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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28. 구마모토 현립 미술관 산책

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by zzoos



어제, 구마모토 형님들(미조마타 상, 츠노다 상)과 마시느라 피곤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컨디션이 괜찮습니다. 물론 좀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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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청소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해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맛있는 라멘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래서 대기를 하더라도 아카구미(ラーメン赤組)에서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이곳 아카구미는 구마모토 라멘을 표방하고 있기는 한데 꽤나 하카타 라멘이나 나가하마 라멘과 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맛도 비슷합니다. 진한 돈코츠 베이스에 얇은 면(호소멘 細麺)을 사용하거든요.


비슷하게 구마모토 라멘이라고 말하는 집들 중에 얇은 면을 쓰지 않는 곳들도 있고 돈코츠 베이스가 아니거나 너무 연한 경우도 있어서, 결국 제가 정착한 집은 아카구미입니다. 구마모토의 라멘집들 중에서 가장 제 취향의 라멘집이에요.


기본 구마모토 라멘이 600엔, 아지타마(味玉) 라멘이 720엔, 올 토핑 라멘이 900엔입니다. 저는 항상 아지타마 라멘, 그러니까 기본 라멘에 반숙 계란만 올라간 라멘을 주문합니다. 멘마(麺麻)가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요.


언젠가 밤에 찾아와서 라멘과 교자를 주문하고 쇼츄를 한 잔 같이 하고 싶습니다. 저 국물에 쇼츄 한 잔~ 크





점심 겸 해장으로 라멘 한 그릇을 야무지게 해치우고, 산책을 갑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구마모토 현립 미술관. 구마모토 성 옆에 있는 KKR 호텔 앞에 있는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죠(그런 줄 알았습니다;;;).


참고로 KKR 호텔도 좋아하는 호텔 중의 하나입니다. 가고시마의 시로야마 호텔처럼 지방 도시에서 유지 역할을 하는, 브랜드 호텔이 아닌 호텔. KKR 호텔도 그런 곳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구마모토에 짧은 여행을 올 때에는 항상 KKR 호텔에서 묵습니다. 조식을 먹으러 가면 구마모토 성의 천수각이 보이죠. 서비스에 비해서 저렴한 호텔입니다. 시내 번화가에 있는 고급 호텔보다 한적하고 조용한 위치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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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성 주변에는 어딜 가나 보이는 공사 현장입니다. 처음 봤을 땐 그냥 '공사하는구나~' 정도였는데, 자꾸 보니까 점점 디테일이 보여요. 분명히 성벽을 쌓고 있는 바위였을 저 암석들에 모두 넘버링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완벽하게 되돌려서 복원하기 위해서 아주 디테일하게 관리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 복원할 때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재 복원'은 '원래 모습과 완전히 똑같게' 만드는 것이 추세인가 봐요.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작업하니까, 구마모토 성의 완전 복원까지 20년이 넘게 남은 것이겠죠.





처음엔 여기가 구마모토 현립 미술관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거든요.





아, 그런데 여기는 분관이네요. 지도를 다시 보니 본관은 이쪽이 아니라 구마모토 성 앞에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걷기로 합니다.





구마모토 성 앞으로 올라오면 니노마루 광장(二の丸広場)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동안 뭐 하러 다른 공원을 찾아다녔을까요? 그 어떤 공원보다도 이곳이 가장 구마모토스럽습니다. 넓은 광장과 커다란 나무들 그리고 한적한 분위기.


돌고 돌아 순정이라는 말이 있던가요. 구마모토는 결국 돌고 돌아 구마모토 성이구나 싶습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구마모토를 설명할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구마모토에는 구마모토 성 밖에 없다고. 관광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호텔이 저렴하다고. 솔직히 말해서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헌데, 그 '구마모토 성'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더란 말이죠. 성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 앞의 니노마루 광장과 현립 미술관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요.


앞으로 남은 일주일 동안 새로운 공원을 찾기보다는 이곳을 자주 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구마모초 성 앞의 니노마루 광장 맞은편에 구마모토 현립미술관이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아요.


