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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36. 8년 만에 다시 찾은 바, 몰라 보시더라는...

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by zzoos



미스미에서 구마모토역으로 돌아온 다음 전차를 타고 시내로 왔습니다. 퇴근 시간의 전차는 사람이 엄청 많더군요. 오늘은 야끼토리가 먹고 싶어서 구글맵을 좀 뒤져서 가게를 찾았습니다. 효고도리(ひょご鳥)라는 곳이 맛있어 보이더군요. 시스템이 좀 특이해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은 맛있는 야끼토리가 먹고 싶었어요. 하지만 역시는 역시. 평점이 높고 맛있어 보이는 가게는 만석이더라고요.


이후 몇 군데를 더 찾아가 보았지만 계속해서 만석, 만석... 그래서 구글맵으로 뒤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냥 발품을 팔아서 찾겠다고 생각했어요. 구글맵으로 뒤지면 리뷰에 적힌 악평을 신경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차라리 직접 돌아 다니면서 나의 촉을 믿어보자.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번화가를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긴자도리(銀座通)를 넘어 사카에마치(栄町) 쪽으로 가면 오래되고 낡은 가게들이 밀집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긴자미나미도리(銀座南通)에서 신짱(しんちゃん)이라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제대로 로컬의 가게라는 느낌이 듭니다. 절대 관광객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좁고 낡고 약간은 지저분한, 찐 로컬의 가게. 아주 좁은 카운터석에 의자는 네다섯 개 정도. 이미 세 명이 앉아 있기 때문에 제가 들어가 앉으면 가게가 아주 꽉 찰 느낌. 흠... 오늘 낮에 좀 피곤하게 돌아다녔더니 너무 불편한 자리에 앉고 싶진 않아서 패스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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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밝고 깨끗한 분위기였고 맨 안쪽 테이블에는 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같은 골목의 2층에 있는 야끼토리 오쇼(やきとり和笑)를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1층에 있는 가게들 보다는 2층에 있는 가게는 손님이 좀 적겠죠.


생각보다 넓은 가게 안. 테이블석은 만석이었고 카운터는 비어있었어요. 럭키! 가장 끝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시작합니다.



20250122_3_03.png 기본 차림과 태블릿 메뉴



일단 나마비루를 한 잔 마시면서 태블릿으로 된 메뉴를 살펴봅니다. 한글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번역의 퀄리티가 좋지는 않아서 한글, 일본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보면 더 정확하게 메뉴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태블릿 메뉴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주문한 이력들을 계속 체크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 날, 먹다가 중간 내역을 확인해 보다가 기본 차림 비용(오토시 お通し)을 청구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 헌데 이게 2인분으로 계산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점원에게 말을 했더니 1인으로 수정해 주셨습니다.


아마 바가지를 씌우려는 것은 아니셨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단순 실수이거나, 최종적으로 계산할 때 한 명으로 수정하면서 계산했을 텐데 제가 먼저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와, 세세리, 야마이모



껍질(카와 かわ), 목살(세세리 せせり), 참마(야마이모 山芋). 모든 꼬치를 다 타래(たれ) 소스로 주문했습니다.


껍질은 항상 시키는 편인데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기가 참 힘듭니다. 제 취향은 촉촉하지 않게 완전히 바싹 구운 것인데요. 이렇게 굽는 가게는 정말 거의 없어요.


목살은 아주 맛있었고요. 참마 구이는 굽기가 묘하게 아쉽긴 했는데 간이 너무 절묘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조금 더 구워줬더라면 취향 저격 당할 뻔.



시소 마키, 네기마, 시로네기



시소마끼(しそ巻き), 네기마(ねぎま), 시로네기(白ねぎ). 일단 대파들을 완전히 바싹 굽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전에 교토에서 갔던,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어떤 야끼토리 집은 '대파를 충분히 구워야 단맛이 나온다'는 것을 모르더란 말이죠. 충분히 구워진 네기마와 시로네기는 타래 소스와 함께 단맛이 돌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 시소마끼는 최고의 한 점입니다. 너무 좋았어요.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저걸 더 시켜 먹었을 거예요.



츠쿠네 타르타르



수제 츠쿠네 타르타르 소스(手作りつくねタルタル)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츠쿠네는 기대에 못 미칩니다. 소스도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츠쿠네를 주문하는 이유는, 다른 꼬치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는 거죠. 츠쿠네는 뛰어난 맛이 나기 힘들지만 최소한 기본은 해주잖아요.



사사미 와사비



가슴살 와사비(사사미 와사비 ささみわさび). 이것도 타레 소스로 주문했더니 와사비와 소스가 섞였네요. 실수였습니다. 이건 타레 소스가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신선한 가슴살을 살짝만 익혀서 와사비와 함께 먹으면 입이 개운해지는 그런 꼬치인데, 좀 많이 익기도 했고 타레 소스 덕분에 뭔 맛인지 모르게 되었네요.


주문할 때 소금(시오 塩)으로 할지 타레 소스로 할지 고를 수 있었는데요. 낮에 돌아다닌 피곤함 덕분인지 다레 소스의 달달함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모든 꼬치를 생각도 안 하고 타레 소스로 주문했거든요. 다른 꼬치들은 괜찮았는데 여기서 실패했네요.


