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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26. 오늘 밤은 코스 요리로 시작

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by zzoos



어제 몸이 으슬으슬하길래 온풍기 최대로 틀어놓고 이불 꼭 덮고 잤습니다. 땀을 쫙~ 빼면서 푹 자고 일어나니까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어요. 하지만 계속되는 설사는 그리 나아지지 않습니다. 장이 불편해서 스시를 못 먹고 있어요. ㅠㅜ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늘은 텐동이 먹고 싶었어요. 그래서 구글맵으로 식당을 찾아보다가 집 가까운 곳에 야마모토야(山本屋) 식당이 있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몇 년 전 구마모토에 혼자 왔을 때 (이번에도 혼자 왔지만;;) 쌀쌀한 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던 그 식당이네요.


그때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 정도면 혜자 식당이네요. 텐동이 1030엔, 당시에 먹었던 덴푸라 정식은 1300엔이에요. 국을 미소시루로 바꾸면 50엔 추가, 돈지루로 바꾸면 150엔 추가입니다. 몸이 안 좋을 때 여기 와서 기본 정식(930엔)에 돈지루(150엔)를 먹으면 가성비 좋게 든든할 것 같네요.





집에서 나설 때는 점심만 먹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막상 점심을 먹고 나니 배도 든든해졌겠다 오늘은 쇼핑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려고 하는 것은 제 가방입니다. 그냥 평범한 에코백을 사고 싶은 건데, 이상하게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없어요. 한국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여러 개를 사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가방은 오래전에 시모키타자와의 구제샵에서 산 것이거든요. 구마모토에도 구제샵이 많다고 하니 비슷한 가방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조카가 가챠를 몇 개 뽑아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무거나 뽑으면 되는 건 아니고 '피크민' 가챠를 뽑아 달라고 하더군요.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상점가에 있는 구제샵을 몇 군데 돌고, 사쿠라마치와 코코사를 돌면서 이런저런 브랜드까지 싹 찾아봤는데, 역시나 제 마음에 드는 가방은 없더군요. 허허, 별로 특별한 것을 찾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아, 그리고 가챠 머신은 사쿠라마치와 코코사에 아주 큰 규모로 모아둔 곳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피크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킨류도(金龍堂)라는 서점 앞에서 드디어 피크민 가챠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뽑았는데, 뭔가 투명한 파란색 통 안에 슬쩍 보이는 것은 뭔가 자동차 타이어 같은 모양입니다. 아무리 봐도 피크민처럼 생기지 않았단 말이죠. 그래서 가챠에 뭔가 일본어로 잔뜩 쓰여있는 것을 번역해 봤더니... '이 기계에는 꽝! 이 있습니다. 당첨! 이면 피크민이 나오고 꽝! 이면 다른 상품이 나옵니다.' 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결국 3개를 뽑았고, 3개 모두 꽝이었습니다...... 네, 피크민은 뽑지 못했어요.





자, 오늘 저녁은 예약해 둔 식당이 있습니다. 슌아지 코사카(旬味こさか)라는 식당이에요. 가고시마에 가기 전 바에서 인사하고 명함을 받았던 셰프의 가게입니다. 특별한 얘기를 나누진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다다음주에 꼭! 방문하겠습니다. 인스타 DM을 드리면 되겠죠?'라면서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에 안 갈 순 없었습니다.


인스타와 타베로그로 살펴보니 정갈한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곳인 것 같습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요. 세금 포함 11,000엔짜리 코스도 있더군요. 엊그제 인스타 DM을 보내서 오늘 저녁 1인 코스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먼저 주문하고서 오늘의 코스를 살펴봅니다. 물론 알아볼 수 없습니다만,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해석을 좀 해봤습니다. 손으로 흘려 쓴 한자인데다가 가이세키 요리에서 쓰는 단어들과 요리 재료에 대한 말들이라 해석하는 데에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네요. 휴~



:: 에피타이저(先付)

전복(鮑) 간 소스(肝ソース) 차조기 꽃(穂紫蘇)
고등어(鯖) 이소베마키(磯辺卷) / 매육(梅肉) 토사초(土佐酢)


자리에 앉자마자 나온 것은 전복을 삶아서 전복 간 소스와 함께 내준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보라색 차조기 꽃을 뿌려두었네요. 전복이 꽤나 큼직한 것이었는지 그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동시에 느껴져서 좋았어요. 물론 전복 간으로 만든 소스도 쌉쌀하면서 좋았고요.


다음으로 화려한 접시에 나온 이소베마키. 당시엔 몰랐는데 해석하고 보니 고등어였군요. 이소베마키란 생선이랑 야채를 김밥처럼 말아서 자른 요리입니다. 아마 찍어 먹으라고 옆에 나온 소스가 매실 말린 것과 토사 식초를 섞은 된장인가 봅니다.


