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후쿠오카 2박과 가고시마 3박이 섞여서 온전한 한 달은 아니지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거의 한 달 살기가 아닌가 싶은데요. 구마모토의 작은 아파트에서 - 일본에서 아파트는 저렴한 다세대 주택이고 우리의 고급 아파트 같은 것은 맨션이라고 부릅니다 - 한 달을 지내면서 매일매일을 3박 4일 여행 온 것처럼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매일 관광하거나 돌아다니기에는 일단 체력이 부족하고요. 매일매일 맛있는 것만 사 먹기에는 비용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슈퍼에서 사 온 간단한 음식들로 밥을 차려 먹는 날도 많이 있고, 아예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 날들도 있습니다. 이런 날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푹 쉬거나, 브런치나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 사진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포스팅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밥을 챙겨 먹기 위해서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야 하잖아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냥 장 본 얘기, 밥 차려 먹은 얘기라서 특별한 스토리는 없어요. 그냥 사진 쭉~ 나열하고 기억나는 얘기들을 풀어보죠.
일단 숙소 바로 앞이 코카이 상점가(子飼商店街)라서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길게 줄이 늘어서는 가라아게 도시락 전문점, 약국, 반찬가게, 이태리 식당, 베트남 식당, 의외로 한국인도 많이 찾아와서 리뷰를 남긴 라멘집, 정육점, 과일가게, 야채가게, 작은 이자카야 그리고 제가 가장 많이 방문한 커다란 슈퍼마켓인 마루쇼쿠(マルショク) 코카이점.
구마모토에 도착했던 12월 28일부터 새해 첫 주말인 1월 5일까지는 연말연시 휴가를 보내는 가게들이 많아서 상점가를 제대로 둘러볼 수 없었어요. 가고시마 여행을 다녀온 다음인 1월 9일부터 제대로 상점가를 둘러볼 수 있었죠. 그나마 다행인 건, 마루쇼쿠 슈퍼마켓은 1월 1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말연시에도 장보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찾았던 슈퍼마켓은 이와사키 에이스 나미자카점(イワサキエース 並木坂店)이었습니다. 마루쇼쿠보다 규모는 좀 작은 곳이었지만 더 싼 품목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손질된 과일을 다양하게 섞어서 소용량으로 포장한 것을 파는 점이 좋았습니다. 대략 350엔이면 혼자 먹기에 충분한 과일을 살 수 있었어요. 도시락의 품목도 좀 달라서 오늘은 뭐가 들어왔는지 확인하러 가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숙소에서 걷기엔 조금 멀지만 산책 삼아 가끔 다니던 사쿠라마치 쇼핑몰입니다.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이 엄청 커서 위의 두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이쪽에 와서 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하에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 있는데 특히 쯔께모노를 사다 먹었던 진미 고쥬안(珍味古じょう庵)이 있고요. 여기까지 온 김에 세일하는 도시락 없는지 한 번씩 들러보던 도시락 가게 비라이(ヒライ)도 이곳 지하에 있습니다.
사진은 안 찍어두었지만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것들을 샀는데요. 특히 몇몇 편의점의 OEM 제품들은 슈퍼마켓보다도 싼 것들이 있고요, 오뎅이나 니꾸만(우리나라로 치면 호빵) 같은 것들도 안주나 야식으로 많이 사다 먹었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먼저 들렀던 곳은 집 바로 앞의 마루쇼쿠 슈퍼였습니다만 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네요. 즉석밥이랑 세탁세제 그리고 물티슈를 샀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부터 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와사키 슈퍼에서 식빵과 소금, 계란 그리고 과일 모둠을 샀네요.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먹기 위해 버터가 필요했지만 이상하게도 슈퍼에 버터가 안 보여서 결국 편의점에 들러 버터를 사면서 얼음, 고메 쇼츄(쌀 소주), 탄산수를 함께 샀습니다. 집에서 소다와리 한 잔씩 만들어 마시려면 일단 술과 탄산수 그리고 얼음이 있어야 하니까요.
사쿠라마치 지하의 슈퍼에 가서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었던 저렴한 즉석 미소시루를 찾았습니다. 사는 김에 즉석 카레랑 드립백을 같이 샀어요. 아마 이 정도가 가장 먼저 준비해 둔 것들일 겁니다.
