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4부] 유유자적 구마모토
드디어 오늘은 귀국하는 날입니다. 공항은 구마모토 국제공항, 시간은 18시 25분. 미리 체크해 둔 바에 따르면 구마모토 시내에서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4-50분 정도라고 하네요. 그러면 시내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체크아웃은 오전 11시죠. 시간을 좀 늦출 수 없냐고 문의를 해봤지만 택도 없었습니다. 가차 없이 11시까지는 숙소를 비워줘야 합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4-5시간 정도를 구마모토에서 더 보내야 한다는 얘기죠.
검색해 본 바에 의하면 츠루야 백화점 1층에 코인로커가 있다고 합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츠루야 백화점 앞에 내렸습니다. 하지만 백화점 1층의 코인로커 중 맨 아래칸 그러니까 큰 캐리어를 넣을 수 있는 곳은 이미 꽉 찼습니다. 그래서 양복을 입고 계신 안내원 아저씨에게 다른 코인로커가 없는지 물어봤는데, 앞장서서 직접 안내해 주시더군요.
구글맵에서의 위치는 미즈바 은행 ATM 츠루야 백화점 출장소(みずほ銀行ATM 鶴屋百貨店出張所)라고 찍혀있는 포인트 바로 앞쪽의 큰길에 주차장 입구가 있는데요. 그 입구 안쪽에 코인로커가 있습니다. 구마모토 내과병원(熊本内科病院)의 맞은편이에요. 이쪽의 코인로커는 좀 널널하더군요.
코인로커에 커다란 캐리어를 넣어두니 몸이 가벼워졌어요. 동생이 부탁한 것을 몇 개 쇼핑하면서 멀리 번화가 남쪽의 프레시니스 버거 선로드(フレッシュネスバーガーサンロード)를 찾아갑니다. 구마모토의 수제 버거 가게예요. 오늘 점심은 좀 가볍게 먹고 싶었거든요.
치즈 버그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커다란 햄버거 포장지에 가려서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포테이토 프라이도 포함입니다. 얇은 사각 프라이가 아니고 커다란 웻지 프라이입니다. 햄버거의 맛은 꾸밈없이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 같은 맛입니다. 하지만 저 치즈. 치즈가 엄청난 킥입니다. 빵이나 패티 그리고 야채에서는 특별한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저 꾸덕한 치즈가 엄청 짭짤하고 완전 미/국/식 입니다. 말 그대로 '치즈' 버거예요. 종합적으로 꽤 매력적이었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뭐다? 니노마루 광장(二の丸広場)이다! 오늘도 니노마루 광장으로 향합니다. 언제나처럼 떠나는 날은 날씨가 화창하네요.
어?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 걸까요? 천수각(天守閣)에 입장할 수 있나 봐요! 입장료는 800엔입니다. 뭔가 추가로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은 조금 더 비쌌는데요. 저는 천수각 안에도 안 들어갈 생각이라서 가장 싼 표로 구매했습니다.
※ 이상하리만치 제가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입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연말연시의 휴원일, 임시 휴원일 등이 절묘하게 겹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말'에만 오픈하는 줄 알았습니다. 구마모토 성 홈페이지를 보면 매일 입장할 수 있다고 나와 있네요.
구마모토 성, 천수각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몇 년만일까요. 사진을 뒤져보니 2013년 2월에 방문한 적이 있군요. 자그마치 12년 만에 보는 천수각입니다. 2017년에도 구마모토에 온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전구역 공사중일 때라...
구마모토에 한 달을 살았는데, 제대로 천수각을 찍는 것은 돌아가는 날이라니. 게다가 최근에는 매일 니노마루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죠.
천수각 앞의 광장에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천수각 안을 구경해 보기로 합니다. 네, 마음이 바뀌었어요. 12년 전에 봤던 실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복원하기 전의 내부는 나무로 된 높은 경사의 계단을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별로 볼 것도 없었던 기억이라서 내부에는 안 들어가려고 했던 거예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들어와 보기를 잘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게 바뀌었네요. 충분히 쉽게 걸어 오를 수 있는 계단입니다. 예전의 계단은... 으...
그리고 예전에는 내부에 관람할 것이 없었고 오로지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경치를 보기 위한, 옛 건물 그대로의 느낌이었거든요.
지금의 내부는 구마모토 성과 구마모토의 역사를 천천히 보여주는 박물관 같은 곳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계단이 별로 가파르지 않으니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있으니) 천천히 천수각 내부를 구경해 보는 것이 좋겠네요.
전시하고 있는 내용은 꽤 많은데요. 저에게 관심이 가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냥 뭔가 화려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 훑고 지나갔어요.