화이트 와인 다음으로 나베시마 준마이긴조 아이잔을 함께 먹었는데, 사진에는 없네요. 서빙해 준 알바생이 초보인 티가 좀 났습니다. 니혼슈 병의 뚜껑을 열지 않고 따르려고 해서 제가 알려줬어요. ㅎㅎ




:: 생선회(造り)
자연산 광어(天然平目) / 오오마산 참치(大間鮪) / 북방조개(北寄貝)


생선회는 3종. 광어, 참치, 조개였는데요. 광어는 엔가와까지 함께 나왔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먹는 광어는 대부분의 경우 만족하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싼 가격에 얼마든지 좋은 광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참치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참치 산지인 오오마산이었군요. 기름이 한껏 올라서 오도로인 줄 알았습니다.


북방조개는 좀 실망이었어요. 신선하지 않은 느낌이었달까. 여튼 이날 먹은 것 중 가장 별로였습니다.


세 번째 잔으로는 지콘의 토크베츠 준마이 나마슈를 마셨습니다. 여기 니혼슈를 꽤 잘 갖추고 있더라고요. 종류가 많지는 않은데, 가격이 800엔이었나? 모두 통일이었습니다.



:: 조림(煮物)
삼치(鰆) / 이리(白子) / 삶은 새우머리(海老子首煮) / 유자껍질채(針柚子)

:: 구이(焼物)
겨울방어(寒鰤) 미소유안야끼(味噌柚庵焼) / 닭고기 마츠카제야키(鶏松風) / 매콤한 오이(ピリ辛胡瓜)


조림도 생선이고 구이도 생선입니다. 확실히 생선을 주로 사용하는 가게네요.


삼치나 이리도 괜찮았지만 그 아래에 있던 결결이 갈라지는 회색 살이 엄청 맛있었거든요? 메뉴 해석해 보니 그게 새우였나 봅니다. 그리고 방어구이도 좋았어요. 방어구이 옆에 있던 노란 요리가 계란찜인 줄 알고 뭔가 잘못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메뉴를 천천히 보니 닭고기 마츠카제야키라고 하는 요리법이었던 거군요. 몰랐습니다.



:: 삶은 요리(強肴) ← ?? 메뉴는 고기구이인데...
아카규 안심스테이크(赤牛ヒレテーキ) / 소금 토마토(塩トマト) / 연근칩(蓮根チップス) / 유즈코쇼(柚孑胡椒)

:: 질그릇 냄비(土鍋)
방어(鰤) 조림(時雨煮) / 애호박(ズッキーニ) / 생강채(針生姜)


이제 고기 요리가 나오네요. 구마모토에서 유명하다는 아카규 안심입니다. 아주 잘 구웠고, 부드럽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유즈코쇼까지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다지 느끼하지 않았거든요. 몇 점 되지도 않았고요.


다음으로는 밥이 나올 모양입니다. 두툼한 뚝배기 같은 것을 가지고 오셔서 이렇게 밥을 할 거라고 보여주십니다. 졸여진 방어와 애호박 그리고 생강이 보이네요.


이때 즈음 레드 와인을 글라스로 주문했는데요. 아뿔싸. 온도가 너무 낮아서 와인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피노누아 같아 보였는데, 좀 아쉬웠어요.



:: 국물 요리(止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한자 ㅠㅜ 생선 이름과 요리 방식인 거 같은데... / 죽순(筍) / 인겐마메 콩깍지(平隐元) / 타치바나 초절임(酢橘)

:: 디저트(水菓子)
검은콩 아이스크림(黒豆アイス) / 딸기 소스(苺ソース) 다음을 모르겠네요.....



꽤 힘을 준 밥이 나오길래 국은 그냥 좋은 미소를 쓴 미소시루가 나올 줄 알았는데, 제대로 만든 스이모노가 나오더라고요. 생선으로 만든 어묵? 볼?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메뉴에도 도저히 한문을 알아볼 수 없어서... 결국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네요. 함께 들어 있던 죽순의 퀄리티도 좋았고요.


밥도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헌데 제가 혼자서 예약을 했잖아요. 밥은 1인분만 지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사진에 보이는 양의 4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래서 저보고 밥을 더 먹으라고 하길래, 배가 꽉 찼다고 하니까 남은 밥은 주먹밥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한 명은 코스로 예약을 안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밥, 마지막의 밥을 1인분만 만들 수 없으니까요...


밥을 다 먹고 디저트가 나왔습니다. 고소한 검은콩 아이스크림 위에 달달하고 걸쭉한 딸기잼 같은 소스를 올렸습니다. 이게 뭔가 묘하게 부조화스러워서 재밌기도 했지만, 음... 전 별로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리이조를 한 잔 마셨습니다. 이 가게에선 모리이조가 1,200엔이더라고요.