연초라 그런가? 아직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기 전입니다. 오늘의 전시는 구마모토 어린이들의 그림 전시가 있고, 구마모토 현의 고고학 유적 몇 점 전시가 있습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상설전은 없었어요. 너무 아쉬웠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구마모토현립미술관 소장 작품 도록'을 살펴봤더니 램브란트. 고야. 피카소. 샤갈, 로트렉, ... 엄청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더군요. 특히 샤갈은 여러 점 가지고 있었어요. 역시 '현립' 미술관 즈음 되면 상설전을 보고 싶어 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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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전시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전시는 무료였어요. 그리고 미술관의 로비에는 몇 개의 조각상이 있더라고요. 혹시나 하고 찾아봤는데 역시나 로뎅의 조각이 있습니다. Le Baiser. 영어로는 the Kiss.






밖에서 봤을 땐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벽돌 건물일 뿐이었는데, 안에 들어오니 분위기가 훨씬 좋습니다.





구마모토의 어린이(1-4세)들이 유치원(?)에서 그린 엄청난 숫자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구경하러 온 엄마, 아빠,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아이들도 뛰어다니고요. 조금은 번잡한 느낌이었지만, 공공 미술관이라면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의 삶과 얽혀야 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지금은 상설전 조차도 없는 기간이니까요.





장식고분실. 이곳도 무료였습니다. 큰 관심이 없어서 그냥 패스할까 싶었는데, 온 김에 구경이나 하자는 느낌으로 들어갔어요.





구마모토 현에서 발굴한 5-6세기의 무덤들에서 출토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5-6세기면 삼국시대네요. 그동안 봐왔던 삼국시대의 유물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유물들이에요. 일단 분위기 자체가 다르고, 디테일의 수준도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뭔가 훨씬 더 고대의 것, 기원전 유물의 느낌이에요. 하지만 색상이나 디자인이 좀 귀엽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무래도 일본은 섬이었으니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대륙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나 디자인이 더 개성적이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미술관 산책을 마치고 평소와 다른 길을 통해 사쿠라마치 방향으로 내려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사쿠라마치에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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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마치 버스 터미널을 통해 쇼핑몰로 올라갔더니 어라? 라이브로 피아노 연주가 들려옵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의 특정 시간에 라이브 연주가 있군요! 가만히 서서 두 곡 정도를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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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저녁 반찬거리를 몇 개 사가지고 광장으로 나오니 뭔가 축구와 관련된 행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푸드 트럭 같은 것들도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해서 오렌지 쥬스를 하나 사서 벤치에 앉아 마셨습니다.


일요일 오후의 가족 나들이로 복작복작한 광장에 앉아 잠깐 그들의 일상에 묻어가는 느낌을 느끼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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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눈에 띈 호쿠라쿠 만쥬(蜂楽饅頭). 검은 앙금 4개, 흰 앙금 2개 해서 총 6개를 샀습니다. 오늘의 디저트는 이걸로 예약!





오늘도 하치만구(藤崎八旛宮) 앞을 지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 근데 오늘 저녁 햇살이 좀 예쁘게 떨어지네요? 오랜만에 안에 들어가 예쁘게 햇살을 받은 건물들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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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마치의 지하에 있는 도시락 가게 비라이(ヒライ)에서 3개 550엔에 산 반찬들과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쯔께모노와 양배추 그리고 햇반과 즉석국으로 저녁을 차려 먹었습니다. 이제 구마모토에서의 생활이 일주일 즈음 남았네요. 슬슬 쌓아두기보다는 먹어치우기 시작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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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먹고 나서 디저트는 호쿠라쿠 만쥬. 이거 의외로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됩니다. 위험한 음식이에요. 검은 앙금은 당연히 팥인 걸 알고 있었는데, 하얀 앙금은 머스타드일 줄 알았거든요? 근데 하얀 앙금도 팥이네요. 껍질을 벗긴 걸까요? 여튼 하얀 것도 맛있어요.


냉장고에 쌓이고 있는 것들을 이제 '먹어치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제 츠노다 상에게 받은 오카야마의 지비루(地ビール)를 먹어 치웠습니다. 캔에 도깨비들이 그려져 있더군요. 화이트 에일이라 시원하게 마실 수 있었어요.


어느새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여행, 다음 포스팅은 그동안의 평범한 일상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요? 아무래도 여행의 마지막 즈음에는 마지막 발악처럼 먹고 마시게 될 것 같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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