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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37. 쉬어 가는 하루, 다시 니노마루

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by zzoos


어제 좀 많이 마셨더니 오늘은 역시 피곤합니다. 이제 여행이 이틀 남았습니다. 내일모레, 토요일에 귀국이에요. 쉬는 김에 집 근처에서 쇼츄를 한 병 사야겠습니다. 구글맵을 뒤져보니 집 근처에 괜찮은 리커샵이 하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 봤을 땐 교토의 카모가와 같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이미지였던 시로카와



후지사키 하치만구(藤崎八旛宮)를 지나 메이고바시(明午橋)를 건넙니다. 처음 시라카와(白川)를 봤을 때, 이 강변을 자주 걷게 될 줄 알았었는데, 의외로 구마모토 사람들에게 시라카와는 그다지 명물의 느낌이 아닌가 봅니다. 교토의 카모카와랑 느낌이 엄청 달라요.



친절한 내외분이 운영하시는 작은 리커샵



어쨌든 시라카와를 건너 이치하라야(市原屋)라는 리커샵에 도착했습니다. 위스키를 취급하는 리커샵들은 시내에 몰려 있어요. 하지만 제가 찾는 것은 쇼츄이다 보니 관광객들이 점령한 리커샵 보다는 이렇게 동네에서 유명한 리커샵이 궁금했어요.


다정한 부부가 운영하는 리커샵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판매 중인 쇼츄를 하/나/도 모르겠어서 레이블만 계속 쳐다보다가, 용기를 내서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막무가내로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어려우니까 '만젠(萬膳)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공유했습니다만 꽤나 난감해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추천받은 쇼츄는 가고시마 타루미즈시(垂水市)에 있는 야치요덴 주조(八千代伝酒造)에서 만든 치요키치(千代吉)입니다. 1,750엔 정도였으니 그리 비싸진 않죠. 대부분의 쇼츄는 이 정도의 가격입니다. 2,000엔이 넘으면 비싼 쇼츄예요. 그 유명한 3M 이니 하는 쇼츄들도 정가는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다만 희귀해서 구하기가 힘들 뿐인 거죠. 그래서 되팔이(?)하는 샵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비싸게 파는 겁니다.


어쨌든, 흑누룩과 황누룩을 같이 사용했다고 하고 옹기(카메 かめ)에서 숙성을 조금 시켰나 봅니다. 제가 좋다고 말했던 만젠이 마시기에는 편하면서 뒤에 깊은 맛이 느껴지는 스타일이라서 이걸로 추천해 주셨다고 하네요. 여행을 마치고 집에서 한 잔 마셔봤는데요. 만젠과 비슷한 건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깊은 맛이 나는 좋은 쇼츄였습니다.



숙소 근처의 골목골목이 이제는 괜히 그리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골목골목이 정겨워 보입니다. 이제 이틀 뒤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골목. 그동안 정이 들었나 봅니다. 골목골목 괜히 셔터를 날립니다.



20250123_06.png 아카구미의 아지타마 라멘. 내 기억 속의 구마모토.



점심은 해장을 위해 아카구미(赤組)를 다시 찾았어요. 오늘도 아지타마 라멘(味玉ラーメン). 구마모토 여행 중 가장 많이 들렀던 곳은 역시 이곳일 것 같습니다.



츠루야 백화점 지하의 리커샵에도 유명 니혼슈나 쇼츄는 없었다.



오늘은 혹시나 싶어서 츠루야 백화점 지하를 가볼까 합니다. 백화점의 리커샵이라면 전국의 유명한 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혹시나 유명한 니혼슈나 유명한 쇼츄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요.


결론은, 없습니다. 역시 없어요. 아라마사, 지콘, 쥬욘다이, 나베시마, .... 이런 니혼슈는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쇼츄는 좀 다를까 싶었지만 모리이조, 무라오, 마오, 만젠, 사토, ... 이런 쇼츄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아, 백화점 지하에서 마오(魔王)를 발견하긴 했습니다만 다른 쇼츄 9병과 셋트로 묶여서 10병을 한꺼번에 사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결국 백화점 지하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뭐 어차피 가방에 술을 넣을 자리가 없기도 했지만요.



가토 기야모사의 동상



백화점에서 나와 설렁설렁 산책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목적지는 구마모토 성 앞의 니노마루 광장. 미유키 바시(行幸橋) 앞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동상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장수라 괘씸해서 그동안은 사진을 찍어주지 않고 있었는데요. 여행의 막바지에, 기록을 위해 사진을 한 장 남겨두자는 생각으로 찍었습니다.



나에게 구마모토란 커다란 나무의 이미지



말이 '살랑살랑' 걷는다는 거지, 사실 니노마루 광장까지 가는 길은 꽤 많이 걸어야 합니다.



니노마루 광장에 앉아 라떼를 마시면서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항상 앉아서 시간을 보내던 그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라떼를 마십니다. 뻔하지만 가장 구마모토스러운 이곳의 분위기를 눈에, 뇌에, 귀에 차곡차곡 새겨둡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 되니 하지 못한 것, 먹지 못한 것, 가지 못한 곳들이 전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일어섰다.



구마모토 성과 니노마루 광장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서 다시 일어섭니다. 오늘은 성의 북쪽, 니시자카(錦坂)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옵니다.



무너진 성벽. 흘러내린 모래들을 담고 있는 자루들.



무너져 내린 성벽 앞에는 모래들을 담고 있는 검은 자루들이 쌓여 있습니다. 각각의 자루에는 번호도 쓰여 있어요. 이곳 성벽에서는 총 21개의 모래가 쏟아져 내렸군요.



20250123_16.png 겐모츠 망루. 복원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켄모츠 야쿠라(監物櫓). 구마모토 성의 망루 중 하나인데, 가장 최근에 복원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내려오면 경비 아저씨나 관광객들을 만나지 않아서 한적해요.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던 니시자카



길을 건너면 니시자카(錦坂)가 나옵니다. 그냥 평범한 계단인데도 이름이 붙어 있네요.



특이하게 생긴 건물. 츠보이 파출소.



니시자카에서 하치만구 방향으로 쭉~ 걸어오면 세븐일레븐 바로 옆에 특이하게 생긴 경찰서... 라기보다는 파출소가 있습니다. 츠보이(坪井)파출소. 그동안 몇 번을 봤지만 사진은 오늘에서야 찍네요. 이 건물도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카모 키와코 & 마뉴엘 타디츠의 작품이에요. 마뉴엘 타디츠라는 건축가는 프랑스인인데 동경대에서 건축 석사와 박사를 했군요. 1995년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20250123_19.png 오늘의 저녁은 냉장고 털이



오늘 저녁은 남아 있는 음식들 해치우기입니다. 햇반 데우고, 카레 하나 데우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생햄과 감자 사라다. 그리고 쯔께모노를 싹싹 긁었네요. 즉석 미소시루와 함께 후루룩~~


내일은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KiKi의 아이상이랑 저녁 약속도 있는 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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