 4시 즈음 찾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지만, 오후 5시만 넘어도 가게 밖까지 줄을 서 있는 손님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의 80%는 중국인이고 20%는 한국인이죠. 일본인들은 알아서 손님 없는 시간에만 찾아오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이 가게의 유일한 단점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요.
자, 오늘은 밥 먹고 집에 들어가서 푹~ 쉬었습니다. 하루종일 으슬으슬했으니 제대로 몸을 데우고 푹 쉬지 않으면 탈이 날지도 모릅니다. 외지에서 괜히 아프면 그건 너무 큰 고생이니까요. 조금만 몸이 이상하면, 만사 제쳐두고 푹!! 쉬면서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