슈퍼에서 사 온 도시락과 편의점에서 사 온 라멘을 같이 먹거나, 동네 신사 앞의 새해맞이 야타이에서 오코노미야키를 사다가 한 잔 한다거나, 역시나 야타이에서 야끼 우동을 사다가 점심을 먹는 등, 연말에는 직접 차려 먹기보다는 나가서 먹거나 테이크 아웃한 음식을 집에서 먹곤 했네요.
아무래도 집에서 뭔가 차려먹으려면 밑반찬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쿠라마치 지하의 진미 고쥬안(珍味古じょう庵)에 가서 쯔께모노랑 죽순 절임이랑 타카나메시(잘게 썬 갓을 절인 것, 밥과 함께 볶아 먹는 용도)를 사다가 반찬통에 담고,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참고로 반찬통은 집에서부터 공수해 간 것이에요. ㅎㅎ
쯔께모노를 사면서 옆에 있는 도시락 가게 비라이(ヒライ)에 들러서 도시락도 하나 샀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우유와 쥬스도 사고요.
그렇게 처음으로 밥을 차려 먹습니다. 즉석 미소시루도 만들고요. 밥은 도시락에 들어 있던 것을 데우기만 했네요. 그리고 어떤 날의 아침은 드디어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봅니다. 계란과 우유를 섞고 식빵을 푹 적신 다음 버터를 바른 팬에 굽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아침입니다.
프렌치토스트도 요리라고;;; 주방에서 이거 저거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키친타월이 필요해서 사다 둡니다. 1~2개의 소포장으로는 팔지 않더라고요. 4개 들이를 사다가 걸레가 필요할 때에도 이걸로 썼는데, 결국 2롤은 남겨두고 왔습니다.
저렴한 요구르트를 냉장고에 채워서 유산균을 보충해 장 건강도 좀 챙겨보고요. 식수도 계속 보충합니다. 보리차를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귀찮아서... 그냥 보리차를 사다가 먹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음에 드는 식사의 스타일을 찾았습니다. 아마 여행 중 가장 많이 먹은 밥일 텐데요. 가라아게를 사다가 카레와 같이 먹는 거예요. 일종의 치킨 카레네요. 거기에 즉석 미소시루랑 냉장고에 채워둔 쯔께모노가 있으면 한 끼 뚝딱입니다. 기왕이면 샐러드 같은 것이 하나 있으면 좋고요.
재미없는 사진만 잔뜩 나오니까, 중간에 제가 묵었던 아파트의 사진을 하나 올려봅니다. 동네 뒷골목의 작은 아파트 3층이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500엔짜리 와인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한 병 마셔봤죠. 가성비가 좋은 와인이었어요. 헌데, 그거 마셔보다가 필 받아서 쇼츄 꺼내서 소다와리 마시고 안주로는 샐러드랑 쯔께모노 꺼내고... 결국 야밤에 번화가로 기어 나가서 더 마시다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밤에는 편의점 오뎅을 사다가 한잔 하기도 했죠. 편의점 오뎅이 정말 저렴하고 퀄이 좋은데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편의점은 오뎅들이 금방 품절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뎅을 살 때에는 뒷골목의 사람 없는 편의점으로 다녀오곤 했어요.
그렇게 술을 마신 다음 날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남은 오뎅을 국 대용으로 해서 한 상을 차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마루쇼쿠(マルショク)까지 기어 나가서 야채 고로케랑 기본 반찬 세트를 사 온 것 같네요.
가고시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 앞에서 깜짝 놀랄만한 것을 봐버렸습니다. 분명히 공사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음은 못 들었거든요? 그게 당연했던 것이, 그동안은 연말연시라서 공사 자체를 쉬고 있었던 겁니다. 1월 9일 날 가고시마에서 돌아왔으니까, 이제는 공사를 다시 진행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쉬려고 하면 공사 소음과 함께 쉬어야 했습니다. 뭐, 제가 예민하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불편함은 없었어요.
1월 둘째 주부터는 좀 더 '생활'스러워졌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서 '타는 쓰레기'용 봉투도 구매했어요.
