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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35. 메이지 시대의 항구 - 미스미 서항

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by zzoos



작은 버스라서 시스템이 다를 것 같지만, '整理券'이라고 쓰여 있는 박스가 달려 있다면 타면서 일단 뽑아야 한다.



미스미 항구에서 우미노 피라미드를 보고 나니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판단, 미스미 산코(三角産交) 정류장 아니 정류장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버스 터미널처럼 생긴 건물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배차 시간이 좀 긴 편이라서 미리 시간을 체크해 두고 남는 시간 동안 우미노 피라미드를 돌아보면 대충 맞지 않을까 싶어요.


손님이 아무도 없는 버스에 탑승해서 앉아 있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저에게 소리를 칩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려서 앞으로 다가갔더니 세리켄(整理券) 뽑으라는 말이었네요. 이건 참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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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 니시코에서는 근대의 서양식 양복 코스튬을 입은 쿠마몬을 볼 수 있다.



목적지는 미스미 니시코 마에(三角西港前). 버스를 타고 1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가는 길 내내 한적한 시골 마을의 모습을 보이다가 미스미 니시코 구역에 들어서면 살짝 관광지의 느낌이 납니다. 뭐 그리 넓은 구역은 아니지만요.



미스미 서항의 중심. 우라시마야. 입장료는 없다



우라시마야(浦島屋). 메이지 시대에는 호텔로 쓰였다는 건물입니다. 지금은 미스미 서항의 안내소? 박물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1층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 철강, 조선 및 탄광'에 대한 안내가 전시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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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근대 코스튬의 쿠마몬 (우) 2층 홀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일본은 여기에 뭔가 등재시키는 것에 대해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심인데요. 그동안 여행하면서 봐왔던 세계유산 중에서도 이건 좀 특이합니다. 이건 그 범위가 아주 넓어요. 메이지 유신 때의 철강/조선/탄광에 대한 유적들을 싸그리 다 집어넣은 광범위한 유산입니다.



우라시마야 2층 테라스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 들렀었던 가고시마(鹿児島)의 센간엔(仙巌園)도 여기에 포함되고요, 오늘 방문한 바로 이곳 미스미 서항도 포함됩니다. 나가사키(長崎)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그루바엔(グラバー園)도 포함될 뿐만 아니라 자그마치 8개 현에 걸쳐 다양한 지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참고로 일본은 2도 2부 43현). 일본에서 좀 옛날 건물이 보인다 싶으면 여기에 포함된다고 봐도 될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입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바닷가. 느낌이 좋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우라시마야에서 나와 바닷가 쪽으로 걸어갑니다. 아주 한적한 곳이에요. 유럽식 건물이 모여있는 잘 정돈된 공원과 그 앞에 펼쳐진 한적하고 깨끗한 바다. 이것이 미스미 서항의 느낌입니다. 바다가 보고 싶어서 기차를 타고 왔잖아요? 그 욕구,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충분히 채워주는 곳입니다. 바이크나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다가 중간에 차를 세워두고 쉬었다 가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구 타카다 회조점(旧高田回漕店). 일종의 운송 대행회사 같은 곳.



류조칸(龍驤館)은 현재 공사 중이라서 구경하지 못했고, 항구 곳곳의 건물들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합니다. 아쉽게도 건물들을 찍은 사진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구 타카타 운송 대행사 정도만 보여드릴 수 있네요.



마음에 쏙 들었던 바다의 분위기. 사진을 계속 찍었다.



저는 오늘 메이지 시대의 건물을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 '바다'를 보러 왔거든요. 커다란 나무 아래의 벤치에서 바다를 보면서 이 한적한 느낌을 만끽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수로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관광 지도'에 표시된 주요 포인트들은 다 구경하고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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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미스미 간이 재판소(旧三角簡易裁判所)



미스미 서항에서 건물들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깔끔하게 정비는 해두었지만 아직도 손 볼 곳이 많다는 점이었는데요. 구 타카다 운송대행사나 구 미스미 간이 재판소 같은 경우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 지저분해진 공간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료입장인 것 같아서 다행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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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 전망대. 전망... 대라며?



