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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나한상을 보고 싶어, 전철을 탔습니다.

전철 타고 춘천 여행 (2/2)

by zzoos




소양강 처녀상 앞에서 100번 버스를 탔습니다. 배차 간격이 긴 버스라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10분 정도밖에 기다리지 않았어요. 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면 국립춘천박물관에 도착합니다.


'막국수가 먹고 싶다'는 건 오늘 아침, 집에서 출발할 수 있게 만든 트리거였지만 '춘천'이라는 도시를 떠올렸던 이유는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고 싶은 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을 지나면 먼저 어린이 박물관이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그제야 국립춘천박물관이 보이네요.







박물관의 입구는 조금 더 올라가야 하는군요. 생각보다 훨씬 큰 박물관이었고, 훨씬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푸른 나무가 많은 곳이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춘천 같은' 박물관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춘천박물관은 전시실보다 더 크고 멋진 공간이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원형의 공간. 카페와 기념품 샵이 있고, 위에는 커다란 LED화면이 반원형으로 벽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심지어 계단과 바닥까지 영상이 이어집니다.


이게, 말로 설명하면 실감이 잘 안 나는데요. 직접 가서 보시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합니다. 그리고 커다란 화면에서는 매시 정각에 실감 영상을 상영합니다. 상영 시간은 약 20분 정도인데요. 이거 꼭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굉장히 잘 만든 영상이고, 생각보다 훨씬 더 실감 납니다.







날도 덥고, 땀도 좀 났고요, 목도 말라서 전시를 보기 전에 일단 카페에 앉았습니다. 평소 단 음료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인데, 바닐라 라떼를 마셨습니다.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했나 봐요.


의자에 앉아서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서 체력을 회복하면서 땀을 좀 식혔습니다. 이제부터는 전시를 보느라 한참 걸어야 하니까요.







2층 전시실로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춘천'에 오고 싶었던 이유, 보고 싶었던 그 전시입니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나에게로 가는 길.


2001년, 영월의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다양한 표정의 나한들이라고 합니다. '나한'이란 산스크리트어 'Arhat'를 한자로 음차 해서 아라한(阿羅漢), 그걸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적은 것이고, 부처의 제자들 중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상'과는 다른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나한은 결국 '인간'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창령사 터의 오백나한은 서울, 부산, 춘천을 비롯해 호주 등 전국과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전시되다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브랜드실'을 만들어 상설전시하게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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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은 '오백나한'이지만 실제 전시하고 있는 나한은, 온전한 것 26개와 훼손된 것 18개를 더해서 44개 정도였습니다. 전시의 규모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전시실이 너무 작아서 좀 실망했습니다. 이걸 보기 위해 왔는데 말이죠. ㅠㅜ







규모에는 실망했지만, 전시 자체는 아주 좋았습니다. 온화한 표정이 저마다 다른 나한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몇몇 나한 앞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전시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나한 앞에는 아주 푹신한 의자가 놓여 있어서 한참 동안 앉아서 쉴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전시실 안에는 바람 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어서 말 그대로 '휴식과 명상의 공간'을 만들어 두었더라고요. 규모가 작아서 시시할 수도 있었던 전시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주는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전시관을 나와 반대편에 있는 상설 전시관으로 갑니다. 사실 국립춘천박물관이 어떤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서 상설 전시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커다란 오산이었더라고요. 아주 중요한 소장품을 가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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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24호.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입니다. 강릉의 한송사터에서 발굴된 불상으로 일본에 유출되었다가 되돌려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불상들이 대부분 화강암 조각인데 비해 흰 대리석 조각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온화한 표정과 둥글둥글 부드러운 몸의 표현들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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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강원도에서 발굴된 불상들을 여러 점 전시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주로 봐왔던 것이 신라나 백제의 불상이라서 그런지 강원도의 불상 그러니까 좀 더 북쪽의 그것은 얼굴이나 표정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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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간에 체험형 전시(?)가 하나 있었는데요. 천장에 붙어 있는 금강산 모형에 손을 뻗으면, 모형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해 전시장 바닥에 첨벙첨벙 파도치는 영상이 뿌려집니다. 실제로는 소리까지 사실적이라서 엄청 시원한 느낌이 들어요.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전시관의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흘러 오후 6시가 됐더라고요. 박물관의 폐관 시간이 오후 6시였어요. 슬슬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합니다. 이 버스도 배차 간격이 긴 버스라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데, 마침 시간이 맞는 버스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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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남춘천역 근처에 내렸습니다. 이제 저녁을 먹어야죠. 오늘 저녁을 먹을 곳은 퇴계막국수입니다. 남춘천역 근처에 있는 곳이라 저녁을 먹고 나서 전철을 타기가 편할 것 같아서 선택한 집입니다.


물론!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를 먹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음식이라서요. 막국수와 수육을 먹으면서 소주를 한 잔 하는 것이 혼자 먹기에는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막국수 한 그릇과 수육 보통 한 접시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주문했습니다. 수육에는 명태 식혜가 함께 나왔어요.


일단 막국수는 양념이 쎈 편입니다. 낮에 먹었던 오수물 막국수와는 다른 스타일이에요. 동치미 국물과 고기 육수를 섞은 육수를 막국수에 좀 넣어서 자작하게 만들었더니 먹기 좋은 간이 되었습니다. 반 이상 먹은 다음 육수를 많이 넣어 물막국수로 만들어도 먹기 좋더군요.


수육은 아주 부드럽고 껍질이 붙은 부분은 쫄깃합니다. 전반적으로 평타 이상인 곳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남춘천역 바로 앞이라서 교통도 편리하니 가게 안에는 평일인데도 사람이 꽉 차 있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녹두전을 주문하길래 봤더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녹두전과 비슷하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나온 것을 보니 할머니의 그것과는 아주 많이 다른 녹두전이었습니다. 당연히 할머니의 녹두전이 훨씬 더 맛있습니다.


일단 이곳의 녹두전은 녹두 100%가 아닌 것 같은 질감이었어요. 좀 묽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도 겉면을 아주 바삭하게 구웠기 때문에 따뜻할 때 먹으면 맛있습니다. 할머니의 녹두전에 비해 실망이었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녹두전이었습니다.







막국수, 수육, 녹두전으로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다음 남춘천역에서 광역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상봉역까지 가지 않고 별내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탔어요.


집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정도가 되더군요. 약 13시간 동안의 여행이었습니다.


춘천, 이렇게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군요. 앞으로도 가끔 바람 쐬러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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