사진을 모두 찍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맥주 한 잔을 마신 이후에는 계속 쇼츄 소다와리를 마셨습니다. 아마도 므기소다(보리 쇼츄 + 소다수)를 서너 잔 마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이름을 따온, 바 KiKi



2차로 바 KiKi를 찾았습니다. 엊그제 딱 한 잔 마시고 피곤해서 일어났던 게 계속 마음이 쓰였어요. KiKi라는 이름은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따온 것 맞습니다. 그래서 저 검은 고양이 인형도 놓여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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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차림. 바 테이블의 유리 아래로 각종 리큐르가 보이는 것이 재밌다.



시작은 자연스럽게 닷소입니다. 닷소란 구마모토에서 인기 있는 버번인 Old Grand Dad와 소다수를 섞은 걸 말합니다. 'Dad + 소 = 닷소'인 거죠. 사실상 버번 하이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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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시로와 모리이조. 공짜로 마신 모리이조는 변질된 것이었지만 경험이 되었다.



백바에 사토 시로가 보이길래 로꾸로 한 잔 부탁했습니다. 여행의 막바지, 이제 언제 다시 사토를 마실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시면서 제가 쇼츄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다가 마스터인 아이상이 '어? 모리이조가 조금 남아 있을 텐데...' 하면서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정말 조금 남은 모리이조를 꺼내옵니다. 한 잔도 나오지 않을 만큼 조금 남아 있는 모리이조를 공짜로 줬어요.


쇼츄의 부쇼네를 처음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단, 부쇼네는 와인이 변질됐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긴 한데, 쇼츄에도 쓰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맛이 변질된 술이었어요.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리이조 같이 좋은 술이 변질된 것을 마셔보는 경험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잖아요.


입을 좀 깔끔하게 하려고 진토닉을 주문했는데요. 진을 뭘로 할까? 하고 물어봐서 비피터로 부탁했습니다. 아니 근데 이 진토닉이 너무 맛있는 겁니다. 특별한 걸 넣은 것 같진 않은데 왜 이렇게 맛있나? 싶어서 탄산수를 살펴봤더니 윌킨슨이라는 토닉을 사용했네요. 이거 정말 조합이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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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구미(赤組)에서 해장을 하고 3차를 가거나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카구미를 찾았으나 영업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받아주지 않더군요. 11:30 영업 종료인데 11시 좀 넘어서 갔거든요. 아마 지금 대기하고 있는 손님만으로도 영업시간을 넘기게 된다는 얘기였던 것 같았습니다. 아쉬웠어요.


쇼츄바 이키(焼酎Bar 粋)에 갈까? 싶었지만 너무 멀리 걸어야 해서, 오늘은 추억(?) 속의 바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8년 전인 2017년, 친구와 둘이서 갔던 바. 백발의 할아버지 바텐더 혼자서 영업하시는 곳이었고, 원래는 가정집이었던 건물을 구마모토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 2층은 생활하는 공간으로, 1층은 바로 공사를 한 곳입니다.





구글맵에 리뷰도 별로 없을 정도로 숨겨진 곳이에요. 정말 단골들의 아지트 같은 곳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직 정정하긴 하셨지만 8년 전에 비하면 힘이 많이 빠지셨어요. 오늘도 단골손님 세 분이 자리를 점령하고 계셨고, 저의 주문은 할아버지 바텐더가 아니라 단골손님 중 한 분이 만들어 주시더군요. 정말 재밌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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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왔던 적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당연하게도 기억하지는 못하셨어요. 당시 함께 왔던 친구가 건축 사무소를 하는 친구였고, 저도 건축과 출신이라 이 가게의 재미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더니 구마모토 건축과 학생들과 프로젝트 진행하는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 둔 걸 보여주셨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느릿느릿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그때 봤던 그 책들을 다시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말이 안 통할까 봐 걱정하시면서 이화 여대에서 공부하신 할머니를 급하게 전화로 부르셔서 그분이 통역해 주셨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십니다. 아르바이트인가? 자연스럽게 백바로 가서 주문 들어온 칵테일을 만들어 주시는데, 이 할머니도 한국어를 하시네요? 이번에는 연대에서 공부하셨다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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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홀짝홀짝 하이볼, 므기 소다 등등을 마시다 보니 점점 취기가 올라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이대로 잠들기는 싫어서 냉장고에 남아 있는 것들을 해치우기로 합니다.


츠노다 상이 선물해 준 오카야마(岡山)의 지자케와 함께 냉장고에 남아 있는 안주(?)들을 해치웁니다. 도시락 가게에서 산 오크라 샐러드도 맛있고, 감자 샐러드도 맛있고, 편의점에서 산 니꾸망들도 맛있습니다. 특히 세븐일레븐의 생햄은 가격도 좋고 퀄리티도 좋습니다.


오늘은 너무 무리했으니 내일은 좀 쉬어야겠네요. 그래야 마지막 날 한잔 더 마실 체력이 생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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