아, 그나저나 구마모토 성의 역사를 설명할 때 '호소카와 시대' 부터 시작하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타츠다 자연공원(立田自然公園)으로 산책 갔을 때 무덤들이 있었잖아요? 거기가 호사카와 가문의 무덤(細川家廟所)이었는데?? 아, 그 호소카와가 이 호소카와였단 말이네요???
이걸 깨달은 다음 구마모토 성 주변을 걷다가 보이는 깃발들 중에 호소카와 가문의 문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머지 한 종류의 문장은 가토 가문의 문장이겠지요.
계단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한 층의 넓이'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걸어 올라간 맨 꼭대기층. 솔직히 말해서 경치가 끝내준다는 느낌은 아닙니다만, 구마모토에 이 정도 높이의 건물이 없다 보니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경치이기는 합니다. 사람이 꽤 많은 곳이라서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기가 아주 힘들었어요.
천수각을 돌아보는 데에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였을까요? 아직 공항에 가려면 시간이 많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역시 니노마루 광장에서 보내야겠어요.
오늘은 날씨가 맑긴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붑니다. 그래서 야외 벤치에 앉아 있기에는 좀 추웠어요. 그래서 구마모토 현립미술관으로 피신했습니다. 오늘은 아예 전시가 없더군요. 지난번에 찾았을 때는 동네 꼬맹이들의 전시일지라도 전시가 있었는데.
오늘은 전시를 보러 온 것은 아니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작업을 하려고 왔습니다. 카페 사쿠라(喫茶室 桜Café). 무료 와이파이가 있습니다.
한두 시간 작업을 했을라나요? 이제 슬슬 버스를 타러 내려가봐야 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가토 신사에 들러 천수각의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코인로커에서 캐리어를 꺼내 공항버스를 타러 왔습니다. 사쿠라마치 버스터미널에서도 탈 수 있는데 저는 츠루야 백화점 길 건너편의 토리초스지(通町筋)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버스는 금세 시내를 벗어나 교외를 달리더군요. 그리고 한 40분 달렸을까? 드디어 구마모토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입구에도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역시 나쓰메 소세키의 말처럼 '숲의 수도' 답습니다.
오후 서너 시의 공항은 아주 한적했어요. 아직 우리가 탈 비행기의 수하물 카운터는 오픈하지도 않았고요. 국내선에도 뭔가 손님이 없습니다. 최근에 리노베이션을 했는지 공항 자체는 아주 깔끔합니다.
한참 기다려 수하물 카운터가 열리고, 공항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서 줄을 섭니다. 여유롭게 늦장 부렸더니 거의 맨 마지막에 짐을 보낸 것 같아요.
2층으로 올라가 보안 검색을 받았습니다. 헌데 여기서 처음 겪는 일이 발생합니다. 보안 검색을 마친 다음 갈림길이 나오는 겁니다. 한쪽은 국내선 기념품점과 식당이 있는 구역입니다. 다른 한쪽은 국제선 면세 구역이고요. 국제선 면세구역은 너무 작아서 식당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국내선 식당 구역으로 넘어갔거든요. 그랬더니 국제선을 타려면 방금 지나온 보안 검색을 다시 한번 해야 한다고 하네요. 아주 특이한 공항입니다.
어쨌든 국내선의 식당가로 가서 아지센(味千) 라멘을 한 그릇 먹었습니다. 아지센 라멘은 구마모토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라멘입니다. 최초로 해외에 진출해서 사실상 일본 라멘을 전 세계에 알린 브랜드라고 하더라고요. 뭐 맛은 돈코츠 베이스의 그냥 뻔한 맛입니다만, 공항에서 먹는 라멘 치고는 괜찮았습니다.
라멘을 다 먹고, 조카에게 선물할 쿠마몬 과자들을 몇 개 샀습니다. 자판기에서 보리차를 하나 뽑으니까 동전까지 싹싹 털어서 현금을 모두 사용했네요.
구마모토 공항의 국제선 청사는 게이트가 4개밖에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남은 비행기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이 대기실에 있는 사람은 모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확실히 최근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구마모토에 오는 사람들은 반 이상, 아니 70% 이상 골프 여행을 오는 분인 것 같습니다.
국제선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다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에 내려, 집으로 왔습니다. 네, 그렇게 이번 여행이 끝났습니다. 12월 26일 후쿠오카로 출발했고, 12월 28일에 구마모토로 왔습니다. 12월 29일에 친구는 후쿠오카로 돌아갔고, 1월 6일부터 9일까지 가고시마를 다녀왔네요. 이후 1월 25일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약 한 달간의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까웠어요.
음, 특별히 에필로그를 적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포스팅을 하느라 지쳤어요. 드/디/어!! 끝났다는 홀가분한 마음과 안도감이 들어요.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