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용산 나들이 (1/3) - 진미식당,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이걸 '여행' 카테고리에 올려야 할지 '잡설' 카테고리에 올려야 할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만, 집 앞을 나가더라도 여행하는 마음가짐으로 돌아다니면 그것이 바로 '여행'이지 않을까라는, 좀 진부한 생각으로 여행 카테고리에 올려봅니다.
지난 주였던가요? 우연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조선 민화전]이라는 전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난 3월에 시작한 전시였는데 늦게 알게 된 거죠. 심지어 바로 이번 주인 6월 29일에 전시가 끝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놓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을러 빠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관람 예약도 잘해두었고요.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할 식당도 미리 찾아두었습니다. INFP인 저에게 이 정도의 '준비'는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콩국수 철이잖아요? 청국장과 콩국수로 유명한 바로 그 진미식당에서 콩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앞에 한 분이 대기하고 계셨어요. 5분 정도 대기했다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만, 면을 삶고 있는 중이라서 콩국수가 나오는 데 까지는 10~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 콩국수. 아, 자세히 보니 콩국의 색깔이 조금 다릅니다. 흔히 보던 노란색 콩국이 아니고 조금 더 탁한 듯 진하고 조금은 어두운 색상의 콩국입니다. 숟가락으로 먼저 떠서 점도를 확인해 보니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의 걸쭉한 스타일은 아니네요. 먹기에 좋을 정도로만 흘러내리는 진한 콩국입니다.
한 입 먹어보니 고소한 맛이 가득합니다. 간이 되어 있진 않지만 오히려 이 투명할 만큼의 고소함이 좋아서 소금을 넣지 않았습니다.
면은 평범한 바로 그 면입니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바로 그렇기에 콩국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 수수한 면.
김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손을 대지 않았고, 도라지 무침과 도토리묵으로 입 안의 부족한 간을 더하면서 국수를 먹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맛있었습니다. 고소했습니다. 당연히(?) 콩국은 바닥까지 싹싹 다 긁어먹었습니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섰습니다. 이제 전시를 보러 가야죠. 일부러 작은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용산이라는 동네의 특징을 보여주듯 오래된 건물들이 보입니다. 아, 물론 사진에 찍히지 않은 쪽은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지만 말이죠.
별생각 없이 걸었던 그 골목이 어릴 적 PC 조립한답시고 돌아다니던 바로 그 동네였군요. 나진상가, 선인상가. 잊고 지냈던 이름들입니다. 마치 서울에 여행 온 외지인처럼 연신 핸드폰을 들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사람에게, 오랜만에 보는 용산의 풍경은 마치 여행 온 것처럼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지하도를 지나자 갑자기 등장한 고층 건물. 이것에 지금 용산의 모습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용산'은 저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용산역, 용산 전자상가 같은 단어로 느껴지는 오래된 구도심의 이미지? '마용성'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힙한 새로운 번화가?
흠. 제 안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것이 실제 용산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제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도착했습니다. 이 건물의 건설 현장에 친구가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던 건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친근감마저 드는 건물. 하지만 오늘이 첫 번째 방문입니다. 사실 '사옥'이라고해서 방문할 수 있는 건물이라는 생각도 안 해봤었어요. 미술관이 있다고 하길래 좀 찾아보니 식당과 카페도 있더군요.
건물에 들어서니 1, 2, 3 층을 뻥~ 뚫어놓은 거대한 로비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카페나 식당들이 있는 상업 공간이네요. 노출 콘크리트를 아주 깔끔하게 시공했어요. 구석구석 디테일들이 아주 깔끔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봅니다. 친구가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바로 그 천창입니다. 시공도 아주 어려웠다고 하던데요. 천창 위에는 물이 흐르네요. 흐르는 물 때문에 빛이 찰랑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자랑할만하네요. 장관입니다.
제가 고개를 들고 천장을 계속 찍고 있으니까 그제서야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봅니다.
자, 이제 전시를 보러 갑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영어로는 AMOREPACIFIC MUSEUM OF ART 네요. 그럼 줄임말로 AMOA 인가요. 하지만 홈페이지에 가보면 APMA로 쓰는군요.
아, 전시 얘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미룰까 봐요.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흠... 의외로 제가 수다스럽다니까요. ㅎㅎㅎ