오늘 먹은 코스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가성비가 좋은 가게입니다. 아쉬운 점은 음식 사진을 찍기에 조명 위치가 나쁩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머리 뒤쪽에 조명이 있어서 카메라와 손이 음식에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가게를 오픈하신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뭔가 정돈되지 않고 경험이 미숙한 느낌이 가끔 느껴집니다. 뭐, 그리 큰 단점은 아니죠.


만약 다음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코스보다는 단품 요리들을 주문하는 것이 나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아무래도 위치가 어른들의 골목에 있다 보니 주변의 클럽 언니들과 동반 출근하는 아저씨들도 찾는 곳인 것 같습니다. 이건 그냥 느낌입니다. 느낌. ㅎㅎ





오랜만의 저녁 외출입니다. 한 일주일쯤 됐나.... 여튼 오랜만의 외출이니 오늘은 좀 달려볼까 싶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2차는 와인. 아라보(a la veau)라는 마스터 혼자 운영하는 작은 와인바입니다. 4인용 테이블이 하나 있고 카운터 석에는 네 명이 앉을 수 있습니다. 정말 작은 곳이죠.


첫 잔은 스파클링 와인을 한 잔 마시고요, 두 번째 잔은 화이트를 주문했습니다. 그랬더니 화이트 와인 세 병을 가져오셔서 샷 잔에 와인을 따라 주시더라고요? 맛을 보고 고르라는 거였습니다. 재미난 시스템이에요. 맨 오른쪽의 독일 와인으로 골랐습니다. 산미와 당도가 함께 느껴지는 밸런스가 좋았어요.





다음으로 레드를 한 잔 부탁 드렸습니다. 이 중에선 맨 왼쪽의 와인이 괜찮더라고요. 미국의 와인이고 까쇼와 메를로의 블렌딩이라고 합니다.


스파클링은 한 종류로 정해져 있어서 선택의 재미가 없긴 하지만 600엔이라는 가격의 메리트가 있고요. 화이트도 600엔, 레드는 700엔으로 세 종류의 와인을 모두 마셔보고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재밌습니다.


안주의 가격들도 저렴하고, 마스터의 인상도 좋고요. 이 가게,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아, 물론 와인의 퀄리티는 아주 높진 않습니다만, 2차 3차로 들러서 가볍게 몇 잔 마시기에 딱 좋습니다.





자, 이제 3차를 갑니다. 구마모토에 도착한 다음 날 친구와 함께 들렀던 바, Rumbullion 입니다. 분명히 두 번째 방문인데, 어라?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나요? 자그마치 건물의 8층에 있는 바였군요.





첫 잔으로 달달한 칵테일을 부탁드렸더니 네덜란드의 리큐르를 이용한 칵테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달달한 밀크셰이크 같은 칵테일이었어요. 하얀색이라서 우유 같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맛이 우유 같은 맛입니다.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칵테일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리큐르라고 하네요. 처음 먹어 본, 재밌는 리큐르입니다.





다음 잔은 올드 그랜 대드 114를 니트로 마셨습니다. 구마모토에서 인기가 있다는 버번인 올드 그랜 대드의 라인업 중 도수가 높은 버전입니다.


바에 들어올 때 손님들이 한쪽 구석에 모여서 웅성웅성하고 있길래 '혹시 구석에서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나?'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마스터에게 물어보니 모여서 홀덤을 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게를 둘러보니 각종 보드 게임들도 있고 트럼프도 보이네요. 단골들은 여기 모여서 노미호다이 하면서 이런 게임들을 플레이하곤 하나 봅니다.





3차까지 마셨으니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딱 한 군데만 더 가보기로 합니다. 지난번에 가보려다가 휴일이라서 못 갔던 곳이에요. 쇼츄바 iki입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게는 열려 있었고, 저 말고 다른 손님도 계셨습니다. 백바를 보니 사토, 만젠안, 무라오 등 유명한 쇼츄들도 보이네요. 사진은 없지만 오토시는 호르몬이었습니다.





첫 잔은 구마모토의 쌀 쇼츄로 마스터에게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구마모토는 역시 쌀 쇼츄가 유명합니다. 하쿠타케나 시로 같은 쌀 쇼츄가 모두 구마모토의 쇼츄죠.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미 취해버려 가지고 사진의 저 쇼츄, 레세나의 맛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사진을 보니 소다와리로 마셨나 보군요.


다음 잔은 가고시마에서 제대로 마시지 못한 무라오를 다시 마셔봅니다. 이미 취한 상태인데도, 향과 맛의 레이어가 느껴집니다. 모리이조가 훨씬 더 복잡도가 높았습니다만 무라오도 충분히 재밌을 만큼 복잡도가 있네요. 다시 한번 3M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이 정도 마셨으니, 이제 집에 들어가야죠. 라멘으로 해장도 못하고, 택시 타고 귀가했습니다. 번화가에서 집까지 택시비는 1,000엔 정도 나오네요. 아, 물론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집에 사다 둔 밥과 카레, 반찬들로 끼니를 때우면서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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