간이 재판소를 뒤로 하고 산길로 접어들어 5분?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옵니다. '전망대'라고 해서 기대했습니다. 미스미 서항이 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예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무슨 전망이야!



하지만 전망대에서 보이는 뷰는 이 정도입니다. 나무를 정리하면 조금 더 보이기야 하겠지만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는 없어요.





그나마 아래에 내려오면 이런 뷰를 볼 수는 있지만 이건 미스미 서항의 경치는 아니고, 그 근처 마을의 경치예요.



구 우토군청(旧宇土郡役所). 현재는 큐슈 해기학원(九州海技学院)의 건물로 사용중이다.



구 우토군청 건물을 마지막으로 미스미 서항의 주요 포인트 돌아보기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 넓은 구역은 아니에요.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소개하지 못한 건물들도 있습니다. 현재는 기념품 상점으로 쓰이고 있는 뮐더 하우스(ムルドルハウス)라던가 바닷가에 길쭉하게 자리 잡은 아마테라스 커피(アマテラス珈琲) 같은 곳이요.



다시 커다란 나무 아래의 벤치로 돌아와 바닷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항구가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대로 석양이 질 때까지 앉아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할 정도였어요. 너무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일랜드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소설가인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가 이곳을 좋아했다고 하네요. 교통이 불편한 편이고, 볼 것이 별로 없는 곳이라 다른 분들에게 추천할만한 여행지라고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만, 언젠가 아마쿠사(天草)를 여행할 때 다시 한번 들르고 싶은 곳임에는 분명합니다.


아, 아마쿠사는 꼭 한 번 여행을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구마모토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강추하는 곳이었어요.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다면서요. 제가 큐슈 일주를 한 적이 있다고 하니까 아마쿠사는 왜 안 갔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차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서 생각을 못했다고 했죠. 실제로 그랬고요. 다음번, 언젠가는 구마모토에서 렌트해서 아마쿠사 쪽을 돌아보는 여행을 한 번 계획해 봐야겠습니다.



이곳에도 역시나 커다란 나무들이 많다.



구마모토로 돌아가기 위해 교통편을 체크해 보니, 어라? 미스미 서항에서 구마모토역까지 버스가 있습니다?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네요. 고민이 됩니다. 편하게 버스를 타고 구마모토로 돌아갈까? 버스는 30분 정도 기다리면 도착합니다. 아니면 오늘 여행의 취지를 살려 기차를 타고 돌아갈까? 하지만 기차를 타기 위해 미스미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다를 따라 달리는 작은 지방도



결심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미스미역까지 걸어가기로. 구글맵이 알려주는 거리는 걸어서 약 35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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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위험한 길이었지만 바닷가에 지어진 예쁜 집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걷기에 좀 먼 거리고, 걷기에 즐겁거나 안전한 길은 아닙니다. 그래도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에는 부자들의 별장 같은 집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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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기차에서는 피곤했는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힘들었지만 35분 정도를 걸어서 다시 미스미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차 시간이 좀 남아서 역 앞 광장의 우미노 피라미드를 다시 한번 구경했어요. 이번엔 ICOCA 카드를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현금으로 티켓도 미리 구매했고요.





구마모토역 앞의 해가 진 모습은 처음 봤어요. 일루미네이션이 있었네요? 그러고 보면 구마모토 생활을 하면서 구마모토역은 그리 자주 방문하는 곳이 아니네요. 오늘처럼 어디 다녀올 때만 들르는 곳이에요.


그리고 구마모토역 앞의 전차 정류장은 퇴근 시간에 이렇게까지 붐비는 곳이었군요. 처음으로 '만원 전차'를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전차를 타고 번화가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또 달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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