즉석밥도 리필하고, 집에서 한잔 하는 횟수가 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예 위스키도 저렴한 걸로 하나 채워둡니다. 맥주와 안주도요.
그리고 야식으로 먹을 가벼운 과자나 빵 같은 것들도 필요하더라고요.
점심으로 피자가 먹고 싶어서 우버이츠로 피자를 배달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배달비가 너무 비싸서 그냥 집 앞에 있는 피자 가게까지 걸어가서 포장해 왔습니다. 특이하게 피자 가게에서 오코노미야키를 함께 팔더라고요? 아쉽게도 사 먹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커피는 KEY COFFEE의 드립백으로 해결했습니다. 일본에서 꽤 오래되고 유명한 체인입니다만, 젊은 감각의 세련된 체인이라기보다는 전국에 퍼져 있는 좀 아재스러운 브랜드이긴 합니다.
딱 여행의 절반 정도가 지났을 때 냉장고의 상태입니다. 쯔께모노와 달걀이 보이고, 장건강을 책임져주고 있는 요구르트도 있네요. 쇼츄와 위스키가 맨 아래에 누워 있고요. 그 옆의 우롱차는 쇼츄에 타 먹는 용도입니다. 마시는 물은 우유와 쥬스 옆에 있는 보리차예요. 그래도 유산균도 챙기고, 과일도 챙겨 먹고 있네요.
맨날 즉석 미소시루만 먹으면 지겨워져서 어떤 날은 편의점에서 돈지루를 사다가 먹기도 합니다. 가라아게 대신 함박 스테이크를 사다 먹은 적도 있군요.
그냥 괜히 집 앞 골목 사진 한 장. 아마 노을이 예쁘게 지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았지만...
쯔께모노만으로는 야채를 먹는 느낌을 느낄 수가 없어서 슈퍼를 뒤지다 보니 양배추를 채 썰어서 팔더라고요? 드레싱도 1회용으로 40엔? 50엔? 정도에 팔길래 사다가 먹어보니 의외로 양배추는 오래 보관이 됩니다. 반찬으로 먹기 딱 좋았어요. 항상 느끼는 건데, 일본의 양배추는 한국의 그것과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
전날 슌아지 코사카(旬味こさか)에서 다 못 먹은 밥을 오니기리로 만들어 주셨거든요. 그걸 그릇에 담고 전자렌지로 데워서 카레와 함께 먹어치웠습니다.
양배추는 남았는데 드레싱은 다 먹어버려서 드레싱을 추가로 구매하고, 카레와 즉석밥도 보충했어요. 세븐일레븐의 오렌지 쥬스가 질려서 이번엔 슈퍼마켓에서 자몽 쥬스를 샀고요.
사쿠라 마치 지하의 도시락 가게에서 3개 550엔으로 할인하는 품목을 발견했습니다. 오크라 샐러드와 계란말이 그리고 감자 샐러드. 계란말이와 감자 샐러드는 저녁으로 바로 먹어치웠네요.
뭔가 식탁이 점점 단출해집니다. 쯔께모노를 다 먹었어요. 한 봉지 더 사기엔 이제 여행이 끝나가고 있어요. 가볍게 먹기로 합니다. 밥에 카레 그리고 즉석 미소시루에 남아 있던 양배추 샐러드네요.
아, 편의점에서 산 저 푸딩은 정말 저렴해요. 그래서 여러 번 사다가 먹었습니다. 종이로 포장된 것은 니꾸만 그러니까 호빵입니다.
슬슬 여행의 끝이 보이니까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들을 해치우고 있습니다. 오크라 샐러드는 안주로, 남은 감자 샐러드도 꺼내서 츠노다 상에게 선물 받은 오카야마(岡山)의 지자케(地酒)를 마십니다. 그러다가 필 받아서 남아 있던 생햄도 꺼내고 고기 호빵이랑 피자 호빵까지 추가했군요. 이후에는 장을 보기보다는 집에 남아 있는 것들을 먹고 마셨습니다.
이 정도가 한 달간 구마모토에서 지내면서 장을 보고, 집에서 밥을 차려 먹거나 술을 마신 흔적들이네요. 다른 분들의 여행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추억을 정리해 둔다는 생각으로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